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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장례'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장례'
  • 의사신문
  • 승인 2008.01.1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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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철<영남대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 심민철 원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는 장례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인이 세상을 뜨고 침울하게 가라앉은 집 안은 밤이 되자 문상객들이 밀려든다. 여기저기서 노름판이 벌어지고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분위기는 계속 질펀한 취흥 속에 어지럽기만 하고, 사람들은 흐느적거린다. 어찌 보면 흥겨워 보이기까지 하는 장례식의 장면들은 산자들의 축제를 연상시킨다.

원작자 이청준은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만나 한스런 세월의 응어리를 씻어낼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나누는 화합의 향연이란 의미를 던져준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을 `축제'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고대에 노래 부르고 춤추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주검을 운구하였음이 확인된다. 장례식에는 상당히 풍자적이고 희화적인 놀이를 즐겼을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일상적인 도덕률을 뒤집어엎는 극적인 성격까지 지니고 있었다. 옛날 우린 민족은 죽음을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요, 여행일 뿐이라고 생각했? 윤회적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죽음은 다시 출발한다는 의미이다. 죽음은 온갖 번뇌의 시간에서 완전한 무의 세계로 나아감이다.

사람이 죽으면 한 가정의 신이 된다. 장례는 인간이 육신을 벗고 신이 되는 순간을 기념하는 의식인 것이다. 한바탕 놀고 웃음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떨침으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여 편안한 마음으로 죽은 자를 고이 보내주는 것이 한국의 장례식이며 예의였다.

서양의 어둡고 정중한 장례식에 비해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식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꽃상여며 술이며 떡이며 잔칫상과 다름없는 제사상 그리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등 서양의 장례 분위기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함과 어울림이 깃들어 있다. 가장 슬픈 의식을 치러내는 현실의 이면 안에 이미 축제의 본질은 스며있었던 것이다.

장례는 고인과 상주간에 생활을 공유하던 단계로부터 양자를 분리시키며, 슬픔을 표현하고 주위의 확인을 받는 의식을 거쳐 다시 일상으로의 회복을 통한 삶의 활력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망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현실적인 의례임과 동시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정신적 힘을 얻고, 사회적으로는 친족 및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최근 유행어로 9988234 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이틀만 앓다가 사흘째 되는 날 죽은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이란 뜻인데 살기도 잘 살아야 하지만 죽기도 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유행어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웰빙에 이어 웰엔딩 즉 품위 있는 죽음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웰엔딩은 죽음에 관한 문제로 죽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려는 행위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례행사는 죽음을 의미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장례시설은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장례서비스는 부정적 편견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건전한 장례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장례문화는 죽음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러한 면에서 죽음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고 일상적인 것이며 장례는 산 자의 먼 자화상이다. 장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하는 의식이자 한 인간의 죽음이 육체적 소멸로 끝나지 아니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죽음으로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장례가 남의 일이 아닌 내 가족, 자기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경건하게 죽음을 애도하고 고인의 존엄성을 높이 기리는 건전한 장례문화의 형성이 필요하다.

심민철<영남대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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