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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자동차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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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10.11.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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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형 m i 16을 판매하려다 겪은 에피소드

며칠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의 구형 mi16을 꼭 타고 싶으니 팔라는 전화였다. 요즘은 차종을 바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특히 너무 늦기 전에 상태가 좋은 W124를 한 대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W124는 구형 벤츠의 차종 이름으로 사각형 라이트를 갖는 E 클래스의 벤츠다. 소나타 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맞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가격도 많이 착해졌지만 이제는 일반인이 타고 다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카 동호회 수준의 운전자들이 몰고 다닐 정도로 오래된 차종이 되고 말았다. 유지보수가 마니아 수준으로 변한 것이다.

보유할 수 있는 차의 대수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기존의 한 대를 줄이려는 생각이 있었다. 줄이는 선택은 차를 폐차하면서 파츠카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결론은 한 대를 줄여야 다른 차를 들일 수 있는 심리적, 공간적 여유가 생기는 법인데 올드카 매니아들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비싸게 받을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는 가격이 중요부품의 여분으로 계산해도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고 파츠카를 만들면 이 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는 결과가 된다.

아무튼 차를 보고 싶다고 하니 몇 달 동안 세워둔 차를 몰고 클리닉으로 와야 했다. 문제는 신비로운 고장이 일어난 것이다. 수서의 열병합 발전소 앞을 달리면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기어의 변속을 조금 과격하게 했나 싶었는데 변속기의 기어링크가 갑자기 빠진 것이다. 기어 링크가 빠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관절 탈구만큼이나 어렵다) 다시 기어링크를 다시 끼우고 오면서 조심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안 빠지겠지 하고 방심한 것이 또 한번의 실수였다. 차들이 고속으로 달리는 농수산물 시장 입구의 다리 끝에서 또 주행불능이 된 것이다. 이번에도 기어링크를 다시 끼우려 했는데 나머지 한쪽은 아무리 빼서 다시 끼우려고 해도 빠지지가 않는 것이다. 날이 어두우니 요지부동이다. 1시간을 씨름하고 손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만큼 기름이 묻어도 해결이 안되어 지쳐서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1∼2시간 뒤에 견인을 부탁했다.

견인차의 기사는 이번에는 링크를 끼우다가 기어가 걸려버린 덕분에 날고생을 하면서 견인해 왔고 주차장 앞에 세운 차는 배터리가 방전되고 말았다. 새로운 주인에게 보여줄 신고식을 단단히 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동을 위해 차에 있던 배터리를 점프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앞에 주차장을 가진 건물이라 난감한 정도가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차장에 집어넣고 완전히 패닉하게 되고 말았다.

멀쩡하게 달리던 차가 이제 시동도 걸리지 않고 기어를 바꿀 수도 없으며 자가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 다시 견인을 해서 공장으로 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흔한 핸드바이스하나 차에 실려 있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저녁 늦게까지 고민한 차의 문제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약속한 시간에 차를 보기로 한 사람이 오고 말았다. 다른 손님까지 대동하고서. 연락이 늦은 것이다. 그러나 시승하러 왔다가 주행불가능한 차를 보고 실망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차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예전에 배기쪽에서 불이 난 것도 알아내고 질문을 하며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이 정도면 매니아로서도 중증이다) 그리고 필자는 손님들이 타고 온 포르세 944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이만큼 상태가 좋은 944 터보는 별로 본적이 없었다. 944의 주인중 몇 명은 이미 알던 사람들이라 이야기 거리는 아주 많았다. 944 터보는 80년대 중반에 나온 차들도 많다. 같이 온 손님중의 하나는 E36 M3를 타는 사람이라 또 이야기가 길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포르세 944에게 배터리 점프를 부탁했다. 거의 완전 방전되기는 했지만 차의 시동은 걸렸다. 다시 엔진소리를 들어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나중에 차를 손봐서 다시 보여주기로 하고 헤어지면서 인사를 할 때까지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원래의 목적과는 멀어진 기묘한 모임이었다. 차를 보러 와서 구경을 당한 셈이고 배터리 충전까지 도와주고 간 셈이다.

이 정도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차를 맡기는 것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차의 예쁜 실루엣을 보고 있자니 또 보내기가 싫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처분하지 않으면 다른 차종을 들여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오랫동안 기르던 강아지를 분양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원하던 다른 차종을 타보고 싶기도 하다. 아주 미묘한 균형이 마음 어디엔가에 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다투지 말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분명 병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만큼 그 차를 좋아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현재도 갈등중이다. 매니아라는 것은 약간은 지나친 집착병인 것이다. 어쩌면 문제의 차를 넘겨주면 그 집착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차를 넘겨주지 않고 파츠를 만들면 집착이 아니라 죄책감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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