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빠른 모터리제이션
너무나 빠른 모터리제이션
  • 의사신문
  • 승인 2007.09.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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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린 차

필자의 첫 차는 로얄 시리즈였다. 공보의 시절에 물려받은 차였다. 필자는 곧바로 첫 코스로 경주시내의 외곽을 처음 돈 다음 곧바로 새벽의 경주-포항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위험한 길이지만 그 당시는 매드맥스의 영화에라도 나올 것 같은 위험한 길이었다. 그 다음에는 포항에서 감포를 돌면서 해안도로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순간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커다란 자유가 생겼다.

차를 몰면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가 받은 차에는 조수석의 헤드레스트가 없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로얄은 큰 차였다. 관공서에 들어가면 경례를 붙이는 수위도 있었다. 로얄 시리즈는 나중에 프린스의 차대로 변하지만 1980년대 말의 로얄 시리즈는 큰 차에 속했다. 물론 당시에도 모래시계 그랜저라고 부르는 그랜저의 1세대가 있었으나 중형차는 드물었다. 헤드레스트가 없던 이유는 높은 분이 뒤에 탔을 때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차가 3∼4년 지나자 평범한 공보의인 필자가 탈 수 있었고 2∼3년 뒤에는 전기배선에 문제가 많아 로얄 시리즈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중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차가 정말 안 나가는 것은 확실했다.

평범한 공보의가 선물 받은 차에서 권위주의적인 요소와 미래의 자동차 매니아가 될 잠재적인 요소가 충돌했다. 당연히 첫 번째 정비는 헤드레스트를 사서 끼우는 것이었다. 옆자리에 앉는 사람의 안전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차는 안나가기는 했으나 정말 컸다. 로얄은 오펠의 세나토레 모델의 설계를 그대로 사용한지라 충돌에도 당시의 수준으로는 안전한 편이었다.

당시는 차가 많이 보급된 시절이 아니라서 사람들을 항상 태우고 다닌 기억이 난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의 3도어 프라이드는 그런 면에서 불리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젊은 나이였으며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놀러 다니고 식사하러 다니는 재미에 계기판의 Km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1∼2년 지나자 차들을 모는 공보의들의 늘어나고 여러 명을 태울 일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제대할 무렵이 되자 필자의 차는 낡은 차가 되어 아무도 타려고 하지 않았다. 새로 근무하러 오는 사람들도 아예 차를 몰고 나타났다. 2∼3년만에 첫차를 받은 감동은 까맣게 잊혀지고 이제 다른 차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무리하여 큰 차를 사기 시작했다. 프라이드에서 소나타나 엘란트라로 바꾸고 르망도 금방 없애곤 했다. 이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 남들과의 비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자 그랜저가 표준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 빠른 모터리제이션의 물결이라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웠다. 필자 역시 차를 몇 대 바꾸었지만 다른 사람들만큼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니아의 차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새로 바꾼 차에서 충분한 만족과 가치를 뽑고 있었다. 좋은 차를 타면서 투자의 기쁨과 높아진 출력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말리는 방법은 없다. 더군다나 패밀리카는 가족들의 사기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철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합리성을 떠난 문제지만 나름대로는 맞는 산수였던 것이다.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린 차에 대해 너무 무시하면 서열이 떨어져 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어렵지 않는 한 무리를 해서라도 맞추어야 직성이 풀린다.

지고는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언제나 같다. 메이커의 디자인이나 성능은 문제가 아니다. 차의 서열로 사람의 서열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성을 떠나 인류학적인 문제에 속한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비판한다고 사람들이 듣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메이커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언제나 읽고 있다.

차들의 성능이 아주 좋아지고 웬만하면 다 중형차를 몰게 되고 나니 다양화니 합리성이나 문화 같은 것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니 필자가 자동차의 문화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한 차례 보급의 열풍이 지나가고 나서의 일인 것이다. 한국형의 차가 어떤 것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매체에서 한국의 중형차와 캐딜락(크고 푹신한)은 무슨 관계가 있냐고 꼬집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예전의 필자의 로얄처럼 아무도 타지 않으려 하는 차는 운용의 합리성을 떠나 정신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다. 

〈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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