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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협주곡 21번 C장조 KV.467. 'Elvira Madigan'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C장조 KV.467. 'Elvira Madigan'
  • 의사신문
  • 승인 2008.06.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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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생명에 리듬 맞춘 순수한 선율


문득 어렸을 때 본 영화가 가끔 머리를 스치고 지나면서 아련한 추억 속으로 젖어들 때가 있다. `엘비라 마디간'. 지금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안단테의 선율을 들을 때 마다 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두 연인의 최후를 떠올리게 된다.

햇볕이 춤을 추는 녹색의 들판에서 한 쌍의 남녀가 뛰놀고 있다. 남자는 스웨덴의 귀족이자 육군 중위인 식스텐 스파레 백작, 여자는 서커스단에서 도망친 엘비라 마디간이다. 식스틴 스파레 백작은 처자가 있는 몸이면서도 비천한 신분의 아가씨 엘비라 마디간과 사랑에 빠져 세상의 눈을 피해 정처 없는 사랑의 도피에 나선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벌레들의 울음소리, 나뭇잎이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 이런 자연의 생명에 리듬을 맞추기라도 하듯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다장조 KV 467의 제2악장 안단테가 조용히 흘러나온다. 그 멜로디의 흐름을 따라 꽃들은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찬란한 녹음은 더욱 짙어지며 햇볕은 순결하게 빛난다. 그 속으로 안단테 악장이 마치 부드러운 파도처럼 감미롭고 순수하게 시적인 선율로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봄날 이름모를 새들, 들꽃들, 눈부시게 흰 햇빛, 여자의 하얀 목덜미와 그리고 모차르트… 나비들이 날고 엘비라는 나비를 잡으려고 시냇가로 달려간다. 여자가 나비를 두 손으로 막 잡으려는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여자의 손 갈피 사이로 흰 나비가 날아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 발의 총성. 마치 소네트처럼 짧고 아름다웠던 그 사랑의 최후를 장식한 것도 역시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보다는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이 곡은 영화에서 식스텐과 엘비라의 사랑의 기쁨을 상징하는 테마로 주로 전반에 쓰이고 있다. 이 협주곡은 그 많은 장조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고전파 협주곡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제1악장 Allegro maestoso에서는 협주곡풍에 맞게 변화된 소나타형식으로 오랜 기간의 오케스트라 튜티 후에 솔로가 들어가면서 좀 더 명확하게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제2악장 Andante에서는 숭고하리만큼 장중한 안단테로 화성을 바탕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성악적 선율은 풍부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 `엘비라 마디간'과 같은 영화에 사용될 만큼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악장이다. 제3악장은 Allegro vivace assai로 구성되어 있으며 엄격한 소나타 론도로 반복되는 주제의 첫 음에 완전히 바탕을 두면서 마지막 반복에서는 간결하게 코다의 역할을 하게 된다.

KV 467 C 장조는 KV 466과 더불어 관현악의 개막과 솔로가 서로 다른 주제적인 요소로 시작되어 대조가 명백하다. 모차르트 협주곡들은 솔로와 오케스트라 파트 사이에 복잡하면서도 미묘하게 천재적으로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예로 한 마디나 그 보다 짧은 것이 삽입되어 솔로와 튜티 사이에 서로 주고 받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KV 467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들을만한 음반  디누 리파티(피아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EMI, 1950); 릴리 크라우스(피아노), 스테펜 시몬(지휘), 비엔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CBS, 1968); 게자 안다(피아노, 지휘), 짤쯔부르크 모짜르테움(DG 1967); 프리드리히 굴다(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빈필 오케스트라(DG 1975); 빌헬름 캠프(피아노), 베른하르트 클리(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DG 1967); 미찌코 우찌다(피아노), 제프리 테이트(지휘),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Decca 1988)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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