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번에 들어가 카타모리 공을 돕다
아이즈번에 들어가 카타모리 공을 돕다
  • 의사신문
  • 승인 2007.09.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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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카타 토시죠오(土方歲三) 또한 패잔병 4·50명을 이끌고 여기에 참가하였다. 후에 곳곳에서 전전하며 싸우다 마침내 아이즈로 들어갔다. 해군 또한 에노모토 카마지로오(?本釜次郞 : 1836∼1908년 정치가. 통칭 에노모토 타케아키(?本武揚). 에도 출신으로 네덜란드에 유학함. 무진전쟁 때 정부군에 항복 후 사면되어 후에 러시아와 사할린 등 북방도서교환조약을 체결함. 문부·외무 등의 각 대신을 역임)가 함대를 이끌고 오후(奧羽)로 달려갔다.

어느날 에노모토(?本)가 나의 숙소로 와서 후사를 부탁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사람의 뜻이 굳세고 기예가 왕성하여 막인 중에서 약간 바라볼만 하다. 그렇지만 이것을 평소에 비쳐보건데, 애석하게도 무게감이 결여된 바가 있고 또한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서 자칫하면 선입관을 갖는 잘못이 있고, 남의 말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잘못이 있는 경우에 이를 충고한다고 하더라도 이익이 없었다. 이번의 거사 또한 두려운 것은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육해 군인의 친구 가운데 탈주하는 경우가 꽤 많았음으로 이들을 차마 포기할 수 없어서 도망쳐서 생사를 함께 하려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탈주 병사가 모여드는 곳은 반드시 아이즈일 것이다. 곧장 가서 이곳에 모이기로 했다. 남몰래 자제 중에 유망한 자를 유도하였는데 와서 모인자는 와타나베 코오키(渡邊洪基), 나쿠라 치몬(名倉知文), 미우라 칸(三浦煥), 코이즈미 쥰에이(小泉順英), 야마우치 사쿠라쿠(山內作樂 : 통칭 토쿠사부로(德三郞)), 오오타 오네이(太田雄寧) 등이었다. 오오타(太田)는 별도로 은인 아무개 씨에 의해 초대되어 함께 할 수 없었다. 후나바시역(船橋驛)에 가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 외에 종복 두 사람에게 행리(行李)를 짊어지게 하고 따로 6명이 운반할 화물로 약품, 외과 기계 등을 사쿠라(佐倉)에 있는 쥰텐토(順天堂)로 보냈다. 동행하는 자에게 각각 돈 50엔씩을 나눠주고, 스스로 50엔은 가슴에 품고 나머지 500엔은 약궤(藥櫃)에 감춰 콘고(今戶)에서 작은 배를 타고 후카가와(深川)에 이르러서 창루(娼樓)에서 놀았다. 호오칸(幇間 : 연회석에 나가 자리를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남자) 한 사람을 동반했다. 유흥에 빠진 척 하며 탈주하였다.

다음 날 타카하시(高橋)로부터 배를 물가에 대고 교오토쿠(行德)에 이르러 상륙하였다. 주변에서 들으니 오타(太田)와 함께 탈주한 병사들은 그 주도하는 사람이 부상하여 종사(從士)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회기(會期)를 놓쳐서 올 수 없었다. 박막(薄幕)의 사쿠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성하(城下)에 들어가려고 할 즈음 나의 문인으로 나가사키에서 종유하였던 아이즈의 의사인 난베이세이이치(南部精一)가 왔기에 만났다.

세이이치(精一)가 말하길, 우리나라가 오늘 전쟁을 하면서도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직접 미우라(三浦) 씨를 맞이하려고 했다. 뜻하지 않게 여기서 제군과 만나게 되는군이라고 말했다. 내가 말하길, 우리들은 이곳에서 아이즈로 달려가 힘을 보태려고 하는데 어떠한가? 세이치는 크게 기뻐하며, 진실로 예상 밖의 큰 행운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선도 하여 아이즈에 가자고 하였다. 이 일행 모두 일찍이 가 본 일이 있는 지기(知己)이므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며 기뻐하는 게 끝이 없었다.

