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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 이야기
비틀 이야기
  • 의사신문
  • 승인 2008.02.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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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과 자동차 문화의 교과서

얼마 전 서울에 온 니산의 카를로스 곤(Ghosn) 회장은 고려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다고 한다. CEO의 역할과 삼성의 자동차 산업 참여에 대한 곤 회장의 평가에 대한 뉴스들이 우리나라 신문에 소개되고 있었다. 앞의 주제들은 큰 이슈가 안되지만 강연 전의 다른 회의에서 언급한 “미국 자동차 산업이 불황에 들어갔다”라는 언급이 이 강연을 탑 뉴스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

발언의 요지중 외신이 민감 반응을 보인 내용은 - 자동차 업계는 광석과 금속의 가격이 상승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고 미국은 사실상 불경기 사이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불경기는 아닐지 몰라도 자동차 산업은 불경기다. 앞으로는 이머징 마켓에 주력해야 한다.

외신과 국내언론의 보도는 조금 시각이 달랐다. 업계는 너무 민감한 뉴스는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을 걱정과 불안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 곤의 발언 내용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반응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빌게이츠나 잡스가 IT산업이 불황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업계가 곤란해진 것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고장조차 나지 않은 차들이 멀쩡히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차의 구매력을 자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경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 지갑을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메이커들은 선진국의 대안인 이머징 마켓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차의 트랜드가 변하게 될 것인데 운이 좋으면 소비자들은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차들을 보게 될지 모른다.

실제로 과거에도 그랬다. 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차들의 크기와 무게는 크게 줄어들었다. 연비가 나쁜 차들은 점차 없어지고 일본과 유럽의 차들이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안정성이나 편의성도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지금은 당연한 일들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혁신이자 근본적 변화였다. 업계는 변해야 했지만 소비자들도 변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필자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아이콘적인 차종이 떠오른다. 그중의 하나가 폭스바겐의 클래식 비틀이다. 비틀과 비틀의 문화는 너무 다른 차들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빛을 잃었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수 십년 같이했다. 경제성과 자동차 문화에 대해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가장 기록적인 사실은 생산이 1938년에 시작되어 중지되는 2003년까지 같은 디자인으로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비틀은 전쟁과 몇 번의 불경기 그리고 활황을 견뎌냈다. 수요는 계속 존재했고 요즘도 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차들이 굴러다닌다.

이 차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러니 한번 비틀과 비교해서 요즘의 차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새롭고 뛰어난 성능을 소개하는 것은 자동차 잡지들의 몫이다. 다양한 차를 많이 파는 것은 기업들의 몫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과 글을 쓰는 것은 필자 같은 몽상가들의 영역이다.

비틀의 시작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위한 차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독일 국민들이 당시 동경의 대상이던 자동차를 누구나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게 실용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1931년부터 포르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차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몇 개의 프로토타입을 거쳐 최종적으로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정책이기도 했던 국민차(volks - wagen, people's car라는 뜻이다)로 채택된다.

소박한 자동차로 두 명의 어른과 세 명의 어린아이를 태우고 100Km를 낼 수 있어야 했으며 당시 990마르크정도의 가격으로 당시 주당 30마르크 정도를 받는 노동자가 저축하여 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히틀러의 조건들은 명확한 설계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지 못했으나 1931년의 오리지널 설계는 이미 최종적인 생산버전의 설계와 비슷했다. 그 후 몇 년의 준비 끝에 상업적 대량 생산의 설비를 준비하자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설비는 군수차량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변경되고 민생용 차량은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생산할 수 있었다.

높은 차체, 풍뎅이를 연상시키는 차체, 고도의 안전성, 낮은 마력수, 전복되어도 안전한 차체, 공냉식 엔진과 황당할 만큼 쉬운 정비, 덩치에 비해 가벼운 무게, 사막이나 극지에서도 달리고 엔진오일을 30년간 갈지 않았다는 실제 일화, 그리고 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광고시리즈, 무엇보다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디자인 이미지, 포르세 스포츠쿠페의 실제 조상….

앞으로 몇 번의 연재는 VW의 클래식 비틀에 대한 글들을 적으며 요즘의 최신 차종과 비교하면서 생각해 볼 것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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