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사 무리 활개치는 무법천지 에도로 복귀 <21>
낭사 무리 활개치는 무법천지 에도로 복귀 <21>
  • 의사신문
  • 승인 2007.08.1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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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뒤 이시카와 고오운인(石川香雲院) 켄테이(玄貞)와 함께 요시노부 공(慶喜公:제15대 마지막 쇼오군)에게 봉사(奉仕)할 것을 명령받아서 서경(西京:쿄오토오)으로 이전하였다. 그 외에 검객, 의사, 양학자(洋學者) 등 모두 서경으로 옮겼고, 다른 사람들은 존해(尊骸)를 따라, 뱃길로 에도에 돌아갔다. 이후 나는 재경(在京) 동안 일 없이 한가하게 거의 1년을 보내는 사이 에도로부터 상신(上申)이 있었는데 의학교가 주재(主宰)가 없어서 백사(百事)가 정체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귀부(歸府)를 명령받았다. 공으로부터 마승고(馬乘袴 : 겉에 입는 주름 잡힌 일본 하의)를 하사 받고 하토리 아야오(服部綾男)의 말을 빌려 타고서 동해도(東海道)로 내려갔다.  

이때 에도는 평온하지 않아서 미토(水戶 : 이바라키현의 중부지방 에도시대의 토쿠가와의 3대 명문파의 하나인미토 집안의 성밑 마을)의 노신(老臣)인 타케다 고운사이(武田耕雲齋)는 병사를 일으켜서 죠오슈우(常州) 타이헤이산(大平山)에 웅거하였다. 막부는 정토사(征討使)를 파견하여 이를 토벌했고 추격하여 에치젠(越前)에 이르러 적력(賊力)을 굴복시키고 항복시켜 참형(斬刑)에 처한 일이 있었다.  

요즈음 낭사(浪士)라고 칭하는 수십 인이 시바 미타(芝三田 : 토오쿄오 미나토구)라는 사츠마 테이(에도의 코죠오루리의 일파의 집안)에 집합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매일 밤 시중에 나가서 부잣집을 노략질하는 것이 심한데, 이 때문에 점등 후에는 시중이 모두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외출하는 자가 없어 왕래가 적막하였다. 때마침 아사쿠사 산야마치(淺草 山谷町 : 토오쿄오의 타이토오 구의 북동부 지역)의 개원의로 후지 산테츠(富士 三哲)란 자가 있었다. 늘 단자에몬(彈左衛門 : 칸핫슈와 무츠, 카이, 이즈, 스루가의 12 지역의 에타(穢多 : 주로 가죽일을 하며 범죄자의 체포나 죄인의 처형등을 담당함. 현재에도 차별이 있음, 히닌을 지배하는 우두머리)이 집에 출입했다.

하루는 와서 고하여 말하길, 삿테이에 몰래 집합하는 낭인 등이 근래 단자에몬의 집에 와서 말하길, 너의 조상은 가마쿠라 우후(謙倉右府)의 유자(遺子)로서 유이가하마(由比之浜 : 카마쿠라시의 스모만에 있는 해수욕장)의 쵸오리(長吏 : 에타)였다. 그런데 어찌 에도 막부 밑에 굴종하여 금수시 당하며 이에 만족하여 공중(公衆)의 경멸과 모욕을 받고 있는가. 요즘 우리 사츠슈 코오(사츠마 번의 다이묘)는 대장(大將)으로서 외국인을 몰살하고 막부를 전복하여 위로는 천자(天子)를 받들고 밑으로는 만민(萬民)을 돌보아 일본의 신국(神國)다운 천자의 위광을 해외에 빛나게 하려 한다. 신속히 우리들을 따라서 함께 존왕의 의거(義擧)를 돕자고 하였다. 이것을 구실로 하여 협박을 하고 황금을 탐하려 했다.  

처음에는 이들의 말을 따르는 자가 없었지만 근래에는 부하 중에 조금 그 뜻에 동조하여 일을 함께 하려는 자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이것을 듣자마자 심히 불연분개하여 장군 슬하의 본거지에서 노배(奴輩)가 함부로 날뛰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무슨 일이냐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또 생각하건대 세상에 에타라는 취명(臭名)을 붙여서 이를 사민(四民 : 사농공상) 밖에 두는 것은 천리(天理)에 대단히 어긋난다.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찌 이들을 푸대접하는 것이 이치이겠는가.

