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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 1번 D단조, 작품 15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 1번 D단조, 작품 15
  • 의사신문
  • 승인 2008.06.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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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관현악 색체로 교향곡풍 성격 특징


19세기 후반은 대체로 리스트와 바그너의 시대였다. 리스트는 바이마르 근교의 호화로운 저택 아르텐베르크장에서 `신독일파'의 바르트로조(비루투오조?)적인 제왕으로서 젊은 음악가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조금 늦게 바그너는 1876년 바이로이트에 겉으로 보기에도 이상한 모습의 극장을 건축하여 마치 음악은 음악극이나 표제음악이 아니고서는 이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낭만주의'를 정복한 듯 하였다.

이러한 와중에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0세에 이미 실내악 연주회의 피아노 파트를 연주할 정도로 성숙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20세가 되던 1853년 헝가리 망명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함께 북부 독일의 몇몇 도시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레메니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아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요아힘은 이 젊은이의 인품과 재능을 인정하여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리스트에게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길로 바이마르의 리스트를 찾아갔으나 브람스는 리스트의 음악방향에 공감할 수가 없었고, 리스트 역시 브람스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아 리스트를 떠나게 된다.

바이마르에서 돌아온 브람스는 다시 요아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 부부를 찾아가게 된다. 슈만은 진심으로 따뜻하게 브람스를 환영하였다. 이러한 슈만의 호의를 결코 잊지 않은 브람스는 슈만이 정신병으로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한 이래 지속적으로 슈만과 그의 가족을 돌보게 된다.

브람스는 1858년 여름 괴팅겐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 대학 교수의 딸 아가테 폰 지볼트와 사랑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하다 마침내 그녀와 결별을 결심하고 돌아온 후 '아가테 현악 6중주'라는 곡을 작곡한다. 아가테와의 이별에 앞서 브람스는 피아노협주곡 1번을 작곡했다. 이곡은 실은 5년 전에 피아노 이중주로 작곡되어 클라라와 연습을 거듭하였으나 두 대의 피아노곡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협주곡 형식으로 개작한 곡이었다. 이 곡은 브람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까닭에 상당히 전통적인 양식에 기울고 있다. 전반적으로 극히 웅장하고 교향곡풍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독주 피아노는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어려운 연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서 관현악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현악과 대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제 1악장에서 피아노는 관현악부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악상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곡을 `피아노 파트를 갖고 있는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이 피아노 협주곡에서의 관현악 기법은 아직 완숙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청년 브람스의 질풍노도와 같은 정열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의 여러 곳에서 브람스 특유의 관현악적인 담백한 색채의 배열이 눈에 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곡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모두 화려한 비르투오조적인 기교를 자랑하는 것이었고 청중들도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람스는 이러한 기교를 무시하면서도 곡 자체는 매우 난해하게 만들었다. 이런 배경으로 외면적으로는 화려한 맛은 없고 어둡고 무거운 정열과 거칠고 떫은 맛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곡의 진정한 맛이 청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나의 교향곡적인 성격을 갖춘 이곡은 피아노가 관현악의 한 분자로 녹아들어가 있어 마치 오래된 와인의 텁텁한 타닌 맛이 깊게 느껴지듯 곡이 와 닿아 기분을 더 좋게 만든다.

■들을만한 음반: 에밀 길레스(피아노), 오이겐 요훔(지휘) 베를린 필(DG, 1972); 빌헬름 박하우스(피아노), 칼 뵘(지휘) 비엔나 필(Decca, 1977);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RCA, 1954); 루돌프 제르킨(피아노), 조지 쉘(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CBS, 1971)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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