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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수필-새 해
신년수필-새 해
  • 의사신문
  • 승인 2008.01.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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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아이들을 깨워서 큰댁으로 향했다.

가풍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시댁은 예로부터 양력 1월 1일에 차례를 지내고 있다.

먼저 큰댁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는 세배를 드린다.

연령과 서열이 철저하다.

제일 어른이신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이 좌정하시면 내가 먼저 세배를 드린다. 서로 덕담을 하면서 맞절을 한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다.

다음에는 큰댁 5 자녀 중 서울에 있는 장남과 차남내외가 드리고, 다음에는 우리 큰아이 내외가 드리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서 3대인 두 손자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장가가라는 말을 모두 한다. 다음은 작년에 먼저 결혼을 해서 신랑과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와서 출가한지 첫 번째 세배를 드린다. 끝으로 나의 손자 남매가 드리면 첫 번째 행사가 끝난다.

다음이 내 차례다. 먼저와 같은 순서로 반복한다.

다음은 큰조카가 받고, 다음은 둘째 조카가 받고 , 세 번째는 내 아들 내외가 받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배 돈이 꾀 나갔는데 이제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 아직 어린 내 손자 손녀만 세배 돈을 받고 즐거워한다.

다음은 아침식사시간이다. 식구가 많으니 한상에서는 안 되고 큰 식탁에서는 일세대와 이세대가 안고 거실에 큰 교자상을 펴고 3세대가 옹기종기 앉아서 즐겁게 떡국으로 식사를 한다.

같은 서울 안에 살면서도 일 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서로의 자세한 변화나 사소한 일도 알지 못한다.

오늘의 톱 뉴스는 막내 손녀의 임신 사실이다.

사시 동기생으로 신랑은 검사고 새댁은 변호사다. 아직은 초년병이고 나이가 어려서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처럼 귀엽다. 그러자 미국에 있는 막내딸한데서 세배전화가 오고 곧이어 독일에 있는 큰 손녀딸한데서도 세배전화가 온다. 글로벌 세상이 실감난다.

과일과 차를 마시면서 쌓였던 대화가 줄을 잇는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만 집집마다 문젯거리는 있다. 옛날에는 감추던 일도 이제는 내놓고 까발린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이야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의 혼사 이야기, 오늘은 참석하지 못한 큰따님의 손녀딸 (그러니까 4대가 된다)의 백일잔치 이야기. 실업률이 높은 요즘 아이들이 다 직장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등 화제는 끝이 없다.

대화 분위기가 너무 좋다. 이것이 우리나라 보통 가정의 설날 분위기라고 생각하니 버려서는 안 될 아름다운 전통으로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

다음은 큰댁의 장손과 장남등 몇 사람과 함께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남편의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못다 한 대화를 나누면서 점심을 먹는다.

미국에 있는 우리 둘째 아들 내외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자도 잘 자란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몇 사람의 세배 손님을 맞고 나면 하루가 후딱 지난다.

우리는 남편이 형제뿐이고 출가한 딸들은 자기 시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느라고 몇 명이 빠져서 이 정도이지, 형제들이 많은 대가족들은 얼마나 큰 잔치이며 소란스러울까. 한바탕 전쟁을 치루는 듯 시끄러울 것이다. 세뱃돈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큰 주머니를 차고 돈을 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정으로 자녀가 많지 않으니 점차 사라질 것이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음력 설을 명절로 차례를 지내고 있는 풍조다.

금년에는 설 연휴가 5일이나 되어 귀성객들과 여행객이 많아서 큰 혼잡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바쁜 시간을 이용해서 여가를 즐기는 것은 나무랄 수 없겠으나 차례를 호텔이나 콘도에서 제사상을 주문해서 드린다면, 고인에 대한 정성은 물론 많은 가족들이 모여서 세배를 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얼마 전 서해안에 기름유출사고가 난후 20여 일만에 자원봉사자 50만명이 현장을 찾아서 봉사하고 있다.

온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IMF 금융위기때 아이들 돌 반지까지 나라에 바친 아름다운 정과 꿈을 가진 국민이다.

서해안의 자갈 한 개씩을 손으로 닦고, 백사장의 기름덩어리를 하나씩 주워서 백사장을 살려 놓을 것이다. 단시일 내에 어장이 살아나고 양식업이 재생되고 관광객이 찾아주어서 절망에 빠져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활력을 주고 자활하려는 의지를 심어주어야겠다.

저력과 꿈이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다.

대선도 무사히 끝났으니 국민과 정부가 서로 신뢰하고 힘을 합쳐서 그동안 힘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부가 태어나기를 새해 첫날을 보내면서 두손 모아 빌어본다.

 




박양실<중구 박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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