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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가면 고생”…킬리만자로서 느낀 소중한 `일상'
“집나가면 고생”…킬리만자로서 느낀 소중한 `일상'
  • 의사신문
  • 승인 2011.01.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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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성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13>-3〉

하산 후 마랑구게이트 근처에서 포터들과 단체사진.
*하산

누군가 사람들은 종종 한계 상황 속에 자신을 놓아두기를 즐긴다고 했던가? 우르피크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우리 일행은 곧 바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길만스 포인트 언저리까지 나는 두통도 위장장애도 흉통도 어지럼도 없이 무사 무탈했다. 그런데 하산길 길만포인트 바로 못미처서 나의 세 번째 악제가 나타난 것이다. 왼쪽 가슴이 약간 뻐근하고 위장장애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공교롭게 서윤석 고문님이 나누어준 영양갱 3분의 1조각, 영양갱을 입안에 넣고 씹어 삼킨 이후부터 속이 이상했다. 이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체한느낌이 역력하다. 이를 참으며 하산은 길만스 포인트를 지나서 간밤에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가파른 화산재바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파른 화산재들 사이에서 더 나른해지고 내려가면서도 자꾸만 잠이 왔다. 이관우, 강인구 대원과 나, 우리 세 명은 계속 보조를 맞추지만, 서로 마찬가지 증상인 게 분명했다. 바위에 앉아서 쉬고, 깜박 잠을 자며 서로 깨우며 눈빛으로 격려하는 동료애가 함께했다. 쉬는 중간에 나타난 가이드에게서 “졸으시면 안된다”고 주의를 몇 차례 듣고서도, 깜박깜박 토막잠은 계속 반복됐다. 다리에 힘이 있을 때는 화산재 무덤에서 미끄럼타기 하산도 재미가 있고 아주 효율적이었는데, 킬리 하산의 다리 힘이 후지산 하산 때보다 훨씬 더 못했다.

우리 일행 중 몇 명은 키보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카고백이 있는, 간밤에 잠을 잤던 산장으로 다시 들어가 그대로 시트에 잠이 들었고, 나는 얼마쯤 후에 명치가 답답하여 산장 밖으로 튀어 나오자마자 그대로 토했다, 톳물은 진홍색 응어리로 약 2시간 전에 먹은 영양갱이 전혀 소화되지 않았다. 으슥한 한쪽으로 가서 한번더 토하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아, 손가락을 입에 넣어 토하려 했지만 나오질 않았다. 간밤 12시에 출발하면서부터 먹은 음식이 거의 없었던 이유다. 일부러 많은 물을 먹고서 한번 겨우 토했으나 그 이후로도 계속 내 상부 뱃속은 편하지 아니했다.

우리 일행은 오늘 중으로 고도를 낮추기 위해서 호롬보산장까지 내려가야 했다. 물을 먹어도 속이 편안치 않으니 그냥 굶자는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터벅터벅 내려갔다. 호롬보산장에 도착하니 새벽에 가슴이 답답해서 등반을 포기하고 먼저 내려온 김철수 원장은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아니한 서윤석 고문과 나를 이것저것 챙기며 뒷바라지 해줬다. 김 원장은 서 고문과 나에게 저녁식사가 시작되니 식당산장에 가잔다. 내 배낭에 등정 후 마시려고 간직한 오크소주 1병과 참이슬 5병을 김 원장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물만 먹어도 토하니 그냥 식사안하겠다고 말하고선 서 고문과 나는 따뜻한 침낭에 누운 후 곧바로 혼수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서의 서 고문님과 나는 마지막의 호롬보산장의 간밤은 참 아득하게 편히 쉬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역시 아침에도 음식은 역겨웠고 냄새도 못 맡겠다. 서울에서 가져온 커피믹서 조차도 못 마시겠다. 그래∼∼!! 그냥 굶자.

