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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 의사신문
  • 승인 2010.10.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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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째 보살피고 있는 나도풍란. 때로 살펴보고 촉촉하게 물 한 번 줄 뿐인데 떠나지 않고 아직 내 곁에 있어 기특하다.
달포 전 아들을 육군 논산훈련소에 들여보내고 서운한 마음에 강진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가족과 떨어져 지낸 다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만덕산이 거기에 있습니다.

임실 어느 곳의 고개를 넘어 구불구불한 길을 내려가다 보니 오래된 집 한 채와 그 옆에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허름한 간판에 얼핏 난원이라는 글씨가 보여 차를 멈췄습니다. 다니는 차도 거의 없는 늦은 오후 중년의 사내 몇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난 구경 좀 하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서울서 오셨어요?”
 “예.”

지금은 거리에 잘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차를 모는 사람임을 알고는 난실에 뒤따라 들어오지도 않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난실에는 인근 산에서 채집해 온 난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환기를 위해 큰 선풍기가 돌고 있었고 습도도 높아 곧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난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주 어린 난이라 단순히 난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분양받아 기르기에 부담스럽게 보입니다.

이미 70년대 초에 일본의 난 수집가들이 우리나라의 남녘 시골 마을을 돌며 종자가 될 만한 난들을 거의 싹쓸이해 갔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뒤 이어 우리나라도 조금 살만해 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갈고리와 호미를 들고 다시 산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른 봄 보춘화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특별한 색을 지닌 변이종 꽃을 찾겠다고 포기마다 꽃대를 따서 확인하고 조금 보기에 좋다 싶으면 일단 캐내는 통에 춘란 서식지가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산 속의 난을 찾아다니며 상품가치가 있을 만한 난을 채집하는 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난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하니 한 분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난이 출현할 만도 합니다. 얼마 전 난 절도범들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수억 원을 넘는 난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정도의 난이면 이미 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 알려져 있어서 판매가 불가능했을 테고 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어설픈 애호가로서는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냈을 난입니다.

이러한 초 고가의 난은 늘 있어왔습니다. 정성을 들여 배양을 하고 개체 수가 늘면 가격은 점차 하락합니다. 소장자의 수도 늘어나고, 한 때 수천만 원에도 팔지 않던 난들이 수십만 원까지 내려가기도 합니다.

이젠 마음만 먹으면 조직배양 기술을 이용해 공장에서 상품을 제조하듯 대량으로 그 특별한 난을 생산해 출하할 수도 있을 듯하니, 어쩌면 난에 매겨지는 값이 의미가 없어질 때가 곳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네덜란드에선 한 때 귀한 품종의 튤립을 구입하기 위해 집 몇 채 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누구나 부담 없이 화분에 기르다 꽃이 지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매겨지는 값이 단돈 천 원이라도 난을 너무 가볍게 대하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잘 것 없는 난처럼 보여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그 살아 있음이 산골짝 어느 곳에서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덤빌만한 귀한 품종의 난을 잉태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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