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진정 추락하는 것인가?
의사는 진정 추락하는 것인가?
  • 의사신문
  • 승인 2007.08.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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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중인 친구를 만났는데 대뜸 “더 이상 의사 노릇 못해먹겠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요새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과연 내가 그 사람들한테 꼭 필요한 존재인지 모르겠어. 옛날에 아무 생각없이 인턴돌 때만 하더라도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우리를 무슨 절대자처럼 대해 주었는데 지금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의심스런 눈초리부터 보내는 것 같아. 나도 이 일을 오래하면서 적어도 내 분야에 자신도 있고 권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도대체 일할 맛이 나야지…”  

물론 친구의 이러한 고민은 내 자신 역시 진작부터 현실로 느껴왔던 것이다. 어느 순간 의사는 환자의 질병에 대해 옛날같이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의학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이상 의사는 환자들에게 지적인 우월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 매일같이 언론에서 때려대는 의사들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들로 인해 의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정작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수술 및 처치, 검사 의뢰나 약 처방 등 환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드는 진료행위는 환자들 눈치를 심하게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야 한다. 이 와중에 환자들이 제시하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기상천외한 자료에 파묻혀 버리면 내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외에도 정부의 진료 간섭 역시 의사들의 권위 하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가 의대를 다니기 시작한 뒤로 지난 30여년 동안 의학수준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 몇 차원 높아지면서 의사가 발휘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의 영역은 더 확대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환자들은 그때보다 의사들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통계적으로 봐도 과거보다 현재가 의료 사고도 더 많고 의료 소송 역시 더 많이 일어난다. 다른 사회 분야와 더불어 세상이 변해서 그런 것이라고 단순히 넘겨 버리기에는 내 밥줄과 사회적 위치가 걸려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심하게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약해진 의사들의 위상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상하 수직적이었던 의사-환자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은 상호 의사소통과 이해, 배려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변화는 환자들을 치유할 가능성을 더 높여주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그동안 암흑과 같은 장벽에 둘러싸여 있던 의사 집단의 미스터리가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그 치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겠지만 말이다(의료계의 참담한 현 상황도 긴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 이 과정중의 하나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능동적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환자 나름대로 좀 더 합리적으로 회복에 대한 개인적인 의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예상되고 또 의사는 의사 나름대로 고답적인, 희생이라는 명분의 부담을 약간 덜어내고 좀 더 편하게 현실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 의사들의 지위가 하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 등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나라들도, 변화하는 의사와 환자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흐름이 십여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환자권리 장전과 같은 선언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건강을 위협하는 제도와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틈이 벌어진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 더해 의사와 환자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 역시 우리 의사들의 역사적인 사명이다.  

최근 일부 대학의 의료윤리학교실과 의학교육학과 등의 잇따른 신설 등도 변화하는 시대에 대비하는 움직임이다. 이로 인해 결국 의사 자신들은 내재적인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금의 의사 권위의 하락을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기 보다 환자들과의 심층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지혜를 모으고 또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안중근 <구로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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