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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W124<2>
벤츠W124<2>
  • 의사신문
  • 승인 2007.11.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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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기준의 모델된 오버엔지니어링

W124의 이야기를 길게 쓰는 것은 단가와 엔지니어링의 욕심사이의 균형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10년을 생산하고 단종된 W124는 쌍용의 체어맨으로 변했다. 우리나라보다 외국의 자동차 잡지들이 더 관심이 많았다. W124는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체어맨의 차체는 W124의 중요 요소를 모두 갖고 있었다. 금속공학의 상세한 면은 알 수 없지만 아직 체어맨들이 별문제가 없는 것을 보면 우수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당시 W124가 처음 나왔을 때 20만대 가량의 주문이 2년 정도 밀려 있었다. 이만한 기준을 들고 나온 차는 없었고 대량 생산으로도 최고 품질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다른 메이커들이 못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W124가 최고수준의 안전에 대해 몸소 입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높은 안전기준을 다른 차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기준은 지금도 단가와의 전쟁에서 지키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높은 기준은 사고가 났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지만 단가를 높이며 회사로서는 도박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모든 일들을 1980년대 중반의 기술로 구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당시의 벤츠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프리미엄 차종 생산의 미래를 만들어야 했다)

단가를 낮추어 일반적인 차들이 안전해진 것은 일본차들의 노력도 컸다. 전자기술의 적용은 일본의 장기였다. 그리고 일본차들도 성공적이었다. 세계를 제패했으니까. 그러나 바디에 초점을 맞추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차체는 아직도 철로 만들어지고 10년이나 몇 년에 한번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을 뿐이다. 엔진보다 더하다. 차체 측면에서 W124는 혁신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외관이지만 숨은 안전성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우선 다른 차와 비교되는 것이 차량의 측면 추돌에 대한 사이드 프로트루전 바였다. 문짝의 임팩트바가 종이장 같은 문짝에 강도를 심어준 것이라면 이 구조물은 적극적인 측면 추돌에 대한 구조물이자 차체의 강성을 올리는 좋은 방법이었다. 차가 구르거나 측면 추돌이 일어나도, 앞뒤가 완전히 부서질 정도의 충격에도 탑승자들은 비교적 안전했다.(안전도 시험의 별 다섯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차량 충돌사고의 통계를 바탕으로 차체의 디자인을 혁신시켰다. 차량 추돌 사고의 적어도 40%가 단순한 전면충돌이 아니라 한쪽 측면에 대한 오프셋 충돌이라는 사고 통계를 중심으로 포크형태의 지지구조물로 차의 충돌을 받아냈다. 충격은 차체에 골고루 분산되었다. 프레임의 일종이라고 보아도 좋다. 돈이 많이 들지만 차체를 하나의 안전셀로 보고 앞면과 뒷면에 고장력 구조물을 여러 겹으로 보강했다. 유연하지만 고장력의 합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범퍼 역시 충격을 분산시키는 구조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안전성도 증대했지만 차의 강성도 증가했기 때문에 차는 험한 드라이빙에도 잘 견뎠다. 수많은 보강을 거치고 나서도 차체는 1300kg 정도의 공차중량을 유지했다.

이렇게 만든 차도 주인들이 싫증이 나거나 유지할 수 없게 되면 폐차되어 버린다. 차는 항공기나 선박처럼 수명이 길지 않다. 멀쩡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하나의 상징물인 패션사업처럼 차들을 바꾸지 않고는 못 견디는 구조를 만든다. 비싼 옷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버려지는 것과 같다.

굳이 낡은 차를 유지할 이유는 없다. 주위에서도 버리라고 거든다. 그러면 차의 수명은 그것으로 끝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미 많은 W124들이 버려졌으나 역사적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른 많은 경쟁사들이 프리미엄 클럽에 들어왔거나 들어오려고 하면서 가격의 경쟁, 재료의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W124 같은 우직한 차들은 점차 드물어질 것이다. 그래서 신형차들은 바디의 강성이나 엔진의 출력이 좋아졌으나 오버 엔지니어링이라는(사실은 소비의 경제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다)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어졌다.

필자는 얼마 전 W124가 폐차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차체를 만들기 위한 그 많은 정성은 이제 고철로 리사이클 되어 다른 무엇으로 변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는 물건을 없애면서 돌아간다. 필자는 예전에 독일이 10년 넘은 차를 교체하면 보조금을 주는 것을 떠올렸다. 소비의 경제, 그러니까 물건을 계속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드는 과정을 발전이라고도 부른다.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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