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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 5번 작품 73 '황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 5번 작품 73 '황제'
  • 의사신문
  • 승인 2008.05.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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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류애 표현한 '위풍당당' 협주곡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봄날과 어울리는 협주곡을 권하라면 얼른 떠오르는 명곡이 있다. 게다가 `애국의 달' 6월을 감안한다면 주저 없이 베토벤의 `황제'를 손꼽게 된다. 이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모든 면에서 가히 `황제'라 불릴만한 베토벤 최고의 걸작에 속한다.

제4번 피아노 협주곡을 그의 가장 내향적인 협주곡이라 한다면 5번 협주곡은 가장 외향적인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악장은 유럽 사회를 흔들어 놓던 1800년 초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당시 나폴레옹은 1806년 프러시아에게 승리를 거둔 후 권력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베토벤의 시각과는 상반되게도 이 곡에 붙여진 `황제'라는 타이틀은 그 곡의 당당함이 마치 제왕을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졌다. 이런 제목이 붙여진 것에 대해서는 베토벤 자신도 알지 못했으며 그 당시의 특정한 황제를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붙여진 제목도 어느 정도의 사실을 함유하고 있는데 비록 이 협주곡이 반 나폴레옹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기는 하되 이것이 나폴레옹 시대가 낳은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이 당시 철학자 헤겔도 나폴레옹을 `역사를 이끄는 세계의 정신'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해석하는 이러한 `세계의 정신'은 음악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며 이는 바로 베토벤인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는 신념에서 베토벤과 나폴레옹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제3번 교향곡 `영웅'이 나폴레옹에게 헌정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이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되며 이 협주곡의 작곡자가 자신을 시대정신의 구현자로 여겼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곡을 너무 정치상황에 비춰 해석하는 것은 너무도 피상적인 판단이 된다.

이 곡을 기점으로 베토벤은 1810년 에그몬트 서곡, 1812년 제 7번 교향곡, 1813년 `웰링턴의 승리'와 같은 애국심이 깃든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권력의 찬탈자, 혁명의 반역자, 민중의 압제자를 응징하기 위해 그가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이 당시 프랑스군이 비엔나를 점령하고 자신의 가장 절친한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이 비엔나에서 피난을 떠나는 등 여러 가지로 시달리던 시기에 작곡됐다. 이 당시 프랑스군 장교와 마주쳤을 때 베토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내가 만약 전투를 대위법만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쳐부숴 버릴 텐데…”하고 말했다는 일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곡의 초연은 라이프치히에서 오르가니스트였던 슈나이더에 의해 연주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됐다. 이 협주곡의 세 개의 악장은 각각 전체를 위한 구성요소가 되고 있다. 제 1 악장은 allegro로 당당하고 장대한 진군가, 2악장은 adagio con poco mosso로서 기도하는 듯한 우아함이 깃든 송가, 그리고 3악장은 rondo allegro 형식으로 폭발적이고 힘찬 원무가 그것이다. 그들은 각각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있으나 전체의 이상은 항상 그들 각각에 우선하는 가치이다.

결국 이 곡에서 베토벤은 애국심보다는 자유가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고 그 자유의 모습은 인류와 형제애, 그리고 그들의 환희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들어볼 만한 음반 : 빌헬름 박하우스 (피아노), 이셀 슈테트(지휘)_ 데카 1958년; 에드윈 휘셔(피아노), 프루트벵글러(지휘)_ 그라모폰 1952년; 빌헬름 켐프(피아노), 헤르난디 라이트너(지휘)_ 그라모폰 1965년); 에밀 길레스(피아노), 죠지 쉘(지휘)_ EMI 1967년; 마우리치오 폴리니(피아노), 칼 뵘(지휘)_ 그라모폰 1977년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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