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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아놀드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
  • 의사신문
  • 승인 2010.09.3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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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6중주의 풍부하고 화려한 `현의 화음'

25세의 쇤베르크는 1899년 어느 날 세기말 사상의 위대한 시인인 리하르트 데멜의 시 `정화된 밤'을 읽고 영감을 받게 된다. 그는 같은 제목으로 현악 6중주곡을 쓰게 되는데 이는 세기말적 감정의 텍스트를 새로운 대위법적 감각으로 작곡한다. 이 작품은 쇤베르크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그가 아직 후기 낭만파의 테두리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당시에 쓰여 졌다. 이 곡은 5 단계로 구분돼 있다. 제1부, 제3부, 제5부는 달밤에 냉기 감도는 숲속을 거닐고 있는 두 연인의 무거운 기분을 묘사했고, 제2부는 여자의 고백과 후회를, 제4부는 남자의 이해심과 달빛으로 상징되는 깊은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정화된 밤'

두 사람의 연인이 싸늘한 숲속을 거닐고 있네./ 달은 그들을 따라 걷고, 그들은 달을 쳐다보네./ 달은 중천에 떠 드높은 떡갈나무 위를 걷고 하늘에는 달빛을 가릴 구름 한 점 없네./ 달빛 속으로 긴 그림자가 비치네./

여인은 곁의 남자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길,/ “나에겐 아기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아기가 아니랍니다./ 나는 죄를 짓고 당신 곁에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미 행복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풍요로운 생활과 어머니로서의 행복과 그 의무에 대한 강한 염원을 지니고 있어요./ 나는 감히 두려움에 떨며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내 몸을 맡기고, 그것을 축복했어요./ 이제 인생은 내게 복수를 하는군요. 지금 당신을 만나게 되다니…”/

그녀는 굳은 걸음으로 걷고 있네. 그녀는 달을 쳐다 보고 달은 그녀와 함께 걷고 있었네./

남자가 말하길,/
“그 아이는 당신 영혼에 그리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보시오. 달빛이 얼마나 세상을 감싸 주고 있는가를./ 우리는 차가운 호숫가를 거닐고 있지만 따뜻한 온기가 내게서 당신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온기는 아기를 정화시켜 나를 위한 나의 아기로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내게 빛을 안겨다 주었소. 그 아이를 제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포옹하며 입맞춤을 하네. 둘은 달빛 아래 깊은 밤을 끝없이 거닐고 있네./

쇤베르크는 비엔나의 유대인 상인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은행에 근무하면서 취미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로 활동하였다. 어느 날 지휘자 체를린스키를 만나게 되면서 대위법을 배운 후 독학으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접어든다. 또 브람스, 바그너 등 후기 낭만파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는다. 훗날 쇤베르크는 12음계법을 창안하여 20세기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알반 베르크, 베베른 등 많은 뛰어난 제자를 육성, 그들과 더불어 `사적 연주협회'를 결성했으며 이는 훗날 제2차 빈 악파로 불리게 된다. 초기의 작풍은 후기 낭만파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현악 6중주곡 정화된 밤,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구레의 노래 등의 작품에서는 바그너와 말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정화된 밤' 이 작곡될 무렵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당대의 작곡가들은 음악을 통해 시적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문학적인 내용을 상징하는 묘사적인 관현악 작품들을 시도하였으며 그것은 바로 `교향시'라는 장르로 표현된다. 쇤베르크는 `정화된 밤'을 현악 4중주가 아닌 현악 6중주로 구성하여 현의 화음을 더욱 현란하고 풍부하게 채색하고 중후한 짜임새로 직조하여 관현악적인 느낌을 갖게 하였다. 몇 년 후에는 이를 현악합주용으로 편곡하면서 더욱 교향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게 편곡하게 된다.

■들을만한 음반 : 라살 4중주, 도널드 메키니스(비올라), 조나던 페기스(첼로)(DG, 1982); 줄리아드 4중주단, 발터 트럼플러(비올라), 요요 마(첼로)(CBS, 199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DG, 1973); 피에르 블레즈(지휘), 뉴욕필(CBS, 1973)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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