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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 의사신문
  • 승인 2008.11.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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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스산함 닮은 '비애의 선율'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스산한 늦가을에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면 잔인한 달은 11월이라는 생각이 든다. 11, 12월이 되면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자주 듣게 되는데 11월에는 `비창'교향곡, 12월에는 크리스마스를 연상하는 발레곡인 `호두까기인형' 등이 그러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러시아적인 침울한 시정, 유럽풍의 세련된 우아함, 야성적이고 감정적인 도취를 잘 호소하는 것이 특징으로 그만의 색깔을 은은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향곡 6번 `비창'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틀 후 연주되었을 때 흐느껴 우는 러시아 사람도 많았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일생 최대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지휘해 초연한 후 9일이 지난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이 당시 모스크바에 만연된 콜레라에 의한 병사인지 자살인지는 아직도 수수께끼 속에 쌓여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작곡할 때부터 자신의 최대 걸작을 만들려고 결심했고 여행 중에도 머릿속에서 이 곡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었다고 한다. 이 교향곡은 인생의 공포, 절망, 패배 등 모든 인생을 부정하는 정서를 나타내고 있으나 표제악적 내용은 특정한 사건이나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지는 않았고, 인간이 갖는 비극의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곡은 순수한 표제 교향곡이라고는 볼 수 없고 형식적인 면에서만 표제악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한편 고전 교향곡의 형식보다도 제법 자유롭다.

`비창'의 정서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준다. 이 곡은 그 훌륭한 구성에 의해서 감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만인의 가슴에 격렬하게 호소한다. 그의 어떤 작품에도 없는 탄식과 절망을 담고 있는 `비창'이라는 부제는 작곡자 자신이 붙인 것이라 한다. 이 곡의 유래에 대해서는 차이코프스키가 쓴 편지들에 의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889년 10월 어느 날 “나의 창작의 최후를 장식할 장중한 교향곡을 작곡하고자 한다”고 글을 썼고, 1993년 2월에는 “여행 중 표제가 있는 교향곡의 구상을 얻었다. 이 표제와 악상을 생각하면서 방황하고 눈물을 수없이 흘렸다.…그러나 나의 최후의 교향곡이 완성을 본 것과 그리고 진혼곡과도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느낌은 나로서는 적지 않게 당혹스럽다”는 글을 동생에게 남겼다. 이러한 편지들은 `비창'이라는 표제가 붙게 될 당시 차이코프스키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교향곡은 애처로운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선율의 아름다움과 균형 잡힌 형식의 관현악법적인 처리는 더욱 이 곡을 인상적으로 보이게 한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슬픔과 번뇌를 나타낸 악장으로 온갖 비애와 운명에 대한 체념, 죽음에 대한 공포, 젊은이의 정열 등의 감정을 템포의 급변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2악장은 러시아 민요에서 유래된 리듬으로 우아한 듯 하면서 어딘가 불안한 선율이 현악기의 피치카토를 타면서 저음부 첼로로 젖어들어 환상과 불안의 반복인 덧없는 인생의 유희를 표현한 흔적이 엿보인다. 중간에 러시아 풍의 향토색을 표현하고 있다.

제3악장은 행진곡 풍의 악장으로 절망에 대한 투쟁의 격렬한 공격을 연상하게 하는 한편 그것이 마치 인간이 운명에 저항하는 우매함을 조소하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제4악장은 슬픈 탄식과 절망을 나타낸 악장으로 이 교향곡의 절정을 나타내고 있다. 흔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빠르고 강렬하게 끝을 맺는데 이 교향곡에서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면서 아주 무거운 기분으로 비창의 감정을 끌게 하면서 끝을 맺는다. 음악을 다 듣고 난 후에도 그 감정을 한동안 남게 만들고 있다. 마치 늦가을의 11월처럼…

■들을만한 음반 : 에프게니 므라빈스키(지휘), 레닌그라드 필하모니(DG, 1960);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지휘), 베를린 필(DG, 1938); 에프게니 스베틀라노프(지휘), 소비에트국립교향악단(멜로디아, 1968);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지휘),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DG, 1980)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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