이번 산행은 어느 정도의 고생은 예상했지만, 이때는 참 집이 그립다는 생각하면서 현재 서울에 있다면 싶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호롬보산장에서 출발하여 만다라 산장을 거치며 마랑구게이트까지 그대로 내려가면서 생각하는 것이 빨리 집에 가서 된장국 먹고 싶고, 광주에 가면 굴비정식을 꼭 먹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내려온 것 같았다.(나중 임팔라호텔에서의 대원들은 하나같이 `꽃등심이요' `일식이요' `시원한 맥주'를 생각했다고 자기의 입맛에 맞는 평소의 기호 식품을 말한다. 좋아하는 음식 생각안하고 하산한 분은 없는 것 같았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서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영국아줌마, 독일인과 함께 하산을 했다. 유럽인들 중에 독일과 영국인, 일본과 한국인이 비교적 많이 찾는 산이란다.

관목지대에는 컬럼버스 원숭이와 브루 원숭이가 살고있는데, 우리는 하산길 마랑구게이트 근처에서 도마뱀과 컬럼버스 원숭이를 보게 됐다.


우후루피크서 하산때 고산증으로 속이 답답하고 계속 졸음와
동료들의 뒷바라지로 호롬보까지 무사귀환 곧바로 잠이 들어
하루종일 굶은채 하산 귀국 후 맛있는 음식 먹는 생각 간절


우후루피크서 하산 후 도착한 키보산장.
<하산이후>

*모쉬에서 `신의 집'

인간이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신성한 곳이라 생각한 마사이족은 이 봉우리를 `신의 집'이라 불렀다. 우리는 모시시내를 누비는 동안에도 방향에 따라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아프리카 신비인 하늘에 떠 있는 하얀산을 보면서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다.

탄자니아는 옥수수와 콩을 많이 재배하고, 바나나와 커피가 주산물이다. 모시에서 집 울타리 안에 바나나를 심어놓은 집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상의 바나나가 값이 아주 쌌다. 박윤석, 박종섭 대원은 아침 산책길에 디자인이 괜찮은 청색교복을 따라 학교를 구경했다며, 한바가지 바나나를 길거리에서 사왔다.

*모시시장에서 바비큐(염소뒷다리)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재일 원정대장은 판단력과 순발력이 대단했다, 등반을 마치고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모두들 재래시장과 기념품가계를 기웃거렸는데, 원정대장은 시장을 돌면서도 영양보충을 못한 대원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 음식이 있나하고 찾았나 보다. 순간, 길거리에서 숯불에 바비큐로 굽는 양 한마리를 발견하고, 순간의 흥정으로 양의 뒷다리를 샀다, 그리고 쉽게 먹을 수 있게 여러 갈레로 조각을 내어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안으로 들고 와 이동하는 차안에서 대원들에게 먹어보라며 돌렸다.

대원들 모두가 입맛도 없었지만 배는 무척이나 고플 것이었다. 한 점씩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어 삼키는데… 어찌 그리 쫄깃쫄깃하며 고기의 소금절임도 딱 맞는지… 딱, 이 맛이야∼∼!! 비실비실한 전 대원의 영양보충으로 양다리를 맛보게 하는 것도 원정대장의 대원에 대한 깊은 배려아니겠는가. 이재일 원정대장∼∼!! 고마워요.

*아프리카의 상징 아카시아

아프리카의 멀리 보이는 넓은 초원에 수채화기법으로 그린 듯한 아카시아나무가 서있는 사진을 우린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동하는 차속에서 시야에 펼쳐지는 혹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나무 풍경은 나를 TV에서만 본 아프리카에 왔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야트막한 언덕에 서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아카시아였다. 아카시아는 우산 모양은 엄브렐러트리, 위가 평평한 것은 테이블트리 표피가 노란 것은 피버트리라 부른다. 바오밥나무도 아카시아과였다.

하지만 적당한 간격을 두고 보면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곁에 다가서기 전까지 나 같은 사람 누구도 그렇게 억센 가시가 있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적당히 떨어져서 보면 수채화를 연상할 만큼 여린 모습이지만 그들의 강인함은 무섭다 못해 섬뜩했다. 나는 늦게야 세렝게티 초원에서 특히 기린 같은 많은 초식동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바로 그 아카시아인걸 알았다.

바오밥나무가 철학적이라면 아카시아는 다분히 전투적이면서도 사색적이라 말을 한다.



정효성<광주 북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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