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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나의 춤꾼을 깨우다
내 안에 나의 춤꾼을 깨우다
  • 의사신문
  • 승인 2011.01.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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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정보이사
걸그룹중에 원더걸스가 있던가요? 우리는 원더우먼스라고 자부합니다.

2008년 연세대학교 여자동창회 송년모임을 필두로 우리 `원더우먼스'는 한국여의사회, 연세의대 여동문회, 연세의대 총동창회 등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호응도 최고조였지만 어르신들이 특히 즐거워하셨다.

매주 두 번씩 밤 10시에 연습실을 찾아 맹연습을 거듭해온 결실이었다. 이런 인기에 영합하여 세차례의 송년모임들을 섭렵한 이래 일단 모두 흩어졌지만 나는 이중빈선생님께서 이끄신다는 경기여고 졸업동기들이 모인다는 춤동아리에 합류했다. 이 소식을 듣고 같이 송년모임에 참여했던 친구들과 합동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모임을 갖게 되었다. 행복하고 흥겨우니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원더걸스의 `노바디' 복장을 하고 연세의대 여동문회 신입생환영회에서 신입생 여동문과 `춤배틀'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같은 춤을 들고 나왔었다. 먼저 신입생들의 날렵하고 깃털 같은 춤을 선보인 후 마지막으로 아줌마들 특유의 뻔뻔함과 몸무게로 무장한 원더우먼스의 박력있는 버전은 볼 만한 대비를 보였고 그 모임을 완전 제압했다는 후문이다.

 ■원더걸스 vs 원더우먼스

강남세브란스병원 근처 한 연습장을 아지트로 그 기막힌 변화를 이루어 갔다. 쿵쿵,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본스텝으로 몸을 풀고 나면 마치 큰 놀이를 앞두고 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와 같아진다. 무릎 바운스의 업다운 리듬으로 상체를 자연스럽게 털고 나서 규칙적인 반동을 이용해 온갖 현란한 안무를 따르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구석구석 감각이 깨어나면서 육체는 물론 정신도 해방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몸짓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진다. 사십 평생을 단 몇 가지 동작만 반복하며 살아왔는데, 내 몸이 리듬과 파동을 따라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춤에 `필'이 꽂힌 이유다. 나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지 못한 춤꾼 기질을 꾸준한 노력으로 깨워왔다. 고된 연습 탓에 발뒤꿈치에 굳은 살이 박여도 춤출 때 만큼은 신이 난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가슴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뜨거운 열정이 서서히 꽃을 피우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춤에 “미쳤어!”

연습실에 갈 때나 무대에 올라갈 때나 늘 `오늘도 한 판 신나게 놀고 오자'고 마음 먹는다. 영화 `바람의 전설'에 나오는 대사처럼 “스텝을 내딛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는 식의 거룩한 감격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춤이 즐거웠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춤추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는 꼭 댄서가 될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나 자신을 조신한 요조숙녀라고 오해(?)하고 지낸 적도 있었지만, 본색이 어디 가겠는가.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건 예과시절부터였었다. 나는 막 춤의 마니아였다. 몇년전까지는 신입생 환영회 같은 공식모임에서 백댄서로도 활약했지만 그러고 보니 이제야 비로소 주인공이 되었다. 전세계를 강타했던 테크토닉도 완벽하게 소화하기도 하였다. 한 때 유행했던 손담비의 디스코 `토요일 밤에' 안무를 배울 땐, 그 동안 익혀온 동작들에 비해 너무나 평이한 난이도에 살짝 지루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예전 같으면 Gee가 다 뭡니까? 소녀시대니 카라니…요즘 유행하는 것들이라고는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지금은 훤히 꿰뚫게 되었다. 춤 동작을 배우며 최신곡을 죄다 섭렵한 덕분에 병원에서는 자타공인 트랜드세터가 됐다.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댄스 댄스!

병리과에 전문의가 그리 많지 않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병리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만큼 의사로서의 본업인 진단 업무는 물론이고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도 산더미다. 2009년 3월부터는 의무기록위원장도 맡았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줄 알고 맡았는데 중요하고도 큰일이었다. 특히 국제인증인 JCI와 병원 인증평가 등과 관련해서 매 순간 긴장을 늦추면 안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잠깐 강남세브란스병원 자랑을 하면 올해 의무기록으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탔다. 안 그래도 빼곡히 들어찬 일정에 춤 연습이 추가되면 한층 바빠졌지만 서슴없이 “자유로워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밤 10시면 연습실로 와서 한 시간가량의 강습을 받고 이후부터는 두 시간이든 세시간이든 자유롭게 연습한다. 춤을 추는 순간 땀과 함께 내 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깨끗이 배출되면서 몸 구석구석 엔도르핀이 도는 게 느껴지는데, 그 느낌에 중독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 중년 여자들에게는 딱히 놀이 문화라고 할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막상 춤을 배우고 싶어도 여건이나 체면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도 많다. 춤 덕분에 모임은 물론 인생이 비할 바 없이 즐거워졌다. 건강은 덤이다. 내 삶이 더 꽉 차고 힘차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벽두를 기해 마침내 댄서의 자리에 안착한 나에게 불어온 에너지는 불혹이 지난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춤은, 생의 한가운데에 도달한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춤추라, 세상사 스트레스는 날려 버리고!

나는 요즘 동료는 물론 환자들 사이에서 `춤 전도사'로 통한다. 댄스테라피라는 말도 있다.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춤을 권하고 있다. 비록 서양의학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전인치료에도 관심이 많다. 육체와 정신, 영혼까지 치유하는 의학을 실천하고 싶다. 대한민국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심신을 고루 건강하게 만들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하루에 54칼로리 이상을 소모하는 춤을 춘다면 일찍 사망할 가능성은 47%,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62% 줄인다고 한다. 이 칼로리는 테니스 경기를 9분, 계단오르기를 7분가량 했을 때 소모되는 것이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당장 가까운 댄스강습소를 찾아볼 만한 일이다.

홍순원<한국여자의사회 정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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