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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교육에서 연구의 필요성 <41>
의학교육에서 연구의 필요성 <41>
  • 의사신문
  • 승인 2007.08.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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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입증의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 필요

지난 십 수 년 전부터, 여러 의과대학들이 새로운 교육과정과 교수전략, 새로운 교육방법, 평가방법을 도입하고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개선 노력들은 `사회가 바라는 좋은 의사(인간적인 의사, 유능한 의사 등)를 양성한다, 창의적인 의·생명과학 연구자를 육성한다,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한다, 지식·수기·태도 영역에서 보다 효과적인 교육방법을 적용한다'는 등의 목표를 표방하고 있다.

#선진국 의학교육 연구 의존도 높아

그러나 아직까지 이 같은 노력에 따른 `뭔가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 연구사례는 없다. 뿐만 아니라, 의학교육에 관한 어떤 학술대회나 세미나, 워크숍을 가보아도 우리 자신의 데이터와 토착 연구에 근거하여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의학교육 관련 학술회의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여기서도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현장 경험이 교류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창의적인 시사점들이 도출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현장 경험은 거의 모두 `일반화하기 어려운, 국지적인, 혹은 일회적인'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뭔가 단정적인 근거로는 으례 외국(특히 미국)의 연구결과들이 인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서구식 의학교육이 시작된 지 백년이 훨씬 넘었고, 오늘날과 같은 범주(혹은 발전단계)의 의학교육(`기초-통합-임상교육' 형태의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40년이 되어가는 데 아직도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외래학문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것이 의학교육이라는 분야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일 뿐더러 이런 문제의식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우리나라 학문의 전반적인 대미 의존적 상태 탓으로 돌릴 것이고 어떤 이는 소위 의학교육을 한다는 사람들의 연구능력 탓으로 돌릴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이것을 애당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세계화 시대에 그것도 의학과 같이 세계 공통의 학문을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학문에 대해서 외래학문을 운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의과대학들이 수많은 재원(그것이 사립의료재단의 금쪽같은 전입금이든 정부지원금이든)과 인적자원을 투입하고 학생들의 소중한 세월(교육이수 기간)을 재료로 하여 저마다 추진해왔고 또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똑 부러지는 결과'가 없다는 것은, 아!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앞으로도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섣부른 이야기처럼 들리겠으나, 모든 변화는 사전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지금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피상적 벤치마킹으로 한계 못벗어나

교육의 개선은 그것이 교육과정에 관한 것이든, 교육방법에 관한 것이든, 교육환경과 교육제도에 관한 것이든 제대로 된 가설과 이론에 근거해야 하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가설을 입증하고 새로운 이론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즉, 교육의 개선은 `연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학교육 현장의 상황은 이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대부분의 대학이 다소 피상적인 벤치마킹에 근거하여 변화를 추진하여 왔고 또 추진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벤치마킹은 교육개선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지만,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설정된 앞선 국가나 교육기관에서 특정 교육과정이나 교육방법, 교수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맥락(context)을 면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면 벤치마킹은 실패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우리 측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교육과정이나 교육방법, 교수전략이 우리나라 의과대학 환경 속에서 어떤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미를 갖는지, 이해관계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그것을 수행할만한 인프라는 갖추어져 있는지 등등에 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연구가 전제되지 않는 벤치마킹은 진정한 알맹이는 빼놓고 겉껍데기만 베끼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며, `비슷하게 했으니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안이한 전제 하에 산출에 대한 연구조차 게을리 하게 만든다. 그간 우리나라 의학교육은 벤치마킹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앞세워 교육 개선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게을리해온 측면이 있고 이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현실 맞는 근거, 산출 평가부터

둘째, 교육도 과학이며 따라서 의학에 못지않은 근거(evidence)와 산출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까지도 많이 부족하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교육은 뭔가 특정 분야를 먼저 안 사람이면 계획하고 시행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교육에 관한 한 전 국민이 전문가'라는 말은 이래서 생긴 것 같다. 국민 거의 모두가 교육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여과 없이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교육은 너무 중차대한 사안이다.) 그러나 교육은 인간의 인지와 행동, 변화에 관한 과학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뇌 과학, 행동과학, 교수자-학습자 간의 상호관계학,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제반 요소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사회생태학 등의 학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같은 근거학문들로부터 이론이 산출되며, 교육에서의 개선 행위는 그것이 실행연구(action research)이든, 전통적 실험연구(experimental research)이든, 형성연구(formative research)이든 간에 이 같은 이론을 입증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과학적 연구행위이다.  

의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자면, 모든 의학적 행위 그 자체가 연구이듯이 모든 교육적 행위도 그 자체가 연구이다.

#의학교육연구에 대한 지원, 투자전무

셋째, 의학교육이 과학이며 `좋은 의사, 뛰어난 의학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 중요한 연구영역이라는 인식이 부족함에 따라 의학교육 연구에 대한 지원이 거의 전무하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의학교육에 대한 연구는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자격에 값하는 의사를 갖는다.'는 말이 있다. 의학교육 연구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투자가 왜 필요한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록펠러 재단 등 미국을 대표하는 각종 재단들이 의학교육 연구에 투자를 해온 것은 바로 이 같은 인식 때문이다. 즉, `자격에 값하는 의사'를 갖기 위한 것이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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