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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었던 만남 그리고 이별 (딱새) 〈하〉
머무르고 싶었던 만남 그리고 이별 (딱새) 〈하〉
  • 의사신문
  • 승인 2010.11.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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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인사도 없이 흔적없이 날아간 딱새 가족

그런데 봄이 끝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문 밖 아내가 흐느끼듯 소리쳤다.

“없어 졌어요. 하나도 없이 모두 사라 졌어요. 여보!” 정말 우편함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 넓게 깔린 둥지 위 은박지 밥통 두개만 썰렁하니 남아 있을 뿐 온기마저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일 아침 웃으며 딱딱거리던 그 어미도 종적이 없다. 정적이 감돌았다.

그런데 봄이 끝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문 밖 아내가 흐느끼듯 소리쳤다.
“없어 졌어요. 하나도 없이 모두 사라 졌어요. 여보!” 정말 우편함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 넓게 깔린 둥지 위 은박지 밥통 두개만 썰렁하니 남아 있을 뿐 온기마저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일 아침 웃으며 딱딱거리던 그 어미도 종적이 없다. 정적이 감돌았다.

시인 고종목 씨는 최근 `딱새'를 만나 그들을 경험하여 이렇게 읊었다.
 
 딱새 부부

 사방을 휘둘러봐도
 둥지 하나 틀 곳 마땅치 않다.
 원주, 어느 한적한 시골 농삿집 헛간 한 켠에 세워놓은 트럭
 벌판 안쪽 은밀한 곳에 딱새 부부 마른 검불 물어다 둥지 틀고
 알을 낳았다. 주인아저씨 운행도 멈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찾
 아와 자식처럼 보살핀다.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서로 달라
 고 입 크게 벌리는 여덟 식구 딱새 가족 사랑이 자고새면 살상
 과 쫓고 쫓기는 음모의 술수 난무하는 삭막한 아침, TV 뉴스
 딱새 가족 소식이 신선하다가
 딱·딱·딱
 위기를 느·낀·다

우리는 딱새의 하루를 관찰하였다. 이상하게도 화려한 겨울 깃의 애비가 새끼를 품고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 와 아기 새에 넣어 주었다. 부지런한 일꾼으로 들락거리는 어미 새에게 아내는 “분만하고, 먹이를 찾으러 다니고, 겨우 물어 와 다시 새끼들에게 배분해 주고 또 찾으러 다니다니…” 안타까워하며 뭔가 도와주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렇게 돕고 싶으면 식빵을 넣어 주구려”하고 일러 주자 아내는 은박지를 둘로 나눠 카터로 작게 나눈 수수, 조, 쌀, 빵 부스러기와 물을 둥지 모퉁이에 차려 주었다.

다음 날 은박지 식탁은 깨끗이 비워 있었다. 아내는 너무 즐거워했다. “얘들이 말이지요. 열세 마리나 된다우 글쎄. 그 많은 알들을 작은 자궁 속에 어떻게 지니고 있었지… 신기해요” 우리의 일과는 이제 딱새 가족의 성육에 매달리며 봄날을 그렇게 보내고 있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두 아들과 각기 두 손자 손녀에게도 이 출생의 비밀스러운 현장을 전해 주고 너희들과 같이 있는 것 같다고 노년기 부부의 외로움을 달랬다.

새벽 녘 물안개 짙은 정원 건너 끼룩거리는 물오리 떼들의 행진, 맑은 풀잎 이슬, 들꽃들의 합창, 심지어 새뜨기 크로버같은 잡초들의 난무도 어미 딱새의 `딱! 딱!'거리는 지지배배에 파묻혀 아름답게 보였고, 봄볕이 쏟아질 때면 그들 집 문을 조금 열어 두어 평화를 나누었다.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돌개바람이 불며 번개치고 우뢰가 요란할 때에도 아내는 비를 맞으며 우편함 전체를 우의로 감싸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평상시 같으면 자기 무섬에 이불 덮어 쓰며 방모서리에 숨어들고 하였는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것은 인간만의 사랑이리라. 남편인 나에게 베푼 사랑보다 훨씬 진한 것, 오히려 자선(慈善) 같은 것일까. 그들은 아내의 사랑과 자연의 축복을 받으며 별다른 문제없이 자랐고 붉은 속살에 잔털이 점차 진해 졌다.

그런데 봄이 끝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갑자기 문 밖 아내가 흐느끼듯 소리쳤다.

“없어 졌어요. 하나도 없이 모두 사라 졌어요. 여보!” 정말 우편함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 넓게 깔린 둥지 위 은박지 밥통 두개만 썰렁하니 남아 있을 뿐 온기마저 없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일 아침 웃으며 딱딱거리던 그 어미도 종적이 없다.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정원의 소나무 자귀나무 벚나무 목백일홍, 모든 나무 가지들을 뒤졌다. 휘르륵 까치 몇 마리가 하늘과 나무 사이를 날아다닐 뿐, 집 주위를 싸고 있던 북한강과 갈대밭, 이웃들은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어디로 갔지요? 모두 한 번에 날아 갈 수 있을까요” 아내는 불안해하며 조바심을 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어미가 끌고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서 비상연습을 시키고 있는지 모르지. 기다려 봅시다” 하였으나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녁 무렵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골목 길 산책로를 따라 두리번거리며 찾아 나서 보았다. 돌아 와 우편함을 열고 그들의 흔적이라도 찾으려 했다. “여보. 들 고양이나 뱀에게 물려간 건 아니겠지요?” 실제 딱새 알이나 새끼들을 뱀이 먹어 치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아내는 종내 안절부절 하였고 어미나마 만날 수 있을까 바깥을 지켜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봄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이 와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상실감으로 요즈음 아내는 상처받은 실연녀(失戀女)마냥 성모상 아래 기도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년 동안 살 붙이며 살던 슈나우져 미니어츄어 `둥이'와의 이별, 그 둥이와 같이 어느 해 봄을 정원 가득히 즐겼던 까치와의 이별, 이른 봄 꽃샘 추위속 우편함 속 열세마리 아기 딱새와의 이별. 우린 그렇게 또 이별을 겪었다.



김인호<서울시의사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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