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동(박에스더), 그녀의 후예들

안명옥의 ‘역사를 만든 여의사들’ (4)

2025-10-17     안명옥 前 차의과학대 교수(제17대 국회의원)
▲1918년

1900년 첫 여의사 김점동(박에스더)가 나온 이후 1918년까지 여의사 배출은 맥이 끊겼다. 제중원 의학당, 세브란스병원의학교와 (관립)의학교에서도 초기에 여성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은 외국, 주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와야 했다. 1918년 4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안수경.김영흥.김해지 3명과 7월에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허영숙이 맥을 이었다. 

같은 기간 남자들은 1886년 4월10일의 제중원 의학당이 시작되고, 1899년 9월 개교한 3년 속성과정의 관립의학교와 1900년 이후 에비슨의 정식 제중원 의학 교육 등으로 이어졌다. 남의사는 1908년 6월3일 세브란스병원 의과대학의 의학박사 학위를 받는 첫 졸업생 7명이 탄생하며 본격적으로 정식 의사 배출이 시작됐다. 

반면 여의사는 1900~1901년에 제중원 여의사 에바 필드(Eva H. Field Pieters, 1868~1932)가 여학교 학생 중 똑똑한 학생들을 교육하고자 2명을 제중원 의학당에서 가르쳤으나 졸업과 연결되지 못했다. 이번 호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여의사들 이야기부터 간략히 살펴본다. ‘역사를 만든 여의사들’ 책 3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므로 자세한 사항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일제 강점기 시대 여성 의학교육
1. 일본 유학을 통한 여의사 배출

첫 번째로는 1900년 창립된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다. 1918년 졸업한 허영숙 이후로 △임행(1919년) △정자영(1920년) △현덕신(1921년) △박정(1922년) △송복신.한소제.길정희.유영준(1923년) △이덕요(1924년) △전혜덕(1925년)이 졸업했다. 이후 한동안 졸업생이 배출되지 않다가 다시 1930년부터 해방 전까지 모두 59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두 번째로 많은 한국 여학생이 졸업한 학교는 1925년 창설된 제국여자의약전문학교다. 장문경.김용희.문성 3명이 최초로 입학한 한국 유학생이며, 동시에 1930년 1회 졸업생이다. 해방 전까지 이 학교를 졸업한 한국 여성은 최옥자(세종대 설립자) 등을 포함해 36명에 달한다. 또한 오사카여자고등의학전문학교는 1935년 박봉성을 필두로 1944년까지 6명이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여성 의학교육
2. 국내 여자 의학 교육

1886년 1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최초 의학 교육을 시작한 제중원의학교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로 불리며 1908년 6월 조선 최초의 면허를 갖춘 의사로서 첫 졸업생 7명을 배출했다. 반면 여의사 교육은 에바 필드가 1900년부터 1901년까지 2명을 교육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첫 여의사 졸업은 1953년이었다. 

한편, 경성의학전문학교는 1899년 관립의학교로 시작해 1907년까지 대한의원 부속 교육부.의육부를 거쳐 1909년 대한의원 부속 의학교가 됐다. 이듬해인 1910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의원양성소(의학강습소)로 강제 강등당했다가 1916년 4월 경성의학전문학교로 개칭됐다. 

1914년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일 당시, 조선총독부가 로제타 홀(Rosetta S.Hall, 1865~1951)의 건의로 조선 여학생 △안수경 △김해지 △김영흥 3명을 청강생으로 허용했으며, 이들은 1918년 졸업과 동시 의사면허증을 획득했다. 1918년 4월1일자 ‘총독부관보’ 경성의학전문학교 47인 졸업자 명단에 이들의 이름이 있다.

이어 같은 해 5월18일자 ‘총독부관보’ 의사면허 취득자 명단에 △안수경(244번) △김영흥(248번) △김해지(251번)의 면허 번호와 함께 실렸다. 국내파 여의사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1925년에는 △고수선 △윤보명이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26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설됐다.

