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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오군의 훙거...보도엥의 입궐을 막다 <20>
쇼오군의 훙거...보도엥의 입궐을 막다 <20>
  • 의사신문
  • 승인 2007.08.1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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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장군 훙거의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말하길, 이 일은 매우 어렵다. 나 밖에 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느냐고 물으니 말하길, 군 옆에서 입시(立侍)하는 사람 외에 훙거를 아는 사람은 없다. 오늘 양이설로 시끄러운 때를 당해서 함부로 외인(外人)을 성중에 들어오게 함으로써 크게 세상에 물의를 일으킬까 우려된다. 생각하건대 족하(足下)는 보도엥과 친밀함이 두텁다고 들었는데 가급적 교언으로 속여서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에 나는 분연히 결의하여 이것을 수락하며 말하길, 반드시 사명을 다 할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이전에 해부할 때 얻은 해골을 휴대하고 코오베에 도착해서 군함에 가서 보도엥을 만나서 말하길, 우선 당신에게 드릴 물건이 하나 있다고 말하고, 그 해골을 꺼내어 주면서 차분히 설명하여 말하길, 오늘 나는 막리(幕吏)로서 급히 왔는데 이것은 극히 비밀을 요한다.

다름이 아니라 실은 장군이 어제 돌아가셨다. 당신이 온 것이 진실로 도로(徒勞)가 되어버렸다. 요즘 우리나라는 광폭한 무리가 외국인을 미워하는 것이 매우 심하여 자칫하면 해를 가할 것이다. 따라서 생각하건대 당신이 상륙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만일 쇼오군이 일말의 명맥이 있다면 군대를 배치하여 엄중히 호위케 하겠지만, 내부의 사정은 이미 말한 것과 같다. 당신이 이를 살펴주길 바란다.

게다가 지금 일본의 여론은 양이설에 가담하는 자가 꽤 많고, 그 중에서도 쵸오슈우인 같은 사람은 그 으뜸에 해당되는 자로서 막명(幕命)을 받들지 않아 정토군(征討軍)이 이미 이 경계를 넘었다는 것은 당신도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전쟁은 아직 이기지 못했다. 쇼오군은 진중에서 훙거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발표한다면 대단히 군기(軍機)를 방해할까 두렵다. 고로 이것을 비밀로 했다. 공가(公家)의 계사(繼嗣)와 정토(征討)의 조치가 이루어진 후 공개적으로 상사(喪事)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한두 달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는 부탁하건대 당신은 남에게 이를 말하지 말라. 만일 이것을 폭로한다면 나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일본의 법은 무사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당하면 할복하여 미련없이 죽는 것을 상례(常例)로 한다. 따라서 지금 임시로 이 해골을 드리는 것이다. 만일 이 일이 탄로난다면 그 때야 말로 나의 진짜 두로(頭쫮)로 이를 대신할 뿐이다라고 했다.   보도엥은 크게 놀라 두려워하며 동시에 감동하여, 맹서하건대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오오사카성으로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여 말하길, 그에게 상륙이 위험을 야기한다고 했고 동시에 군상(君上)의 병도 크게 좋은 상태가 되었다고 말했으며, 먼 곳에서 온 노고에 감사한다고 하여 돌아가도록 했다고 말하여, 겨우 미봉으로 이 어려운 일을 마쳤다.  

해골에 관한 일화

  해골에 관한 일화가 있다. 내가 나가사키에 있을 때 Pompe씨로부터 그 나라 사람의 해골을 얻었다. 그는 이것으로 해부학의 수부(首部)를 가르쳤다. 당시 일본법은 분묘를 두텁게 하여 효도를 중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대사(大事)였다.

고로 본래부터 인체의 전체 뼈는 물론 해골조차도 소지하는 자가 없었다. Pompe씨가 해골을 기증한 것은 실로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창시였고, 무릇 나를 따라 의학을 배우는 자는 모두 이 해골로 연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유신(維新) 후에 이것을 대학에 제출하여 기념물로 삼았다. 지금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나가사키에 있을 때 한 소리(小吏)가 있었다. 아첨을 하여 인의를 얻는 것을 득책으로 삼는 자로, 제가(諸家)에 출입했다. 나는 그 사람을 매우 좋아하지 않았다. 일찍이 원단에 정복을 입고 왔기에 해골에 백포(白布)를 덮어놓고 좌정하고 이것을 면전에 내놓고, 덮은 포를 치우면서 내가 말하길, 나는 잇큐우선사(一休禪師;무로마치중기의 임제종의 승려. 고코마츠 천황의 서출 자식)를 본받아 금년부터 이 물건으로 신반(辛盤: 파, 마늘, 부추, 여뀌잎, 겨자를 섞어 만든 음식. 신년에 이것을 먹으면 오장의 기가 통하여 건강해진다고 함)을 대신하려 한다.

바라건대 일배하라고 했다. 그 사람은 크게 놀라서 허둥대다가 실색하고 가버렸다. 문하생들 모두 크게 웃었다. 그러나 다카하시(高橋)가 봉행(奉行)함에 미쳐 이 일을 가지고 내가 기독교를 믿는데 관련된 자라고 하여 백방으로 말을 꾸며서 이를 에도에 보고했다. 다행이 그 참소(讒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로오쥬우는 나의 양부(養父)를 소환하여 내가 함부로 소인을 우롱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오호 청년의 장난, 지금에 와서 이를 생각하면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쇼오군과 동금하다

  나는 쇼오군 이에모치 공(家茂 公:제14대 쇼오군)을 섬기며 은우(恩遇)를 받았고, 최선을 다하였는데 그것이 저절로 내전에 전해졌고, 특히 텐쇼오인 도노(天璋院 殿: 시마즈 스미코→시마즈 아츠코→코노에 아츠코로 이름이 바뀜. 에도 13대 쇼오군 토쿠가와 이에사다의 정실 부인으로 쇼오군의 양모군(養母君))는 나를 굳게 믿었다.

공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의사 한 사람씩 근시(近侍)하는 것을 상례(常例)로 하여 각 2시간씩 교대하였다. 그러나 그 훙거하기 3주일 전부터 다른 사람은 교대를 하여도 나에게는 이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따라서 삼가 청하여 말하길, 신(臣)은 지금까지 존체 옆에서 입시한 지 3주일이 되도록 주야로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어지럽고 눈도 빛을 잃는 것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1, 2시간의 휴식을 허락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공(公)이 손가락을 꼽아보고 말하길, 이미 3주일이나 지났구나 너는 늘 잠자기를 좋아해서 평소 아무 일도 없는 날에는 항상 좌면(座眠)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한 것이 20여일에 이르는 것은 진실로 가련하다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나는 너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 너는 내 이불 속에 들어와 같이 자라고 말했다. 은명(恩命)이 중하여 사양할 수가 없었다. 임시로 그 명을 따랐지만, 어찌 잠을 잘 수 있으리요. 잠시 수면의 모습을 하다가 몰래 자리를 빠져 나왔으므로, 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군상(君上)과 동금(同衾)하는 괴로움은 백일 동안 잠을 못 자는 것보다 힘들었다. 이로부터 2, 3일이 지나서 드디어 훙거하였다. 그 훙거할 즈음에도 곁에서 시위(侍衛)하며 왼손으로 맥을 살피고 오른손으로는 심동(心動)을 살폈다. 일이 이미 끝나자 멀리 열좌한 사람들에게 눈짓하고 물러났다. 이것이 쥰의 종천무궁(終天無窮)의 한사(恨事)인데, 공에게 진력한 최후의 일이었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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