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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오군 '심장내막염'에 걸려 병석에 눕다 <19>
쇼오군 '심장내막염'에 걸려 병석에 눕다 <19>
  • 의사신문
  • 승인 2007.07.2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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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장졸들은 하나도 전기(戰氣)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제후의 평일 행렬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무심결에 실소하며 말하길, 이 같은 군대를 이기는 데는 양식(洋式) 보병 1개 중대로 충분하다. 그들은 반드시 등에 총탄을 맞고 죽을 것이고, 이 무리들로 선봉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전군의 패배를 불러올 것이다. 가소로운 것 같으니라고 큰소리로 이것을 비웃고 조롱하였다.

그 다음날 평상시처럼 출근하였는데 호종인 노무라 단고 (野村丹後) 수가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찾어 갔더니 노무라는 엄하게 말하길, 경이 어제 군측(君側)에 입시(立侍)하여 이이(井伊)의 행군을 조롱한 것은 상관에 대한 예우를 매우 심하게 잃은 것이나 이후 삼가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내가 대답하여 말하길, 당신들은 전투의 승패에 개의치 않는가? 어떻게 어리석음이 그리 심한가? 내가 생각하건대 수일이 지나지 않아서 반드시 전보가 있을 것이다.

만일 그 때 내 말처럼 되지 않으면 그 실언을 백배 사죄할 것이다. 당신에게 부탁하건대 며칠을 기다리자고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후에 노무라는 또 나를 불렀다. 대면하여 말하길, 어젯밤 전지(戰地)로부터 패보가 있었다. 너의 예언과 같았다. 주공(主公)은 나에게 전날의 말을 쥰에게 사과라고 말하며 큰 견책(譴責)하였다. 이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듣고 군상(君上)의 공명(公明)에 감읍하였다.  

  쇼오군 병에 걸리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주공은 각기(脚氣)에 걸려서 병석에 누웠다. 다케우치 이센인(竹內渭川院: 타케우치 겐도오의 별칭)이 진료하였다. 곧바로 진찰했는데 심장 내막염으로서 사지지두(四肢指頭)에 마비가 있었다. 이같은 증후를 이때까지 각기로 이름 붙여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보도엥 씨는 처음으로 심내막염이란 것을 설명하였지만, 사지지두(四肢指頭)에 마비가 있는 것을 모두 각기라 명명하여 그 병을 분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러하다. 나는 각기를 논하지만, 아직은 그 상세함을 알지 못해서 이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여러 증상은 나날이 악화되어 전신에 수종이 있었다. 곧 남몰래 심장내막염일 것이라고 이센인(渭川院)에게 보고하였는데, 이센인도 또한 이에 동의하였고 완청 발포고(發泡膏:피부에 자극을 주어서 물집을 생기하는 고약. 텔레빈유·개자유등)를 심장부위에 부착하고 중화염성(中和鹽性)의 이수엽(利水葉)을 바쳤다.

완청이 독약이라는 것은 한의 또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제 유사(諸 有司)는 이것을 거부하였지만, 수종은 점점 커졌고 매 식사 때마다 구토가 있었기에 마침내 발포(發泡)를 시행하였다. 이후 요법은 주효하여 이뇨가 따라서 많아지고 식사도 또한 서서히 진상되었다.  

이것보다 먼저 오가사와라(小笠原) 도서두(圖書頭: 중서성에속하며 서적·경전이나 지필 묵 등을 관장함. 또 국사 편찬을 담당하는 부서의 우두머리)는 정토군을 감독하기 위해서 츄우고쿠(일본의 중국지방)에 갔다. 원래 도서두라는 사람은 약관으로 꽤 한적(漢籍)에 능통하고 시문을 잘 했고 명산공자(明山公子)라고 하여 일찍부터 재명(才名)이 있었고 세상 사람들이 믿고 존경할 바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 변구(辯口)는 있지만, 진실로 유망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 때 쵸오슈우(長州)를 정벌하는 군대를 감독하기 위해서 명을 받아 중국 지방에서 큐우슈우(九州)를 건너서 나가사키에 이르러, 하나도 한 것이 없이 오오사카으로 돌아오게 되자 연석(硯石), 인재(印材), 법첩(法帖) 등을 사 가지고 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과시했다.  

나는 그의 소행을 논하여 말하길, 오늘날 국가 위엄의 성쇠에 관한 일대 사건인 전쟁 중에 로오쥬우란 사람이 완롱물(玩弄物)을 사오고, 그 뿐 아니라 그것을 과시한다는 것은 무슨 일이뇨. 적어도 상식 있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니 그 우둔함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또 일찍이 하루는 나를 숙직 국(局)으로 불러서 말하길, 요즈음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불환금정기산(不換金正氣散)을 조제하여 와라. 특별히 진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말하길, 나는 막부의 의관으로서 특히 양방을 주로 한다.

한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진찰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조약(調藥) 때문에 나를 소환한 것은 무슨 일인가. 당신은 사견으로 약제를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름지기 자가(自家)의 의신(醫臣)에게 명해야 할 것이다. 나는 결코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말하고 물러 나왔다. 오호 이같은 사람이 로오쥬우로서 일을 집행하다니 매우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계속되는 전쟁의 패배

어느 날 밤 로오쥬우가 공(公)의 침전에 와서는 비밀이 있어 배알을 청한다고 하였다. 쥰은 군 옆에서 입시(立侍)하고 있어서 나가서 말하길, 지금 공이 숙면에 들었으니 바라건대 내일 아침을 기다려 상신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오쥬우는 수긍하지 않고 마침내 근시(近侍)를 통하여 공의 안면(安眠)을 깨워서 비밀 담화로 시간을 보냈다. 로오쥬우가 간 후에 공의 맥을 진찰하니 맥박 수가 크게 증가하고, 그로 인해 번민을 일으켜서 전전반측하여 마침내 새벽이 되었다.

후에 들으니 정토(征討) 부장(副將) 마츠다이라 호오키(松平伯耆 수가 쵸오슈우인(長州人)에게 속아서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한 것을 가지고, 대장(大將) 키슈우 (紀州;토쿠가와의 3대 명문 파중 하나임. 이에야스의 10째 아들인 요리노부를 시조로 함. 8대 쇼오군 요시무네.

14대 쇼오군 이에모치 등이 이 가문에서 나옴) 후(候)는 그 위령(威令)이 실행되지 않음에 분노하여 자서(自書) 친전(親展)으로 선봉 총독의 해임을 청하였다. 이에 공(公)은 크게 진노하였고, 이 때문에 아연 제오증(諸惡症)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후 전쟁의 보고는 계속 패배가 거듭되었다. 그런데 그 대국(大局)을 담당하는 로오쥬우부터 제유사(諸有司)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그 패배를 숨기고 실상을 군상(君上)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겁이 많고 속좁은 소인이 그 군상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어떻게도 하지 못하고, 그저 일시 호도하는 데 애쓸 뿐이었다. 위험하구나.  

이후 공의 병은 점점 심하게 나빠져서 급사(急使)를 보내 보-도엥 씨를 나가사키로부터 불렀다. 보도엥 씨가 밤낮 가리지 않고 달려와서 코오베(神戶)에 도착한 날, 공은 마침내 훙거(薨去)하였다. 사람들은 경악할 줄을 몰랐다. 나에게 코오베(神戶)에 가서 보-도엥의 상륙을 저지하고 곧바로 나가사키로 돌아가게 할 것을 명하였고, 많은 폐백(幣帛)을 그에게 주어 먼 곳에 온 노고를 치하할 것을 부탁하였다.

김강현 역 <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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