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슈우 공의 병을 퀴닌으로 치료하다 <28>
비슈우 공의 병을 퀴닌으로 치료하다 <28>
  • 의사신문
  • 승인 2007.10.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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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자에게 비슈우 공의 병은 어떠한 병증인가 하고 물었다. 사자가 말하길, 폐결핵입니다라고 했다. 3월에 병석에 누운 뒤 10월에 이르도록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얼마나 반복했는지 알 수 없고 한 번의 모두를 우울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병원에 있는 여러 환자들이 선생의 부재를 근심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입니다. 신이 바라기는 직접 환자를 대면할 선생의 대진자(代診者)가 있습니까 하였다. 말하길, 있다. 하시모토 코오죠오(橋本 綱常)이란 사람이 있는데 나이는 아직 약관이자만 꽤 의사에 통달하였고, 다행이 가까운 곳에 있어 이 일을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병실에 들어와 간절히 군공의 뜻을 진술하여 부탁하였다. 에도인(江戶人)은 그 삼가(三家) 가운데 특히 비슈우 공을 위함이라고 하며 신속히 승낙하였다. 나는 곧 대진자가 믿을 만하다고 칭송하고 모름지기 그 마음을 안심시키라고 설유하였다. 그리고 비슈우에 가는 것에 대한 사례물에 대해 물었다.

내가 말하길, 지금의 마츠모토 쥰은 녹이 없고, 병원 건축비 또한 부채로 되어 있다. 이전에는 키슈우 공(紀州公)으로부터 1000엔의 기증이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바라건대 왕복과 체재 이외에 지금 1000엔을 주셔서 부재중에 가족이 쓸 것을 제공하고 만일 비슈우 공의 병이 회복된다면 다시 1000엔을 주셔야 한다고 하였다.

사자가 말하길, 이 같은 금액이면 굴사(掘者: 겸칭어)가 지금 여기에서 약속하고 내일 이른 아침에 가여(駕輿)와 함게 그 돈을 드릴 것이니 신속히 여장을 준비하십시오 라고 하며 흔연히 인사하고 갔다.

다행히 공의 병은 기관지 카타르로 한의배(漢醫輩: 한의를 좀 낮추어 부르는 단어)는 오로지 보온하는 데만 힘써서 찬 공기를 조금만 흡입하여도 기침을 하고 발열이 있었다. 나는 다행히 최상의 퀴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먼저 공을 알현해서 한번쯤 발열이 있더라도 우려하지 마시고 곧바로 그 열을 누르고 나중에 서서히 완전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하였다.

공은 전부를 경에게 일임한다고 하였다. 곧 실내를 청소하고 히오케(火桶:나무로 만든 원형의 불 통)을 치우고 완롱물(玩弄物)을 없애고 이불과 잠옷을 바꾸고 방문을 열었더니 그날 저녁 한열을 일으켰다.

다음날 아침 퀴닌을 알약으로 만들어 올렸더니 두 포(二包)로 완전히 해열되었다. 다시 열이 나지 않아서 다음날 주의하여 전신을 닦았다. 꽤 쾌유되어서 원기를 회복하였고 식욕이 왕성해졌다. 격일로 진료한지 15일이 되자 쾌복하였다. 약속한 바 대로 1000엔을 받고 기타 도기와 견백(絹帛) 등을 하사 받고 떠났다. 도중에 가나가와(神奈川)에 있는 부모를 방문하여 약간의 돈을 드리고 일박한 뒤 다음날 집으로 돌아왔다. 왕복 모두해서 25일이 걸렸다.

우유

  병원일은 적어도 완전해졌지만 몸에 영양을 공급할 우마유(牛馬乳)가 없었다. 어떤 부인이 유즙이 부족한 사람에게 젖을 대용으로 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매우 부족하였다.당시 유라 아무개(由良 某)라는 사람이 우마(牛馬)의 일을 잘 하였기에 그 사람에게 부탁하여 새끼를 배고 있는 소를 구하여 모자(母子) 2 두를 얻어서 마굿간 일꾼에게 가르쳐 유즙(乳汁)을 짜게 하여 송아지에게 주고 나머지 잔여분이 처음에는 겨우 하루에 5, 6홉(合)의 유즙을 얻었다. 이것을 환자에게 공급했는데 여유가 있었다. 점점 젖 짜는데 숙달되어 병원 밖의 환자들에게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최대로 많이 짠 양은 하루에 3되(升)를 넘었다. 따라서 친척 중 생계가 곤란한 자에게 별도로 우유가게를 열게 하여 미국의 우유를 구입하여서 사방의 수요에 공급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다소간의 대책을 세웠더니 드디어 수용자가 많아졌다(사카가와토오세이(阪川當晴: 옛 하타모토의 것으로 토오쿄오의 아카사카에서 우유를 짜서 판매함)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고 판매도 매우 성하다).

후에 육군에서 봉사할 때 달리 우유를 얻을 곳이 없어서 이 사람에게 명하게 되면서 육군용 우유를 전문적으로 팔아서 집이 꽤 부자가 되었다.   야마가타가 오다



어느 날 손님이 왔다. 명함으로 소개하면서 병원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길 청하였다. 그 이름을 보니 단지 야마가타 쿄오카이(山縣狂介: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가 본명으로 원수육군대장, 내각총리대신을 역임)라는 서명이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물으니 육군 타이후(大輔: 군계급)라고 하였다.곧 응접실로 안내하고 방문한 뜻을 물었다. 우선 원내를 돌아보기를 원해 앞서 인도하여, 숙실(宿室), 약국, 주방, 욕실,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돌아보았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차와 담배를 대접하였다.

야마가타 후(山縣 候: 총리대신 육군대장 정이위(正二位) 키쿠카 다이쥬쇼(菊花大綬章))는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하길, 나는 구주(歐州: 유럽)를 순회하고 최근에 귀국하였는데 당신이 병원을 건축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해 마지않다가 돌연 방문하여 청한(淸閑)을 방해하게 되었는데 병실 내외의 구성과 배치가 완전하고 청결하지 않은 곳이 없어 크게 감동하였다. 그렇지만 미개국은 겨우 병부성(兵部省)만 있을 뿐 가장 필요한 위생부(衛生部)가 없고, 따라서 이를 맡을 사람이 달리 없다. 이 일을 주재할 사람이 필요해서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맡기고자 한다.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조정(朝廷)의 적신(敵臣)이라는 이름이 있고 천은(天恩)으로 죽음에서 사면된 이래 지나간 날이 아직도 짧고 형(刑)까지 남은 몸으로 어찌 현직(顯職: 고귀한 관직)을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야마가타 후가 웃으며 말하길, 오늘날에는 각자가 나라를 위하여 전력하는데 어찌 겸손만 하고 있겠는가, 오로지 국가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어찌 조가(朝家)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나는 대답하여 말하길, 전국에서 황제를 적대시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존번(尊藩: 당신의 번)도 옛날, 세키가 하라의 전투(기후현의 지명. 1600년, 이곳에서 벌어졌던 싸움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편인 이시타 미츠나리에게 승리하여 일본의 패권을 잡음) 당시에 그 영지를 축소시켜서 군후(君侯)를 욕되게 한 것이 역사에 명백합니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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