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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반 정착·국민 의료 접근성 확대는 성공
의료기반 정착·국민 의료 접근성 확대는 성공
  • 의사신문
  • 승인 2011.02.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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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의협 명예회장, 전 보사부 장관>-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 <상>

문태준 명예회장
존경하는 동료 회원 여러분에게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에 시작한 건강보험제도가 정치적 결단과 비약적인 경제적 발전, 국민의 협조 등으로 불과 12년이라는 단시간인 1989년에 완성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세계 2위의 부강한 경제적 기반 위에 출발한 국민개보험제도가 완성된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일본의사회에서 지난 2일 특별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제가 특별강연자로 초청되어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사회 대강당에 500여명의 지도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된 행사에서 두 나라의 건강보험제도의 발전 과정과 문제점들을 비교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정리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읽어보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필자 주】


일본의사회와 대한의사협회 간의 따뜻한 교류는 일본의 다케미 타로 회장님 시대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의 관계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 의사회 간의 이러한 긴밀한 교류 배경 위에 이렇게 일본건강보장 50주년 기념 일본의사회 의료정책심포지엄에 초청 받아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되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대한의사협회장을 역임하면서 보낸 30여년 간 필자는 한국 의료의 발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또 관련 정책들을 입안한 바 있다. 오늘은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지난 30년 간 한국 의료의 비약적인 발전과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대해 발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건강보험제도 도입 배경 및 경과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상처로부터 점차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최하위 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USD 1000달러에 불과했고 심한 빈부의 격차와 의료비 상승, 공공부분 의료기관 미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현대적인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성공적인 건강보험제도 도입은 한국의 당시 여당 정치인들 사이에 건강보험제도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당의 요직에 있던 본인을 포함하여 연구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연구회는 1년 간의 검토를 거쳐 한국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구체안을 마련하여 대통령께 건의하였다. 도입과 관련한 몇 가지 원칙으로서 △원칙적으로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개선에 따라 각 계층별로 점진적으로 적용 인구를 확대해 나간다 △취약한 병원시설(특히 지방의 시도립병원)에 투자를 증대하여 의료보험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현대화해 나간다 △의료보험수가 결정은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각계각층과 협의해서 조정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기관의 재정 담당 공무원들은 1인당 국민 소득이 USD 1000달러에 지나지 않는 취약한 경제 기반에서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었다. 또 의사들은 의료보험제도가 채택될 경우 보건의료 정책 전체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좌우되어 의사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손상될 것을 우려했다.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실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에 힘입어 의료보험제도가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빈곤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치료비가 없어서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여러 환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데 대해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1977년 7월 한국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었다. 정부는 먼저 직장의료보험으로서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위주로 해서 적용범위를 정했고 고용자들이 보험료의 50%를 부담하도록 결정하여 보험료 징수에 문제가 없도록 하였다. 안정적인 구조하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예방하여 제도 실패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자 한 지혜를 볼 수 있다. 1979년 1월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편입하였고, 1988년 7월에는 5인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적용하였다. 현재는 1인 근로자 사업장도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는 등 직장의료보험은 비교적 순탄하게 확대의 길을 걸어왔다. 반면 농어촌 지역 주민과 자영업자들을 주로 하는 지역의료보험은 확대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정확한 소득 파악의 어려움으로 인해 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설정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뒤로 하고 1981년과 1982년의 시범 사업을 거쳐 1988년 1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농어촌의료보험을 시작, 지역보험 확대의 큰 전기를 마련하였다. 주목할 점은 보험료 납부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을 위해서 정부가 30%의 보험료를 보조하는 방침을 정해 즉각 시행함으로써 지역의료보험의 실패를 방지하고자 했던 점이다.
 

1977년 의보제도 시행 후 1989년 전국민 건보제도 출범
경제적 문제로 진료 못받는 국민 없어져 의사로서 행복
의료 수요·공급 모두 괄목 성장 등 한국의료 발전 일조


건강보험제도를 전국민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시의 자영업자를 포함시키는 문제였다. 당시 한국의 세금징수체제에 미흡한 점이 많았던 관계로 도시 자영업자의 약 70%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의료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데 있어 큰 난관으로 대두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헤쳐나가야 했던 1988년에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맡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은 의료보험제도 도입 과정에서 일본과 같은 조합주의를 채택했는데 이러한 조합주의는 도시 자영업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문제에 있어 상호간에 불평 없이 비교적 공정하게 소득과 보험료 납부액을 결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일일생활권에 속해 있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웃끼리 서로 돕는다는 근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조합주의는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단단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조합 간 보험료 부담 및 급부 불형평은 조합주의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더해 한정된 풀링(pooling)으로 인한 재정불안정 문제와 소득이전의 효과가 낮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들어 각 조합 간 보험재정의 격차와 의료 이용, 보험료 부과를 둘러싼 불형성이 문제가 되어, 단계적인 보험자 통합을 거쳐 2003년 완전통합,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이라고 하는 단일보험자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보험자인 조합주의에서 단일 보험자인 통합주의로 변경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통합주의는 폭넓은 풀링을 통한 재정안정과 소득이전 효과가 있고, 보험료 부담과 급부에 있어 조합 간의 불형평을 어느 정도 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보험자 통합 이후 지역보험에서 있어서의 보험료 부과의 불형평 문제는 어느 정도 개선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공단 조직의 비대화에 따른 효율 악화와 경쟁 감소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어, 아직 통합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198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TV를 통해 오늘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어느 병원에 가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연설한 것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진료비가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고 진찰실에서 돌아서는 환자 및 환자 가족들의 축 늘어진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이 늘 의사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이를 건강보험제도의 도입과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서 일단 해결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30여년 간 의료기반 확대와 국민 건강 지표 등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다. 우선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1977년 가입자 1인당 0.1일에 불과하던 입원, 내원일수가 2009년 기준으로 1.91일로 증가하였고, 외래 내원일수 역시 1977년 0.7일에서 16.07일로 늘어났다. 의료기관 내원일당 진료비 역시 입원은 4만1334원에서 12만5131원으로, 외래는 6530원에서 1만7998원으로 증가하였다. 의료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의료공급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종합병원은 1980년 82개소였던 것이 2009년에는 296개소로 증가하였고 병원의 대형화 현상도 두드러졌으며, 의원급 의료기관도 1980년 6363개소에서 2009년에는 2만7036개소로 증가하였다.


문태준<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전 보사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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