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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기업가의 홀로서기'
'일인 기업가의 홀로서기'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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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속해 있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에 보면 홀남이라는 필명이 많다. 개원을 홀로 하고 있는 남자산부인과의사라는 뜻이다. 저출산과 의사과잉으로 인해 산부인과의사의 환자수가 격감하여 의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특히 산부인과의 특성상 여의사에 비해 더 힘든 홀로 개원한 남자산부인과의사의 고독한 실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홀남이든 홀녀이든, 산부인과의사이든 다른 과 의사이든 모든 개원의는 사실상 일인기업가라고 할 수 있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업무는 보조에 있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모든 게 의사 혼자의 결단으로 하고 있다. 큰 병원이 아닌 의원에서는 조직도 없고 울타리도 없고 출근부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일인기업가의 하나인 프리랜서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하는 일마다 생활반경이나 행태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사진가는 사진기하나 들고 아름답고 고통받는 곳을 찾아다니며 창의력을 발휘한다.

작가는 펜 하나로 어디든지 다니며 쓰고 싶은 것을 쓴다. 그에 비해서 개원의는 세평도 안 되는 진료실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 아픈 환자를 기다리는 사슴같은 존재다. 일인기업가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명퇴도 없고 정년퇴직도 없는 긍정적 혜택이 내재되어 있지만 현실의 개원의는 자연히 짐을 싸고 스스로 명퇴하는 존재로 되어가고 있다. 일인기업가는 자유롭고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적 공간적 혜택을 누리지만 개원의는 순간순간 모든 결과에 책임지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개원의는 대단히 특수한 한국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텔레비전의 허준과 대장금에 의해 국민들의 의식속에 심어지는 올바르지 못한 의료정보와 비정상적인 시각들이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 왜 환자의 생과 사를 같이 하는 의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의사들에게 무리한 진료행위를 강요하는 저수가와 저급여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있는가? 환자의 상태에 대한 객관적 분석에 입각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수행한 권고가 환자에 의해 수용되지 않고 심평원 직원들에 의해 무참히 삭감되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바로 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과연 언제쯤 국민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다시 받을 수는 있을까? 공평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의료에 대한 분노를 떨쳐 버릴 수 있는 날들이 올 수 있을까? 또한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인술을 베풀어야 하는 의사로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가와 화가처럼 일인기업가로 구속받지 않을 권리와 독립성이 의사에게는 주어지면 안되는 일인가? 공병호씨가 쓴 책 중에 `일인기업가로 홀로서기'라는 책이 있다.

공병호씨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인기업가의 의미는 사업을 하건 직장에 속해 있는 조직원이건 환경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사업체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창업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어디에 있든 일인기업가의 정신으로 삶을 개척하라는 말이다. 일인기업가는 창조적 개인으로 하드웨어적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동기부여와 내면의 가치체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현실의 우리 개원의에게는 머나먼 딴 세상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수동적이고 정해진 규격내의 진료만을 강요받는 우리의 현실에서 창조적 개인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개원의든 봉직의든 시대가 불확실성의 시대로 변했기 때문에 조직원이나 회사원으로서의 마인드로는 생존하고 발전하기가 힘들어 일인기업가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환자에게 치료하고 청구하면 삭감시키고 비급여 하면 환수 당하는 우리 의료계의 현실에 창조적 개인인 일인기업가로 설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손종우 <서울시의사회 대외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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