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를 내려놓고 핀셋을

'친절한 변호사의 친절한 법률 이야기' (119)

2021-05-03     전성훈

고려사 제19권에 재미있는 얘기가 실려 있다. 13세기 말 고려 충렬왕 때 태부경 직에 있는 박유(朴褕)라는 관료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왕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간언했다.
 
‘우리나라는 원래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데다가 인구가 적어 심각한 문제인데도, 지금 신분이 높건 낮건 1처에 그치고 감히 첩을 두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서민은 처 외에 한 명의 첩을, 대소관료는 그 이상의 첩을 둘 수 있게 하여 인구를 늘려야 합니다. 또한 첩의 자식도 본처의 자식처럼 차별 없이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사회가 안전하지 않아 남성사망률이 지금보다 더 높았고(제주도가 삼다도로 불렸던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인구=농업생산력=국방력=국력이던 시대였다. 인구를 늘리고 서얼을 차별하지 말자는 박유의 간언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충심어린 제안이었다.
 
하지만 박유가 이런 상소를 올렸다는 소식은 급속하게 수도인 개경에 퍼졌고, 개경의 여성들은 ‘극대노’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연등회 날에 박유가 왕의 행차를 호위하고 따라가게 되었는데, 어떤 노파가 박유를 알아보았다. 노파는 대뜸 앞으로 나와 박유를 손가락질하면서 ‘첩을 두자고 한 자가 저 빌어먹을 늙은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사방의 여성들이 ‘저 놈이 박유야?’, ‘박유!’, ‘박유!’를 외치면서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그를 가리켰다. 얼마나 항의하는 여성들이 많았느냐 하면, 고려사에 ‘거리와 골목 사방에 붉은 손가락이 천지였다’고 기재되어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개경의 여성들은 그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그의 이름이 ‘박유’였으니.

그럼 박유의 제안은 실행되었을까? 고려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시 재상들 가운데에는 그의 처를 무서워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박유의 건의를 토의도 하지 못하게 하였고,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그렇다. 이렇게 우리 여성들은 수천 년간 독립적이고 당당한 양성평등을 누려 왔다. 물론 조선 후기 350년간의 ‘유교탈레반’ 시기에는 심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지만, 이 시기가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였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 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함께 부단히 노력했고, 70년이 지난 현재는 거의 ‘원상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이제 우리의 청소년들은 더욱 훌륭한 양성평등교육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장면 1: 초등학교 6학년 교사 A는 최근 양성평등교육시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예로 들며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학생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A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학생 서너 명이 손을 들어 “왜 남자만 여자를 지켜요?” “그건 평등이 아니에요” 등과 같은 질문과 항의를 쏟아냈다. A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장면 2: 교사 B(여, 45)가 근무하는 중학교는 탈의실이 없어 체육시간을 앞두고 여학생은 교실, 남학생은 화장실에서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이를 두고 남학생들이 교무실에 찾아와 “왜 남학생만 여학생 눈치를 봐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B가 “남자가 여자를 배려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자, 남학생들은 더욱 격하게 반발했다. 결국 B는 학급 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투표에 부쳤고, 학생들은 격주로 남녀가 번갈아가며 화장실에서 환복하기로 결정했다.
 
장면 3: 중학교 체육교사 C(48)는 하키채로 공을 드리블하여 골대에 슛을 넣는 ‘플로어볼’이라는 운동의 수행평가를 하면서 여학생들에 대한 평가 기준을 낮게 잡았다. 그런데 일부 남학생들은 “이건 힘이 필요하지 않은데, 왜 남녀의 평가 기준이 다르냐”고 따졌다. C는 “체육 수행평가에서 여학생들 기준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학생들이 여기에 불만을 느끼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모 중앙일간지의 최근 기사의 일부로서, 현재 우리나라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다. 20·30대 남성들이 최근의 여성정책 기조에 반감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현 정부에 대한 20·30대 남성들의 지지율이 같은 연령대 여성들의 그것보다 유의미하게 낮다는 점에서도 일부 확인된다. 게다가 10대 남학생들의 여성운동에 대한 반감이 20·30대 남성들보다 더 높다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 상황을 일부 여성운동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부 몰지각한 남성들의 백래시(진보에 대한 반동)’라는 시각에서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에 대하여 한 여성 운동가는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로만 묘사하는 양성평등교육으로 남학생들을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제점은, 우리 어른들이 이러한 대립적 이분법 구조에 이미 익숙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본 교사 A, B, C의 인식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의 청소년들은 ‘진정한’ 양성평등을 원한다. 여학생들의 양성평등 주장을 당연시한다면, 고개를 돌려 남학생들의 그것도 당연시해야 한다. 우리가 ‘남자답게’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면, (개인적 호감에 기초한 일대일 관계 외에는) 여자를 ‘보호’하거나 ‘배려’하라고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위 교사 A, B, C처럼, 부지불식 중에 기존의 이분법적 인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 위주의 사회제도와 관행이 돌벽처럼 굳건했기에, 돌벽의 안팎을 대립적이고 이분적으로 보고 일단 돌벽을 깨기 위해 ‘망치형’ 양성평등정책을 취했고, 덕분에 많은 부분에서 신속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였음에도 계속 망치를 휘두른 탓에, 망치를 맞을 짓을 한 적이 없는 99.9%의 선량한 남성들, 특히 스스로 양성평등적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MZ 세대’ 남성들의 불만을 키웠다.
 
남녀 관계를 대립적·이분적 구조로 보는 인식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이제는 망치를 내려놓고 사안마다, 상황마다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는 ‘핀셋형’ 양성평등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야만 양성평등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제도화하고 안착시키는 데에, 50·60대 남성들에 비할 수 없이 양성평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20·30대 남성들의 더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