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4:14 (수)
프로슈머 이야기
프로슈머 이야기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4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최대의 화두는 곧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날고있는 비행기 속에서는 빠른 속도임을 의식 못하고 있다가, 착륙순간에야 비로소 엄청나게 빨리 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하루하루 변화의 속도를 미처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기존 산업사회에서 소위 지식정보화의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는 앞으로의 경제는 더 이상 생산자와 소비자의 일방적 이중구조가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들이 스스로 생산(PROduce)하면서 동시에 소비(conSUME)하는 형태가 되며, 이를 생산과 소비의 합성어인 프로슈밍(prosuming) 또는 소비자생산이라고 명명하였고, 이들 프로슈머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기술했다.

이미 그 예는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TV드라마의 작가(생산자)는 연속극 시나리오의 내용과 결말을, 보는 시청자(소비자) 네티즌들 요구에 따라 바꾸기까지 하는 세상이다. 미국 FDA에 의하면 의료기구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환자자신들이 직접 스스로 관리하는, 자가 홈 치료 부분이라고 한다. 의사(의료생산자)도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이미 똑똑한 환자(소비자)는 인터넷의 각종 건강과 질병관련 자료를 모아 가지고 와서 더 이상 일방적인 진료가 아니라 함께 참여하자고 대어드는, 이제 의사노릇하기도 만만치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비단 이 예는 교육자와 학부모, 정치인과 유권자 등 사회 각 분야도 이제는 그들만의 정보의 독점소유에서 인터넷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한 무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 각각의 설자리들을 점점 위협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의사단체도 더 이상 일방적인 정책 전달상태가 아닌 각각의 의사회원(소비자)들의 간섭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가 도래하였음에도, 요즈음 의협의 사태가 순탄치 않음은 아직 시대의 흐름 파악이 안된 탓으로 돌려야할지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그 나라의 제대로 된 의학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대학의 아카데미즘, 즉 교수들의 본질적인 의학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의료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부나 의사단체의 행정관리 시스템의 연구도 그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즉 배터리 용량이 아무리 클지라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배터리 선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듯, 학문과 제도는 함께 달리는 앞뒤 자전거 바퀴와도 같이 동시에 발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의사단체의 임원은 임원들대로 그들 본연의 주어진 역할을 다할 때 그 단체는 더욱 발전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회원들은 의료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우선 당장 조금이라도 자기와 별 관련이 없다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습되어진 무력감일까? 아니면 아직은 위기를 느끼지 않는 도피적인 안일함일까? 그러나 이러한 외면이 해결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집 앞에 개 한 마리가 누워서 끙끙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여 주인에게 물었다. “저 개는 도대체 어디가 아프길래 앓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까?” 주인이 말했다. “뾰족한 못 위에 누워있어서 그래요.”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차리리 일어나서 다른 편안한 곳으로 옮기면 간단히 해결될 텐데 왜 저러고 있지요?” 다시 주인이 말했다. “일어나 옮겨 앉을 만큼은, 아프지 않은가 보죠….” 마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살기가 힘들어졌다, 환자가 줄었다, 그리고 정부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만스러운 부정적인 소리가 그칠 새가 없다.

하지만 의사회에서 잘못된 정책을 막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행동력을 보이고자하면 아직은 충분히 아프지 않은지, 아직은 먹고 살만 한지, 위기는 턱 앞에까지 와있는데도 깨어있는 일부 회원들만의 모임이 되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는 본질이 망각된 듯 집단의 로비에 이끌리어,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이 시시각각으로 법이라는 테두리로 만들어져 우리를 조여 오고 있다. 잘못 제정된 법질서를 다시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제정되기 전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하는데 실로 무질서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전도된 질서라고 하지 않던가? “내가 나를 구조 조정하면 거듭날 수 있으나 남이 나를 구조 조정하면 거덜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들 스스로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인가 아니면 남의 장단에 따라하다 쇠퇴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선택일 따름이다.

회장과 회원, 이제 더 이상 주체자와 객체의 신분이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한 집단의 주체자이기도 하고 객체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이미 회장이자 회원이기도 한 프로슈머임을 자각해 보자.

 

이관우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