이는 필경 노배(奴輩)가 방자하게 그러한 말을 하게 되는 이유이며, 막부의 실수다. 치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나는 이것을 당국자에게 설명하여 그 취명(臭名)을 제거하고 그들의 협박을 벗어나자고 하였다. 다음날 이것을 감찰에 보고하여 모의(謀議)하는 바가 있는 듯 하였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모두 냉담하고 개의치 않았다. 말하길, 이 저 적들은 머지 않아 사카이 사에몬오죠오(酒井 左衛門尉)의 손으로 결박될 것이니 너희들은 우려하지 말라고 했다.  

이보다 앞서 쇼오나이번 사카이가(庄內藩 酒井家)는 에도 시중(市中)의 경계를 명령받아서 번사대(藩士隊)를 만들어서 창검을 휴대하고 시가를 순라하였다. 이 때문에 조금은 적세(賊勢)가 감소하였지만 에도가 넓어서 여전히 사방에 출몰하여 강탈을 일삼았다. 따라서 다시 하타시타 중록(重祿)의 자인 모모(某某) 및 소제후(小諸侯) 모모(某某)에게 명령하여 함께 경비하게 하였다. 그렇지만 적들은 이를 개의치 않고 단지 쇼오나이 번(庄內藩)을 무서워할 뿐이었다.



#단자에몬을 위해 추명 제거에 힘쓰다

하루는 후지 산테츠(富士 三哲)를 나의 집에 불러 말하길, 내가 친히 단자에몬(彈)을 만나서 도모할 것이 있는데 만일 그의 집에 병자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구실로 그의 집에 가서 단자에몬과 얼굴을 맞대고 도모하려 하는데 어떤가? 산테츠(三哲)가 말하길, 다행히 마침 단자에몬의 양부 죠오(讓)가 오랫동안 설사(下痢)로 고생하고 있다. 내가 말하길, 그러면 죠오의 병세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기에 결국엔 큰 병이 될 것이니 나에게 진찰을 부탁하는 원서(願書)를 만들어 올 것이다.

이것은 꼭 비밀로 해야 한다. 다른 속론(俗論)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때 로오쥬우로 타치바나 이즈모 수(立花 出雲 守 : 유신 후 화족(華族 :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을 말함. 회관 간사)는 말석에 있었지만, 꽤 사리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특히 내가 친히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가서 미리 이것을 고하였는데, 다치바나(立花) 씨가 말하길, 이것은 매우 옳다, 족하(足下)는 충분히 진력해야 할 것이다. 만일 에타의 집에 간 것이 폭로되면 나는 반드시 이를 변명할 것이니 마음쓰지 말라고 하였다.

따라서 크게 힘을 얻어서 어느 날 저녁 무렵 작은 배를 타고서 킨코바시(今戶橋)에 도착하니, 단자에몬의 가인(家人)이 마중 나와서 만났고, 그의 집에 가서 죠오를 진찰하고 난 후에, 이 사람과 말하는데 죠오(讓)는 대단히 학식 있는 자로 창검과 마술 또한 졸렬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의 집에 조상 대대로 벼슬한 사람이 6명이 있었다. 미카와 마츠츠케(三河 松助)라는 사람은 죠오가 가장 사랑하는 자로서 조금 책을 읽었고 격검(擊劍)을 치바 슈우사쿠(千葉周作 : 에도 후기의 검객. 北辰一刀流 북신일도의 원조)에게 배워서 면허를 얻었고 또 시(詩), 하이쿠(俳句), 해(諧)를 잘 하였고 그림 또한 볼 만하였다. 별명은 이노우에 세키코오(井上 石香)이라고 했다.

상당히 사리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추명(醜名)을 없애는 것과 관련하여 종종 나의 집에 왕래하였다. 이 사람은 전적으로 죠오(讓)가 훈도(薰陶)시킨 인물이었다.   본래 단자에몬(彈)의 조상은 카마쿠라 우후(鎌倉右府 : 카마쿠라의 궁성을 지키는 관리) 첩복(妾腹)의 소생으로 당시 마사코(政子)의 질투를 피해서 유이 노 하마(由井之浜)의 장리가 되어, 28직(職)의 장(長)으로 일한 자로서 겨우 사에몬죠오(左衛門尉)를 맡았다. 따라서 단자에몬이라고 불리었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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