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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들에게 햇볕을
난들에게 햇볕을
  • 의사신문
  • 승인 2010.09.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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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세 촉이 올라오더니 이제는 제법 어미 촉과 비슷한 크기로 자랐다. 햇볕과 거름 주며 보살피면 한 겨울 앙증맞은 꽃을 볼 수도 있겠다.
지루한 9월 장마가 정말 끝난 듯합니다. 인근 산에 가보니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다들 오랜만의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산은 아직도 그동안 내린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어 축축했지만 그래서 더 신선했습니다.

사람들만큼이나 난도 가을을 좋아합니다. 여름이 오면 난은 숲의 짙은 그늘 속에서 가을을 기다립니다. 마치 한 겨울 굴속에서 잠든 채 봄을 기다리는 산짐승과 비슷합니다. 잎과 뿌리의 성장도 잠시 멈추고 힘을 아끼며 때를 기다립니다. 한 여름에는 난을 잠시라도 뙤약볕에 내어 놓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시커멓게 변합니다. 이렇게 햇볕에 화상을 입은 난 잎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9월이 지나고 10월이 가까워지면 난은 본능적으로 가을을 느끼고 일제히 꽃을 올리고 향을 내뿜어 번식을 준비합니다. 한 겨울에 꽃을 피우는 보세란들은 꽃눈 틔울 준비를 하고, 이윽고 겨울을 느끼기 시작하면 꽃대를 올립니다. 그리고 다음해 봄에 꽃을 피우는 춘란 역시 땅 속에서 꽃을 준비합니다. 가을이 깊어져 나뭇잎이 떨어지고 풀이 스러지면 햇살이 숲 깊이까지 스며들면 난의 생명활동이 왕성해집니다.

사무실에서 난을 키우는 경우 조금 사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무실 환경은 봄이 지나고 기온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냉방을 시작합니다. 난으로서는 여름을 맞이하지 마자 바로 가을을 느낍니다.

보통이라면 9월이나 10월에 싱싱한 꽃을 피우는 추란(적아소심·관음소심·철골소심 등)이 7월 중순부터 꽃대를 빠르게 키워 올립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여름 사무실에서 키우는 난에서 올라오는 꽃대는 가늘고 꽃도 대여섯 송이 남짓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젠 집 안에서, 사무실 안에서 키우던 난을 잠시라도 밖에 내어 놓아 기르기 시작할 때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오랫동안 직사광선을 받으면 난 잎이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처음엔 가능하다면 오전 10시쯤 잠깐 내어 놓았다가 들여 놓고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을은 여름보다는 건조하기 쉬운 계절이므로 물주는 횟수도 조금 늘립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화분 위에서 흠뻑 뿌려 줍니다. 난이 물을 싫어한다는 생각에 스프레이로 잎에만 몇 번 뿌려주는 것으로 물주기를 대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난은 말라 죽습니다. 화분 아래로 물이 충분히 빠지도록 한 번에 많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화분 속의 돌이 물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고 분내 환기도 이루어집니다. 

꽃이 피었다면 일주일 정도만 꽃과 향을 감상하고 아깝기는 하만 과감하게 잘라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난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꽃대를 잘라낸 후에는 거름과 물도 부족하지 않게 주어야 난이 상하지 않고 튼튼하게 내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말 못하는 식물에 불과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한층 더 살가운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습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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