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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89주년>진단-진료비 등 삭감
<창립 89주년>진단-진료비 등 삭감
  • 정재로 기자
  • 승인 2004.1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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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감칼날에 양심적 진료 크게 위축

 

약 30여 년간의 대학에서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얼마 전 서울 한 소재지역에서 개원한 A원장.
교직생활 동안 오직 후학양성과 환자진료에 자신의 소신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고 자부한 A원장이지만 개업 후 몇 달이 안가 그 소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처음으로 청구한 진료비가 무려 30%나 삭감된 것.
30년간 대학에서 환자들을 위해 배우고 익혀 오며 환자치료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믿어왔고, 30년간 후배들에게 가르쳐 온 지식이지만 개원가에서는 이것은 오직 건강보험재정을 좀 먹는 불필요한 의료행위일 뿐이었다.
A원장은 어쩔 수 없이 심사지침에 맞춰 진료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30년간의 환자의 건강을 위해 지켜 온 A원장의 소신은 단지 현지실사와 몇 배로 청구될 약제비 환수조치의 불안감으로 가로막히고 있다.

과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부당삭감에 따른 회원들의 불만과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
최근 서울특별시의사회(회장·朴漢晟)가 회원 9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회원의 90.2%가 현 진료비 심사기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재의 삭감기준이나 구체적 삭감사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회원이 97.7%에 이르고 있어 결국 대부분의 개원의들이 현 심사기준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평원이 최근 발표한 2001년부터 2004년 8월까지의 심사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요양기관이 심사조정된 금액은 전체 9688억원에 이르며 이 중 '의원'은 382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기준 조정건율은 14%, 청구총진료비 중 조정된 금액은 평균 1.5%)

급여기준 초과시 약국 약제비까지 환수

심리적 불안 따른 축소청구 경영난 가중

문제는 이렇게 표면적으로 나타난 수치보다 무분별한 삭감으로 인해 억제되는 진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시의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회원의 98%가 삭감되는 것을 우려해 부득이하게 환자에게 시행해야 할 검사나 처치, 약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58.6%는 이러한 경우가 '많다'다고 답해 진료비 삭감이 의사들의 소신진료를 제한,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가로막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진료비 삭감 외에 억제되는 금액은 이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심평원이 심사결과를 요양기관에 통보해 급여를 적정선으로 유도해 나가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급여 적정성 종합관리제' 역시 개원의들의 심리적 불안을 야기시켜 삭감 이상의 재정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심평원이 발표한 종합관리제 시행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하반기부터 6개월 동안 종합관리제 실시로 인한 청구비용개선금액(종합관리제가 없었다면 청구했을 것으로 예측되는 진료비에서 종합관리제 실시 후 실제 청구된 진료비의 차이)은 약 357억원으로 한해 약 700억원의 비용절감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재정안정화 대책의 재정절감 효과' 자료에 따르면 진료비 심사기준 강화(2666억원), 급여기준 강화(1567억원), 약제비 적정성 평가(748억)로 표면적으로 절감된 액수만도 연간 5017억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개원가의 소신진료를 가로막고 임상기준과 동떨어진 심사기준을 개선할 것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지만 이 주장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올해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립 의료원, 대학병원, 경찰병원, 보훈병원, 각 지방공사 의료원, 각 군 보건소 등 국공립 요양기관의 2002년 총 진료비비청구액은 9975억원으로 이 중 심사조정액은 196억원 조정률 2.0%로 전체요양기관의 조정률 1.5%보다 0.5%가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또한 작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감자료에 따르면 공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산병원이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중 심사조정액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진료비 심사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이 관련 자료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지만 재정안정화 대책에 맞물려 심사기준은 요지부동이다.

이에 대해 전재희 의원은 ""국공립병원이 민간의료기관 보다 과잉진료하고 있다는 것은 심평원의 '요양급여기준' 범위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열린우리당 이상락 의원 역시 ""현재 심평원의 심사지침이 정당한 의료행위에도 불구하고 진료비를 축소 청구하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며 ""심사지침의 세밀화 및 투명한 공개를 통해 공신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는 불합리하고 모호한 현 심사기준이 야기시키는 문제가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처방이 이러한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할 경우 그 모든 책임을 의료기관에 물어 외래관리료와 약국 약제비를 의료기관의 진료비에서 환수하고 있어 의사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약국에서 과잉청구한 원외처방약제비를 의료기관 진찰료에서 차감한 금액이 2001년부터 2004년 6월까지 24만6000건, 총 400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그 액수는 매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2001도년 17억, 2002년도 162억, 2003년도 207억원)

결국 의사 본인의 소신 있는 양심적 진료 행위에 의해 발행된 처방전이 요양급여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으로부터 벌금 징수되듯 진료비에서 삭감되고 있다.

 정재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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