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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증책임 전환의 법리적 문제와 위험성
입증책임 전환의 법리적 문제와 위험성
  • 의사신문
  • 승인 2007.09.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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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우 <강동구의사회 회장>
▲ 박영우 회장

16년간 끌어오던 `의료분쟁조정법'이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로 바뀌어 국회 통과 여부를 두고 큰 논란에 빠져있다.

의료분쟁 발생시 환자의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인의 진료환경을 안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의료분쟁을 합리적으로 신속한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는 법률안의 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를 가해자로 환자를 피해자로 정형화하여 피해자인 환자의 피해구제만 감안한 법안(이기우 의원이 발의한 시민단체안)이 2007. 8. 29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가결됐다. 9월 11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하여 통과를 강행하려 하였으나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심각한 대립과 법안내용의 중대성에 비추어 재회부하여 심사소위에서 재심의하도록 하였으며 10월 12일 다시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에 문제조항인 입증책임 전환, 조정전치주의, 무과실 피해구제 및 기금 주체, 형사처벌 특례 등의 여러문제 중 먼저 입증책임 전환의 법리적인 문제점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입증책임 전환은 공평의 원칙에 크게 반하게 된다 = 소비자단체와 법안입안자들은 의료행위가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의사의 재량에 달려있어 환자의 악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인지 여부를 환자측의 입증이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 자체에 내포된 위험이 발현하여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사의 과실도 아니고 의료사고가 전혀 예견되지 않았을 경우나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즉 주의의무를 다하였는데도 위험을 완전 방지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의사자신도 의료행위상의 주의의무위반과 손해의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이 극히 어렵다.

또한 환자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의료행위외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도 어렵고, 의료상의 과실과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쉽게 증명하지도 못하는 입증곤란(Beweisnot)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측에 무조건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입증책임 전환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독일에서도 귀책사유인 고의와 과실 및 인과관계 양자 모두에 대해 입증책임을 전환하자는 견해는 아직까지 없다.

그 이유는 귀책사유 및 인과관계 양자의 입증책임을 모두 전환해 버리면 너무 일방적으로 환자에게 유리하게 되고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당초 환자와 의사의 입증책임의 공평을 꾀하기 위한 입증책임 전환론이 제기된 근본이념에 반하기 때문이다. 독일판례도 귀책사유에 관한 입증책임 전환을 하지 않고 있으며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해 위험영역설에 따라 입증책임을 분배하고 있다. 판례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기계와 같이 정밀하고 정확하게 할 수 없을 것이며, 생체의 생물학적 현상은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이유로 두고 있다.

△불합리한 입증책임 전환은 `과오없는 과실'을 남발하게 된다 = 현행의 과실책임주의 하에서는 의사의 과실이 명확하지 않고 인과관계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의료에서는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경우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킨다면 소위 `과오 없는 과실(negligence without fault)을 남발하게 되고 무제한적 배상을 하게 되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러한 책임설정적 인과관계의 판단에 있어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일방 전환시켜 입증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은 민사적 일반원칙에도 어긋난다.

△입증책임의 전가는 자연적 정의의 원칙에 위배된다 = 의료에 있어서 불법행위의 책임귀속은 자연법의 기본원칙인 과실책임주의가 근본이므로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일방 전가하는 것은 입증이 어려운 의료사고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피해자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이는 `자연적 정의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현행 과실책임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 현행의 과실책임주의 하에서는 과실책임 이외의 다른 법적근거가 마련되기 어렵기 때문에 손해의 공평한 전보(塡補)를 위해 의사에게 주의의무를 가중시켜 과실책임을 묻게 되는데 이러한 점 때문에 의사의 과실이 명확치 않아도 책임을 지게 되고 여기에 인과관계까지 입증책임을 부담시킨다면 이는 사실상 위험책임(무과실책임)으로 밖에 될 수 없고 이는 과실책임주의가 현행의 유책성 원칙이라는 근본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입증책임전환은 결국 의료의 `위험책임'을 인정하는 것 = 그러므로 과실책임주의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의사의 과실을 추정하여 무리하게 의사에게 과실을 인정하게 되는 현실적인 괴리가 있게 되고 예측불가능하거나 불가항력적인 돌발적 의료사고 등 실제적으로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전가한다면 당연 의사는 `입증곤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무조건 의사에게 배상책임을 지우게 하면 이는 `위험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현행 과실책임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위험성과 모순이 있게 된다.

△의료의 특수성 즉 의사가 `위험성'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 원인불명의 의료사고에서 사실적 원인관계의 개연성만으로 의사에게 책임을 귀속시키게 되는 인과관계의 입증전환은 인정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환자의 위해는 진료행위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대개 환자의 기존질병에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의사가 `위험원'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것은 공평의 원리, 무기평등의 원칙에서 보나 법리적으로 보아도 무책임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입증책임 전환(입증책임의 완화를 넘어 입증책임을 상대방인 의사에게 완전 전환시켜 버리자는 주장)은 의료의 특수성을 무시한 위험한 발상일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포퓰리즘에 편승한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것은 법관의 합리적인 판단하에 입증책임을 경감하거나 완화는 할 수 있어도 `입증책임 전환이나 입증책임 분배를 법제화시켜 명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의사의 진료행위에 요구되는 전문직업적 주의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중과실 행위와 환자의 손해사이에 개연성이 인정되고, 소송상 환자측의 입증곤란이 증대될 때 법관의 판단하에 실체적 책임귀속의 법기능적인 역할을 위해 입증책임 전환은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박영우 <강동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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