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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행복 <2>
'버려야' 행복 <2>
  • 의사신문
  • 승인 2006.10.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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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병원에는 전립선비대증으로 약을 타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통 70세를 넘기시고 80을 넘기신 분들도 여러분 계시다. 필자는 병원이 바쁘지 않아서 이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병원이 바쁘지 않은 시간에 맞추어 오시기도 한다.

일제 때 얘기, 6·25 전쟁얘기, 1905년에 태어나신 분은 3·1운동에 대해서도 얘기하신다. 한 얘기 또 하시고, 들은 얘기 또 하신다. 백여명의 할아버지의 가족사를 모두 알고 있다. 아들이 환갑을 넘었는데도 철이 안 들어 걱정하는 할아버지, 북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짓는 할아버지, 훌륭한 대통령을 뽑고 죽고 싶다는 할아버지, 남파간첩으로 비전향장기수로 26년간 옥고를 치른 80세의 노인도 계시다. 나는 이분들과 점심을 같이 먹기도 하고 저녁을 같이 먹고 목욕을 같이 하기도 하고 산에 함께 올라간다. 홀로 되신 분도 계시고 재혼한 분도 계시고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사시는 분도 계시다.

이분들과 함께 하면서 느끼는 점은 사람의 성격은 나이가 들었다고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유물들(영향력)을 갖고 지금까지 살고 계시다.

완벽주의자이신 어떤 할아버지는 자기의 자녀들을 모두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렸지만 지금도 자신의 책임이란 것을 모르고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 부자여서 집세로 나오는 돈만도 수천만 원에 이른다. 그렇지만 지금도 보험이 되는 상비약들을 병원에서 미리 미리 타 준비하신다. 이 할아버지는 80 인생 중에 한번도 기쁘고 즐거운 적은 없었다고 했다.

같은 나이의 다른 할아버지는 늘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신다. 나병으로 소록도에서 오래 계셨지만 항상 평안하시다. 국가에서 극빈자에게 주는 몇십만 원으로 살고 있지만 늘 넉넉하다. 지금도 이웃을 위해 일하신다(지금도 동네 공동화장실을 청소하신다). 내 여름 휴가비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주고 가기도 한다. 이 봉투는 돈이 든 채로 내 앨범에 보관되어 있다. 내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념으로 남길 생각이다.

넉넉한 할아버지 마음과 함께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노인들을 보면서 인생의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집착에 잊지 않고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향한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숨처럼 신봉한 이념을 버리고 목숨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가진 재산도 없이 하루하루 사니 이곳이 천국입네다.” 우리 모두 우리마음에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돈이나 자녀나 명예나 목숨을 집착하는데서 전향할 필요가 있는 장기수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주성 <인천 이주성비뇨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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