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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돌아가 체포되어 에도로 압송 <26>
요코하마에 돌아가 체포되어 에도로 압송 <26>
  • 의사신문
  • 승인 2007.09.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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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미 서늘한 가을이었는데, 모두 여름 옷 그대로여서 고의상(古衣商)을 불러서 각자에게 맞는 옷을 구입했다. 와카마츠를 출발할 때 장마가 계속되어 의복이 젖어도 갈아입을 옷이 없었고, 게다가 이슬 맞은 몸에 계속 비를 맞으며 물을 건너 마침내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나는 온 몸에 로이후치스(류마토이드 관절염)이 생겨서 눕고 일어서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혼마(本間)에게 부탁해서 해안에 가서 온천에서 2주일여 동안 목욕을 했다. 그 동안 나구라 치몬(名倉知文)을 시켜서 나 대신 환자를 치료하게 하였다. 와카마츠 이래 절단술 같은 것은 대개 지문이 담당하였다.

내가 온천에서 정양(靜養)하는 동안 센다이에 있는 이타구라 스오오(板倉周防)· 에노모토 카마지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급하게 올 것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나는 병이 아직 낫지 않았지만 할 수 없어 견여(肩輿)를 고용하여 타고서 센다이에 이르러 객사에 투숙하였다.

다음 날 성중에 들어가 일광 린노오지미야(輪王寺宮)을 배알하고(나중에 기타시라 카와노미야(北白川宮)이라고 불렀다), 그 다음 날 시오카마(鹽釜)로부터 사무자와(寒澤)로 가서 작은 배를 타고서 카이요오마루(開陽丸)에 도착하여 에노모토와 기타 지인을 만났다. 마치 해외에서 오래된 벗을 만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가운데 수시로 희비가 교차하였다.

심야에 사무자와의 객사로 들어왔다. 이후 센다이, 마츠시마(松島), 시오가마(鹽釜) 간을 여러 차례 왕복하면서 토론하였다. 나의 설은 에노모토와 일치하지 않았다. 히지카타 도시죠오(土方歲三)이 말하길, 너의 소설(所說)이 나의 뜻과 상당히 일치한다. 만일 이것을 공언하면 탈주자는 모두 너의 설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쓸데없이 에노모토 세력에 손실을 줄 뿐이고 이로움이 없다. 원래 오늘의 거사는 3백년 이래 무사를 길러온 막부가 일궐도(一蹶倒 : 한번 실패하여 넘어지려는 것-역자해설)하려고 하는 때를 맞아, 한 사람도 완력에 호소하며 죽으려는 자가 없음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도저히 승산을 기약할 수 없다. 따라서 생각하건대, 너는 전도가 유망한 사람이다. 마땅히 단호하게 이곳을 떠나서 에도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불행하게 붙잡히더라도 서군(西軍)의 장사(壯士)는 모두 너를 알고 있다. 어찌 위해를 당하려고 하느냐. 그저 우리들 같이 무능한 자는 전쟁을 즐기며 순국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 호의에 감사하며 그 말을 따랐다. 다행히 화란인 스네루 시의 배 호루강호가 와 있었다. 곧 탑승하여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밤중에 몰래 상륙하고 스테루 시의 상관(商館)에 기거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포리(捕吏) 오오다테(大楯) 아무개 씨가 스네루 씨가 외출한 틈을 타서 왔다. 나는 곧바로 함께 나와서 세관으로 가 체포되었다.

그날 밤 가마에 태워져서 에도로 압송되었다. 형법관의 지휘에 따라서 이이다 마치(飯田町)에 있는 하타시타 마츠다이라 치구젠(松平筑前) 슈의 저택에 맡겨졌지만 다음해 3월에 다시 본향인 카슈 한테이(加州藩邸)에 맡겨졌다. 이 저택의 람(檻)은 신축되어 일광이 잘 투과되어 늘 책을 읽고 화첩에 임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어서, 권태를 느끼지 않으며 소일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수위인(守衛人)은 모두 유순하여서 나의 시종같이 백사 간도(百事 懇到)가 극진하여 꽤 안락하게 거한다는 느낌이었다. 후에 만 일년이 지나서 메이지 2년 겨울 12월에 특별히 관대한 은전으로 죽음을 면하여 토쿠가와 저택에서 근신을 명령받아서, 계속하여 청천백일(晴天白日)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요코하마에 있을 때 장지(壯志)는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 기도하는 바가 약간 있었지만 모든 일이 그림의 떡으로 돌아가 그만 두었다. 생각하건대 이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수하려 할 때 말리는 자가 많았고 또한 미국으로 도주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양실노모(養實老親)이 있었고 또 처자를 부탁할 만한 자가 없었다. 혼자서 위험을 모면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고로 뜻을 결정하여 잠익(潛匿)을 멈추고 매일 마음대로 산보하고 에도와 요코하마 사이를 왕래하여 저들이 하는 대로 맡겼더니 마침내 포리가 와서 포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옥에 갇힌 상태에서 사면되자 곧바로 오오지(王子-도쿄 북구 중부지역명) 카지와라 촌(梶原村)에 잠재(潛在)하고 있는 양부모와 처자 등을 면회하고, 다음날 일찍 출발하여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만났다. 또 스넬 씨를 방문하여 잠재 중의 은혜에 사례를 드리고, 이어서 화란 상인인 히스톨을 방문하였다.

그가 돌연 나에게 장래에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다른 방책은 없고 다만 의(醫)로서 업을 일으킬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질문하기를 집은 있는가 하기에 없다고 하였다. 황백(黃白: 금 은, 즉 돈을 의미)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대답하길, 전혀 없다고 하였다. 히스톨이 말하길, 당신과 서로 알고 지낸 것이 나가사키 이래로 이미 오래되어서 사소할지라도 약간의 헌금을 하고자 한다. 바라건대 자본의 일부분이 된다면 돈 1천 엔을 낼 것이라 하였다.

나는 크게 감사하여 말하길, 교제가 이미 오래 되었지만 당신은 외국인으로서 이러한 후의(厚意)를 베푸니 기쁘게 수납(受納)하겠는데, 다만 반제(返濟)의 기한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히스톨이 웃으며 말하길,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없고 다만 일편(一片)의 교의(交誼)가 있을 뿐이다. 반제 기일은 당신의 뜻에 따르고 돌려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재촉하지 않을 것이니, 얼른 이것을 받아달라고 하였다. 다시 인사를 한 후 작별을 고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서인(瑞人: 스위스)인 시-베루네 씨를 방문했다. 말한 바는 히스톨 씨에게 한 것과 같아서, 그 내용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시-베루네 씨가 말하길, 나 또한 히스토루 씨와 같다고 하면서 돈 1천량을 주었다. 대답은 모두 히스톨 씨와 같았다.

나는 이에 크게 감사했고, 그 돈을 품에 넣고 돌아와 부모에게 이야기했다. 양친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 중 2백 엔의 돈을 내 놓았다.

어머니가 말하길, 요사이 카나가와 마치(神奈川町)에 가서 내 매서(妹챢)인 야마노우치 츠쿠루 사에몬(山內作佐衛門)을 시켜 약상(藥商)을 하려고 집을 건축하려고 했는데, 이는 실로 뜻밖의 행운이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2백엔의 돈을 가지고는 집과 땅을 구입할 수 없으니 더 드릴 수 있다고 하였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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