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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81>
행복한 가정 <81>
  • 의사신문
  • 승인 2008.08.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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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수술은 수술 후에도 200명 또는 300명당 1명 꼴로 임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는 보통 수술 후 4∼5년이 지나 생기기 쉬운데 정관수술을 많이 하는 필자는 이런 일을 많이 경험해 봤다. 그럴 경우 필자에게 따지는 사람도 있고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는 소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내가 임신이 됐다며 병원을 찾는 사람의 경우 정액을 받아 검사하고 수술을 해주면 그만이지만 정액에 정자가 없는 경우는 문제가 된다. 특히 아내가 훗날 생리를 하고 임신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되면 문제가 없지만 임신이 확실하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남자는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인데 여자가 임신이 됐다면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6년 전에 필자의 병원에서 정관수술을 받은 남자가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상기된 얼굴로 병원을 찾아왔다. 아내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성실한 남편이었고 아내도 부정을 저지를 만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와 재미있고 화목하게 사는 이 가족이 여름휴가차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필자는 남자의 정액을 받아 현미경으로 정자를 확인했지만 정자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돌려보낸 후 생각을 정리해 봤다.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확인한 뒤 중절수술까지 한 상태이니 임신이 분명하고 남자는 정자가 없으니 결국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아내를 만나 부정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재수술을 받아야한다고 설명하고 바로 수술을 단행했다(?). 남편이 수술 받던(?) 날 그의 아내도 동행했다. 나는 그의 아내와 단 둘이 있을 때 남편은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며 당신의 가정을 사랑하고 있다. 또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완전한 삶을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한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실수를 애통해하며 마음을 가난하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실수도 용서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만이 빛에 거하며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가정은 세상을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된다.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되고 한 마음이 돼 이겨나갈 수 있으며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기뻐하며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할 수 있다.

2002년 9월 11일 911 테러사건 당시 비행기나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죽음을 직감하고 휴대폰을 눌렀다. “여보 사랑해!”, “그동안 잘못을 용서해!”, “애들도 사랑해!”,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아!” 그들 인생에서 마지막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나?”였을 것이다. 건강하고 튼튼한 가족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가정은 아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가족은 문제가 있을지라도 대처할 방법을 알며 갈등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줄 안다.

나는 얼마전 퇴근길 포장마차에 들러 오랜만에 폭음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내가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속죄의 눈물이었는지 세상이 어둠에 끌려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자책 때문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환청처럼 위로부터 큰 소리가 들린다. “너희 중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주성<인천 이주성비뇨기과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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