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회장 직선제 선출안, 정족수 미달로 폐기

3월29일 서울특별시의사회 ‘제79차 정기대의원 총회’ 개최 한미애 의장 “혼란과 갈등 속에서 의료계가 잃어버린 ‘신뢰’의 복원” 강조 황규석 회장 “정부 정책에는 반드시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결의문 채택 “후배 보호를 위한 모든 조처와 투쟁에 최전선에서 나설 것”

2025-03-29     남궁예슬 기자

의대 증원 확대와 의료계 내부 갈등으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시의사회가 내부 통합과 정부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다짐했다. 그러나 핵심 안건으로 주목됐던 회장 직선제 도입안은 정족수 미달로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책임 있는 대응에 나섰다. 이날 서울시의사회는 의대생 제적 사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 보호를 위해 선배 의사들이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회 내내 이어졌다.

서울특별시의사회 대의원회(의장 한미애)는 지난 29일 오후 3시 서울시의사회관 5층 대강당에서 제79차 정기대의원총회를 열고, 서울시의사회 발전 방향 및 의료정책, 의대 정원 증원 대책 등을 논의했다. 이날 총회에는 재적 대의원 183명 중 121명이 참석했으며,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한미애 의장,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 의협 박명하 상근부회장, 대한개원의협의회 박근태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미애

개회사를 맡은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 1년간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의료계가 잃어버린 ‘신뢰’의 복원을 강조했다. 그는 “전공의와 학생, 개원의, 교수, 학장, 총장, 정부, 국민, 의협 사이에 믿음이 사라졌다”며 “같은 ‘의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직역으로 나뉘어 서로 믿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사태 장기화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태 초기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흩어졌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우리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생각한다면, 먼저 우리가 그들을 믿어주고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보태는 일이며, 모든 직역을 하나로 모아야 할 역할은 강한 의협이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 의장은 올해 서울시의사회 창립 110주년을 맞이한 점을 언급하며 “110년 전 한성의사회 창립 발기문에 적힌 ‘뭉치면 이루고, 흩어지면 그르친다’는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총회가 단지 절차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서울시의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며 “회원들의 목소리를 집행부에 적극 전달하고, 서울시의사회가 의료계를 선도하는 모범이 되도록 대의원회가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황규석

황규석 회장은 축사에서 “갈등은 서로를 잘 몰라서 생긴다”며 “특히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이 큰 희생을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의사회는 내년 80차 총회에서는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하나된 의사회로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이어 “의사회 내부에서도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면 해결의 길이 보인다”며 “정부 정책에는 반드시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하

박명하 의협 상근부회장은 “의협이 의대생과 전공의 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오해”라며 “전공의 및 의대생 대표들과 지속적으로 회의하며 요구사항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정부, 대통령실 모두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책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4월 초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태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서울시의사회는 의대정원 문제, 의료인면허취소법, 방문진료 활성화 등 혼란스러운 의료 현안 속에서 꾸준히 일관된 방향성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은 혼란스러운 의료계의 중심을 서울시의사회가 잡아야 할 때”라며 “의대생의 행동은 전적으로 존중돼야 하며, 협박과 압박이 아닌 대화를 통해 이 사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원들이 서로 믿고 협력할 때 조직은 더욱 강해진다”며 내부 결속을 재차 당부했다.

김교웅

김교웅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의장도 현 의료사태의 본질을 지적하며, 정부가 의료공백의 책임을 의대생과 의료계에 전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의대 정원 확대 논란으로 촉발된 의료 사태는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 이제는 따뜻한 봄을 맞아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는 의대생들의 전원 복귀 시 정원을 원상 복구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유급과 제적을 통해 문제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년 동안 의대생과 전공의가 거리로 내몰린 현실을 외면한 채, 이 모든 사태를 의료계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김 의장은 또 “학생들의 학습권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고, 젊은 의사들의 수련 환경도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며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계 전체의 단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때, 무너진 의료체계는 복원되고 환자에게 진정 필요한 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의사회는 이날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을 통해, 현 의료 혼란의 책임이 정부의 무능한 정책 추진에 있다고 지적하며 강도 높은 유감을 표명했다. 결의문은 먼저, 2024년 이후 지속된 의료정책 붕괴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장‧차관은 그간의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하고, 의료계가 신뢰할 수 있는 당국자를 새롭게 구성해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의대생들의 복귀 여부는 스스로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결정이라고 강조하며, 서울시의사회는 이들의 판단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낸다고 밝혔다. 더불어, 만일 의대생 제적이 현실화될 경우 서울시의사회 4만 회원은 후배 보호를 위한 모든 조처와 투쟁에 최전선에서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의료패키지'에 대해서는 실효성 없는 형식적 정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개혁은 현실에 적용돼야 의미가 있으며, 의료계와 협의 없는 일방적인 의료정책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서울시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가 향후 투쟁에 나설 경우 이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국 14만 회원과 함께 의대생 후배들을 지키고 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총회에서는 2024년도 회무 및 결산보고와 2025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이 보고돼 원안대로 의결됐다. 2025년도 예산은 전년 대비 2억4999만원 증가한 34억4848만원으로 확정됐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의사회 회장 직선제 도입안은 정족수 부족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지난 26일 법령·회칙분과위원회에서 찬반 비율 18대17로 통과됐지만, 정기총회 당일 재적 대의원 183명 중 121명이 출석해 3분의 2 성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회칙 개정을 원하는 일부 회원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시의사회는 후속 회의에서 직선제 도입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날 총회에서는 송정수 부회장, 하재성 섭외이사, 김영재 강북구의사회장이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았으며, 노복균 법제이사, 노준래 정책이사, 한성존 정책이사, 임현선 송파구의사회장은 의협회장 공로패(유공)를 수여받았다. 정충남 중구 대신의원 원장에게는 개원 최고령 회원으로서 서울시의사회장 공로패가 전달됐다. 사랑의 금십자상은 안준용(조선일보), 정심교(머니투데이), 조후현(메디피나), 황민지(TV조선) 기자에게 수여됐다.

서울시의사회는 향후 건강 캠페인을 확대하고, 2027년 이후 의사 정원 추계를 준비하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의료계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결의문 채택을 통해 의료계 단결을 재확인한 서울시의사회가 4월 초를 향한 향후 투쟁의 동력을 어떻게 이어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