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55 (금)
동네축구하다 월드컵 먹은 격…대원들에게 감사
동네축구하다 월드컵 먹은 격…대원들에게 감사
  • 의사신문
  • 승인 2010.11.18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민전 - 잠보!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5895M) <7>

우후루 피크의 정상에 보이는 눈과 얼음.
목욕, 면도, 김치에 된장국. 누워서 킬리만자로 산행을 복귀해본다. 꿈이 현실이 되어 머릿속을 맴돌며 가슴 속 스며든다. 5895m의 킬리만자로의 우후푸 피크 정상에 오르다니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처음 산행을 결심했을 때 주위 분들이 무리라고 말들을 많이 하셨다. 특히 가족들이 반대했다.

서울시의사산악회에서도 짐이 되는 눈치다. 그러나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를 포함 킬리만자로 등정에 15명이 확정되었다. 결정이 난 후 황열병 예방접종 및 말라리아 약복용, 등산장비 준비 등 하루하루 꿈에 부푼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지 않은가?

출발 전 북한산, 설악산 서부능선에서 산악훈련이 있었다. 나는 체력테스트 겸 일본 북알프스 네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백두산, 후지산, 프랑스의 몽블랑, 대만의 합환산, 말레이시아의 키나바루 등 많은 산행을 한 서울시의사산악회 회원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마음 설레며 등정하면서 이 기회에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등산했다. 박병권 산악대장이 생각보다 등산을 잘 한다고 인정했다. 나 또한 자신감이 생겼다.

드디어 2010년 9월18일 인천공항 출발, 홍콩에서 케냐항공으로 방콕을 거쳐 케냐의 나이루비공항에 도착했다. 소형비행기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도착 버스로 산행시작인 마랑구게이트(1980m)에 도착하여 입산 수속 후 기대하던 등정이 시작되었다. 마랑구게이트에서 다른 한국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케냐의 나이루비공항에서 버스로 왔는데 하루가 걸렸다고 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더 넓은 대륙을 달리는 버스여행도 좋을 것 같았다.

포터에 짐을 맡기고 간단한 옷가지와 물병만 챙겨 대망의 킬리만자로 등정이 시작되었다.

호름보 산장 표지판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동네 산에만 다니던 나는 이국적 환경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정글 속 타잔의 주인공처럼. 열대우림 지역을 통과 만다리산장에 도착(2750m) 1박, 밤이 되면서 추위를 느꼈다. 아침에 마웬지정상을 바라보며 건조한 관목지대를 통과, 호른보 산장(3720m) 이틀째 밤을 지내고 이후부터 물이없는 황무지를 따라 폴래폴래를 외치며 키보산장(4700m)도착 세시간 휴식 후 마지막 정상인 킬만피크(5700m), 우후루피크(5895m)를 향해 밤12시에 출발 했다. 또 폴래폴래를 외치며 3분의 1보씩 미끄러지며 힘겹게 전진했다.


처음 킬리만자로 산행 결심때 주위 인사들 `무리'라며 반대
그러나 가겠다는 마음 굳혀 하루하루 즐거운 여행준비 빠져
다행히 특별한 고산증세 없이 5895m 킬리만자로 정상 우뚝
동네산만 다니던 내가 그 높은산을 올라 스스로 대견스러워



지금도 창피하고 미안한 일이 생각난다. 밤에 등산은 한 줄로 등정하는데 산의 각도가 있어 내 엉덩이가 뒷분의 머리위치가 되는데 마침 서윤석 고문이 뒷따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알아도 참을 수 없었겠지만 뽕뽕 계속 방귀가 나왔다. 어찌나 무안하고 부끄러운지 “죄송합니다” 했는데 서고문께서 “괜찮습니다” 계속 뽕뽕 “미안합니다” 그러면 서고문은 “괜찮습니다”를 반복하며 계속 전진했다.

이후 알고보니 고산증의 증세 중에 구토, 설사, 두통, 어지러움, 복통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방귀도 고산증의 하나란다. 다른 대원들은 고산 때문에 많은 고생들을 했는데 난 다행히 방귀 외에는 고산증이 심하지 않았다. 물론 주사와 비아그라를 호른보산장, 키보산장에서 1정씩 먹었다.

이관우 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한 필자.
키보산장을 출발 약 7시간 만에 킬만피크에 도착, 빨간 불덩이가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보고 우후루피크 정상에 도착했다. 감격의 마음을 포화시키며 눈썹처럼 정상을 싸고 있는 눈덩이를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산장 출발 10시간 만에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산행은 화산이라 계속하여 모래돌로 이어진 것으로 스키타듯 내려오니 생각보단 편안했다. 5시간 정도의 하산길인데 2시간 단축, 3시간만에 키보산장에 도착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4일밤을 지내는 호른보산장을 향해 출발했다. 호른보산장 1박 후 마랑구게이트에 도착, 하산 신고 후 임팔라호텔에서 모처럼 목욕하고 맥주를 밤늦게 까지 마음껏 마셨다.

킬리만자로는 6000m가 다 되는 산이지만 전문적인 산악기술이 없어도 고산증과 체력만 허용된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높은 산이다. 독자 여러분도 눈이 녹기 전에 도전하길 바란다.

다음날 아침 호텔 주변 마을을 산책했는데 경제수준이 우리 1960년대 후반 정도였다. 국민의 80%이상이 농업에 의존하는데 전 국토의 4%정도만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라 했다. 이것도 계속된 가뭄과 사막화 때문에 국민들의 경제 수준이 대단히 빈곤했다.

주 농산물은 커피나 과일 등이었는데 커피 맛은 아주 좋았다. 요즘은 금, 광산물 생산 개발로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의 하루 노동의 댓가는 1불에서 3불이라 한다.

동네 산에만 다니던 내가 단일 산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킬리만자로 산을 등정했으니 동네축구가 월드컵을 먹는 꼴이 되었다. 혼자 어떻게 월드컵을 먹겠는가? 선수 전원의 힘이 뭉쳐야 먹을 수 있듯이 내가 등정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의사산악회 이재일 회장, 서윤석 고문, 박병권 산악대장 등 14명 전원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산태샤나! 아산태샤나!”(감사합니다)



이민전<서울시의사회 부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