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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D단조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D단조
  • 의사신문
  • 승인 2008.12.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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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하느님께 헌정한 최후의 교향곡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9번이라는 숫자는 숙명이라 할 만큼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을 끝으로 작곡의 붓을 놓고 한 생애를 마감하게 된 것을 시발점으로 그 뒤를 따라 슈베르트도 9번 교향곡을 끝낸 채 세상을 등졌고, 후기 낭만파의 거장 브루크너 역시 9번이란 숙명의 숫자에 머물러 결국 미완성으로 남긴 채 생을 마쳐야 했다. 그러나 그의 교향곡은 0번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교향곡의 숫자는 10개다.

브루크너는 24세에 수도원 오르간니스트로 지내다 얼마동안 시골학교 교사로도 지냈으나 31세 때 비로소 음악가로 독립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40세가 되던 해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처음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아 바그너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게 된다. 훗날 브루크너의 작곡에 있어 바그너는 큰 주춧돌과 뼈대로 남게 된다.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서 시세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 안의 세계로 차분히 정진해 들어갔던 브루크너가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서야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브루크너 자신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야인적인 태도로 자연의 소리를 파헤치면서 차근차근 정점을 향해 느린 걸음을 옮겨 나갔다. 오랫동안 내재되어 있던 장대한 구축력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브루크너가 교향곡 7번을 완성하여 비엔나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을 때 그는 이미 건강을 상실한 노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교향곡 7번의 성공에 힘입어 바로 교향곡 8번에 착수하지만 그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묵묵히 작곡을 계속해 붓을 든 지 3년 만에 교향곡 8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브루크너 자신은 이 교향곡 8번을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 할 만큼 전심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1887년 이 대작을 마치자 브루크너는 또 하나의 야심적인 교향곡 9번을 착수하기 시작한다. 교향곡 8번을 완성한 지 불과 1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러나 시작은 하였지만 좀처럼 일의 진척을 보지 못한 채 브루크너는 9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야말로 간신히 연명할 정도의 체력의 쇠잔을 느끼면서도 종교적 수도자의 자세로 9번 교향곡 작곡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1892년 브루크너의 몸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 그해 가을, 죽음을 예감하고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브루크너는 그로부터 3년을 더 살면서 교향곡 9번의 마무리에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3악장을 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3악장 `아다지오'에 이어 완성을 보지 못한 끝악장 대신 자신의 곡 `테데움'을 연주해도 좋다는 유언을 남기며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 소년들 중에서 뽑혀 사제로부터 개인적인 축복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나이가 들어서 최후의 교향곡은 하느님께 바친다고 맹세했다. 결국 그의 교향곡 9번은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하느님께' 헌정된 것이다.

제1악장 : `장중하고 신비하게'. 역시 브루크너의 개시인 현의 트레몰로로 신비롭게 시작되면서 전능하신 신이 지배하는 리듬이 장대하게 나타난다.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큼 숭고함을 발산하면서 곡은 크게 출렁거린다.

제2악장 : Scherzo `가볍고 쾌활하게'. 1악장과 전혀 다른 울림으로 마치 희박한 공기와 지구의 중력사이에 진공하는 천재의 영혼의 춤과 같이 우아함과 천진함이 흩뜨려져 있다.

제3악장 : Adagio `느리고 장중하게'. 브루크너의 한 생애를 마감하는 최고의 깨달음과 드높은 경지가 평안으로 충만된 현에 이끌려 한없이 열려져 나간다. `영원의 완성은 신 앞에서 이루 어진다.'라는 가톨릭 신앙에서 브루크너의 언어는 최고, 최후의 빛을 발하게 된다.

■들어볼만한 음반 : 오이겐 요훔(지휘), 베를린 필(DG, 1965); 칼 슈리히트(지휘), 빈 필(EMI, 196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DG, 1975); 세르쥬 첼리비다케(지휘), 뮌헨 필(EMI, 1995);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 빈 필(DG, 198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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