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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E단조 op. 98
요하네스 브람스 교향곡 제4번 E단조 op. 98
  • 의사신문
  • 승인 2009.01.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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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 속 강철같은 무한한 생명력


브람스는 낭만주의 전성기에 태어나서 후기 낭만주의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의 생애에는 낭만주의가 도도히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고전주의 성향을 고집하면서 그 나름대로 `신고전주의'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일관하였다. 그가 철저하리만큼 표제음악이나 낭만적인 화성을 배격했던 배경에는 이러한 고집과 철학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브람스의 음악은 하나같이 무겁고 내면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어, 아련하고 낭만적인 리릭시즘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바그너를 비롯한 동시대 작곡가들이 너무도 음악적 희유에 지나친 나머지 감성에 물들고 심지어 너무 드라마틱한 음악들을 써냈던 것을 생각하면, 브람스가 차지했던 당시의 위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이러한 배경에서 브람스에 가장 근접한 작품은 바로 교향곡 제4번이 아닌가 싶다. 교향곡 제4번에 농축되어 흐르는 일관된 정서가 지나치리만큼 고전적이며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인데, 노경의 무르익은 내적 세계가 가장 잘 표출된 마지막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교향곡 1번과 같은 비장함이나 교향곡 2번에서 느끼는 전원적인 행복감, 교향곡 3번에서 풍기는 영웅적인 호쾌함 등과는 그 정취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보다 더 내성적이고 더욱 심화된 브람스의 개성이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이중 대위법적인 기법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고전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성숙될 대로 성숙된 상태에서 고전에로의 회귀를 강력히 추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돌출하고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고전주의 이전 바로크 기법인 파사칼리아로 종결함으로써 좀 더 본능적인 몸부림으로 고전적인 면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교향곡 제4번이 완성되었을 당시 52세였던 브람스는 자신의 지휘로 궁정극장에서 초연을 하게 된다. 초연에 참석하였던 명지휘자 한스 폰 뵐로우는 이 곡을 가리켜 `강철과 같은 개성, 고요함 속에 꿈틀거리는 무한한 생명력'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교향곡을 극찬하였다. 50세를 넘긴 브람스의 중후한 악풍이 전곡에 스며있어 오래된 고급 레드 와인과 같은 텁텁함을 짙게 풍겨주고 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늦가을 황량한 벌판을 걸어가는 어느 중년 남성의 고독과 체념이 깊은 강물처럼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이 곡이야말로 브람스가 일생을 두고 추구하고자 했던 음악적인 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지막 악장을 듣고 있으면 왜 그가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한 채 여기서 붓을 놓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브람스가 임종할 때 누군가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는 “내 생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라 했다하는데 그 곡이 바로 교향곡 제4번이었다. 이 교향곡에는 브람스의 전 생애가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얼룩져 있기 때문에 이 곡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자극과 감동의 여운을 주고 있다.

제1악장 : Allegro non troppo 한숨 섞인 듯한 테마가 애절한 바이올린으로 흐르면서 마침내 인생의 가을을 느끼게 하는 우수에 휩싸여 있다.

제2악장 : Andante moderato 마치 청춘을 회상하는 듯 해질 무렵 고즈넉함이 젖어오는 분위기가 혼에 의해 나타나면서 서정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제3악장 : Allegro giocoso 가슴 속에 묻힌 감정들이 술렁이듯 스케르초가 마치 괴로움을 애써 떨쳐버리려는 허탈한 웃음 같다.

제4악장 : Allegro energico e passionato (Tema con Variazioi) 바로크 기법의 파사칼리아로 약동하고 있으면서 가슴에 스미는 차가운 고적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브람스 자신만의 고고한 내면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 빈 필(DG, 1981);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교향악단(CBS, 1959);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 필(EMI, 1948); 오토 클렘페러(지휘), 필하모니아 교향악단(EMI, 1957);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빈 필(DG, 1981)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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