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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86>
결혼 <86>
  • 의사신문
  • 승인 2008.09.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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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갑자기 오래전에 필자가 신장암으로 진단한 25세의 젊은 처녀와 그녀와 사귀고 있었던 28세의 젊은이가 생각난다.

여자친구가 신장암 말기로 진단받은 다음 대학병원에서 앞으로의 삶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남자는 직장을 휴직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가 여행을 원하면 여행을 다녔고 그녀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녀와 같이 먹고 그녀에게 옷을 사 주었다. 그녀가 6개월 후에 임종을 앞두고 육체가 마를대로 마르고 가쁜 숨을 쉬며 누워있을 때도 그녀곁을 지키며 생명이 꺼져가는 마른 손을 놓지 않았다. 이는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라 필자가 경험한 실제 이야기다.

1970년대 초에 개봉한 영화 `러브스토리'를 다시 봤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자신의 마음과 시간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요즘같이 분주하고 메마르고 계산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제는 한 동료의사로부터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자신의 큰 딸을 시집보내려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세상이야기를 듣게 됐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남자 측 부모는 결혼조건으로 10억 정도를 줄 수 있냐고 물어왔고 어떤 치과의사 부모는 자기 아들과의 결혼 조건으로 여러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은 벌어놓은 돈도 없고 만약에 있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한 현실에 그냥 기가 막히더란 이야기를 하며 한숨지을 때 나도 따라 한숨이 나왔다. 필자도 비슷한 나이의 두 딸을 두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릴 듯이 주위가 캄캄하고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행복한 결혼,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 보다는 결혼 당사자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잘못된 영향력과 집안의 문화적 유산의 집착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정서적 차이를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연합은 온전하게 떠남을 이룬, 다시 말하면 온전한 독립을 이룬 인격체 사이에서 가능한 일이다. 부모를 떠나 데이트를 통하여 자신과 비전이 맞는 사람을 고르고 남녀의 차이를 배우고 인정하며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다.

결혼이란 개인의 삶과 연합의 삶이 조화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부모를 잘 떠나면 떠날수록 연합이 잘 이루어지며 연합이 잘 이루어지면 질수록 건강한 한 몸을 이루게 될 것이다. 건강한 연합은 배우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모습으로 상대를 섬기는데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 사이에도 무한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두 사람은 더불어 놀라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부모는 자녀를 결혼 전까지 잘 양육해서 떠나보내야 한다. 결혼 조건을 내세우고 결혼 후에도 간섭하려 든다면 자녀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항구에 정박한 배를 멀리 보내려면 기름을 가득 실은 후(잘 양육한 후)에는 닻을 끊어 보내야 멀리 갈 수가 있다. 독수리를 잡아매두면 멀리 날 수가 없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먹구름도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우울했던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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