한편, 일찍이 1913년에도 로제타 홀과 메리 커틀러(Mary M. Cutler, 1865∼1948)가 평양 광혜여원에 여성의학반을 설치해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소녀들에게 기초교육과 실습교육을 시도한 바 있다. 1928년, 당시 동대문부인병원장이던 로제타 홀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동대문 부인병원에 있는 길정희와 여자 의사 교육기관 설립을 본격적으로 도모했다. 이들은 당시 이화전문학교 교의인 유영준과 여의사 현덕신을 비롯해 이상재.윤치호 등 각계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결과 1928년 5월19일 조선여자의학전문학교 창립총회가 열렸고, 1928년 9월4일 경성여자의학강습소가 개소했다. 당시 예과생 17명, 5년제(예과 1년.본과 4년) 학제로 소장은 로제타 홀이, 부소장은 길정희가 맡았다. 교육은 당시 각 의학전문학교 한국인 의사들이 무료로 강의했으며 1933년까지 예과생을 총 6회 모집했다. 이후 1933년 로제타 홀이 은퇴하며 7월1일자로 조선여자의학강습소 경영책임이 김탁원.길정희 부부에게로 인계됐고, 1934년 7월28일 교우회지 창간호 발행 당시 학생 수는 모두 49명이었다. 

1934년 6월9일의 1회 졸업생 박순정을 포함한 5명은 모두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했다. 1936년 6월20일에는 총 4명이 2기로 졸업했다. 그러나 로제타 홀이 귀국하며 감리교재단 지원도 종식돼 강습소 운영은 힘들어졌다.

결국 여자의학전문학교로 승격하기 위해 1934년 재단법인 설립위원회를 발족했고, 전라남도 순천의 부호인 우석 김종익의 유언과 파격적인 거액 기부를 받아 개교했다. 1938년 4월8일에는 재단법인 우석학원이 설립됐고, 이어 5월16일 제1기 예과 입학생 68명의 입학식을 거행했다. 1941년 9월1일에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혜화동에 개원했다. 제1회 졸업식은 전시 상황으로 1942년 9월30일에 6개월 단축해 열렸다.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의 일본인 운영은 막을 내렸다. 이어 8월16일자로 정구충 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며 원래 설립 목적이던 한국 여성 대상 의학교육의 중심에 섰다. 1945년 9월29일에는 제4회 졸업식이 성대히 열려 총 37명의 졸업생에게 우리말 졸업장이 수여됐다. 1946년에는 졸업식이 없었고, 제5회 졸업식은 1947년 5월1일 시행됐다.

이후로는 학제개편이 시작됐다.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이 된 후 1957년 남녀공학인 수도의과대학으로 개편되고 △1967년 우석대학 △1971년 12월9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과의 병합을 거쳐 오늘의 고려의대가 됐다. 이 밖에, 의학강습소나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해 의사면허시험(의사검정고시)에 합격해 의사가 된 여성들도 30여명 있었다. 독학으로 공부해 응시.합격한 여성은 △김금선 △윤영은 △이인숙 △정남술 △김동숙 등이 있다. 그러나 검정고시 제도는 1946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일제 강점기 시대 여성 의학교육
3. 해방 이후 우리나라 여성 의학 교육

해방 당시 우리나라의 의학계 고등교육기관은 △경성의학전문학교(1916년 개교, 이하 개교연도) △사립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1917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1926년) △평양의학전문학교(1933년) △대구의학전문학교(1933년) △경성여자의학강습소(1928년)에서 발전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1938년)까지 총 6곳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 의학교육이 6년제로 바뀌며 의학전문학교가 의과대학으로 개편됐다. 서울은 경성제국대학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가 폐지되고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의과대학이 세워졌고, 대구의학전문학교는 1945년 대구의과대학으로, 광주의학전문학교는 1946년 광주의과대학으로 개칭했다. 

세브란스는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으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1948년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승격했다. 이어 이화여자전문학교가 1945년 10월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하고 의학부.약학부를 설치하며 이화여자의과대학 시대를 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문교 당국은 서울 시내 모든 대학에 연합단일대학으로 운영토록 하는 전시 특별 조치령을 내렸다. 전시 연합의과대학은 부산에서 1951년 2월18일 처음 개강했고, 뒤이어 △대구 △광주 △전주 △대전에도 연합대학이 설치돼 의과대학도 합동 수업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60년 무렵 의학교육기관은 △서울의대 △연세의대 △서울여의대(수도의대.고려의대) △이화여의대 △경북의대 △전남의대 △가톨릭의대 △부산의대 등 8개교였다. 
이 때까지 여성의학교육기관인 이화의대와 남녀공학으로 전환된 수도의대를 제외한 타 대학에서는 여학생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의료대란 직전, 지난해 초까지 전국 의대 수는 40개로 한 해 30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