곧 함께 쥰텐토에 가서 2, 3일 밤을 머문 뒤에 떠나서, 나리타(成田)를 경유하여 겐타이 하안(原太河岸)에 이르러서 배를 물에 띄어서 토네가와(利根川)를 내려가서 호쿠소(北總)의 초시에 상륙하여 한 기루(妓樓)에 투숙하였다. 누주(樓主)는 노름꾼으로 꽤 용기가 있었고 일찍이 쟁도(爭刀) 때문에 오른 손을 잃은 노인이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초시 지역의 동정을 살피게 하고 조주가(造酒家) 야마 토호오(山十方)에 가서 히라카타(平潟) 행의 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이 지나서 배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배를 빌려 모두 승선했다. 그런데 이 배는 매우 낡아서 위험하기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순풍을 얻어서 돛을 올리자 해상 30여 리를 무사하게 지나 히라카타 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육행하여 고잔쇼 소개라고 하는 간도(間道)를 거쳐서 산 속의 농가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시라카와(白河)에 도착했다. 현지인이 말하길, 정토(征討)의 서군(西軍)이 어제 성중(城中)에 들어와서 전도가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즈번에 들어가다



그렇지만 다행히 그 호구(虎口)를 벗어나서 옆으로 아이즈도오(會津道)에 들어가 세이시도(勢至堂 : 세이지 보살의 준말)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난베이(南部)는 달려가서 아이즈의 군사가 관문을 지키는 로오쥬우(重役 : 와카토시요리 등의 관리)에게 나의 일행이 온 것을 알렸다. 무리들은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어깨를 들썩이며 일행을 마중했다.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여 점등 무렵에 아이즈 나노카마치(七日町)의 여사에 투숙하였다. 일동은 장년자(壯年者)여서 종일의 노고도 불평하지 않고 예부터 이 땅에 유명한 온천장이 있음을 듣고 있어서, 곧바로 그곳으로 가서 술을 시키고 기녀를 불러 고가방언(高歌放言)하며 크게 계속된 노고를 위로하였다.

다음 날 등성(登城)하여 마츠다이라카타모리(松平容保) 공을 알현하였다. 공은 크게 기뻐하며 그 노고를 치하하였다.(아이즈 중장(中將) 마츠다이라카타모리공은 오랫동안 쿄오토오에서 수호직(守護職 : 각 지방의 경비, 치안 유지를 담당했으며 나중에 영주화 했음)으로 근무했고 선제(先帝)는 그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감사장, 포상 등을 여려 통 하사하여 소지하였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이 잘못 되어서 조정의 적의 이름을 뒤집어 썼는데 이것은 무신이 어쩔 수 없이 나서서 한 거사로서 유타구안하는 자와 함께 논해서는 안된다).

아이즈의 번조(蕃祖)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는 토쿠가와 제 3대 쇼오군의 배다른 동생이다. 그 책봉을 받자, 책임자로서 문무학교를 설치하였다. 이것을 닛신칸(日新館)이라고 부른다. 규모가 꽤 웅대했다. 곧 이 관을 임시 병원으로 정하였다. 이보다 앞서 내가 이곳에 도착하자, 이를 출진(出陣)의 각 방면에 알렸는데 닛코(日光: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인 도쇼오구가 있는 곳) 지방을 시작으로 부상병을 많이 보내왔다. 부상자는 그 도중에 있는 의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모두 촌의(村醫)로서 치료법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면포(線布)를 찢어진 총창(銃創) 가운데 관천(貫穿)하여 닦는 자가 있었다. 마치 꼰 실로 연관(烟管)을 통과한 것 같이 보였다. 혹은 질산칼륨의 독을 묻혀서 창구(創口)에 발포고(發泡膏)를 붙인 것도 있었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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