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란치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란치아'
  • 의사신문
  • 승인 2007.10.1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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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있어 이탈리아제 자동차는 즐겁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작가 하루키가 쓴 란치아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차들이 명백한 색과 표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이런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비교적 나이를 먹어 운전면허를 땄는데, 그때 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초보 운전자로 운전의 매너나 테크닉을 거의 로마 거리에서 익힌 셈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장님은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는 속담처럼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었는데, 정작 그때는 `뭐 이런 건가 보다' 하고 흐르는 대로 거침없이 운전했다. 아차 싶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다행이 사고는 일으키지 않았다.

일본의 운전자 중에는 `로마에서만은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다'는 분이 많은데, 나는 로마 사람들이 그렇듯 무지막지하게 운전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그들의 운전행태가 엉망진창 카오스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나름대로의 룰이 있고, 모두들 그 룰을 기본적으로 존중하고 있다. 그러니 그 룰을 따르기만 딱히 겁날 일은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말 그대로이다. 그런 로마 사람들의 룰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역시 `표정' 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지, 괜찮을까' 하고 망설여질 때는, 슬쩍 상대방 운전자의 얼굴을 본다. 그 눈을 보면 내가 앞으로 나가야 할지 나가지 말아야 할지, 대개 파악할 수 있다. 상대방의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동차의 제스처를 본다. 그러면 대충 알 수 있다. 콧부리가 부릉부릉 떨고 있으면 `노오오오!'고 `…시'면 좋다는 뜻이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한동안 운전을 하다보면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이전에 `먼 북소리'란 책에도 쓴 적이 있는데, 로마에서 란치아 델타 1600GT란 차를 샀다. 순전히 스타일만 보고 샀다. 델타는 인테그라레라는 초 스포츠 버전이 유명하여 일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스타일 자체는 오버 펜더가 없는 평범한 쪽이 단연 아름답다. 지우자로의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디자인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성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까, 솔직히 털어놓으면 좀 문제가 있다. 시속 120킬로미터를 넘으면 핸들이 부들부들 덜컹덜컹 흔들리고, 핸들에서 잠시 손을 떼면 바퀴가 끼익끼익 왼쪽으로 호를 그리며 돌아간다. 그리고 에어컨은 하얀 서리만 뿜어낼 뿐 거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파워 스티어링이 없는 데다 핸들이 유난히 무겁다. 그런 형편이니 횡렬 주차시에는 아널드 슈워제네거한테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차내에서는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플라스틱 냄새가 나고, 소음도 엄청나다. 기어는 매끄럽지 못하고, 더구나 쉬 고장이 난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차였다. 나는 그 차를 내 인생 최고의 차로 여기고 있고, 그 차를 산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차에는 표정이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는' 차였다. 그런 차가 쉽게 있는 줄 아십니까.

세상에는 좋은 차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생기발랄한 표정이 있는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뭐 속도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못 됐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를 타고 시큰둥하게 1백20킬로미터를 내기보다는, 이 차로 80킬로미터를 내는 편이 훨씬 박력이 있었다. 엑셀을 밟으면 속도계의 바늘이 핑- 튀어오른다. 엔진이 `우이이이잉' 하고 쾌락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바람을 가르는 화려한 소리. 마치 레이서라도 된 기분이 든다. 오오오오…. 그러나 속도계를 보면 고작 80킬로미터다. 요컨데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런 굼뜨긴.

그러나 이 정도가 되면 정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너무 정이 들어 귀국할 때 일본까지 끌고 왔지만,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무지무지하게 더운 날 오후, 가이엔 거리의 시로가네 근처에서 방향 전환을 하려는데 엔진이 뚝 꺼지면서 먹통이 되었다(낡은 이탈리아제 차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이런 기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한테 팔아버렸다. 그때 두 번 다시 이탈리아제 차를 사나 봐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샀다니까요, 글쎄. 얼마 전 마누라한테 “당신, 어디가 좀 모자라는 거 아냐” 라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이탈리아제 차를 사고 말았다. `우이이이이이잉' 은 역시 즐겁다” 아마 이 이상으로 감성적인 차들과 사람들의 감성적 반응을 요약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루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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