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 화(花)일까 화(火)일까
여드름, 화(花)일까 화(火)일까
  • 의사신문
  • 승인 2006.11.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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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달 동안 나를 가장 괴롭혔던 환자는 어느 외국계 항공사에서 통역으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아가씨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 아가씨의 이름을 편의상 `이자벨'이라고 하자.

이자벨은 똑똑한 만큼 자기 프라이드가 강했다.

그녀는 치료 초기에 “어째서 여드름 따위가 내 인생에 등장했는지 용납할 수 없다”는 공격적인 심리상태를 갖고 있었다. 치료를 시작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그렇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정말로 이자벨은 화를 잘 냈다. 그녀는 이마에 돋는 좁쌀 만한 여드름 하나 하나를 모두 나의 탓으로 돌렸다. 지금까지는 누굴 탓하며 지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여드름 환자는 다루기 힘든 점이 많다. 자의식이 강하고 예민해서 의사의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서로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피부과 치료에서 이 점은 큰 마이너스다.

이자벨의 경우는 지나친 자의식에 의한 히스테리가 여드름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여드름과 함께 얼굴로 붉은 기운이 많이 올라왔다. 그것은 그녀의 신경이 늘 곤두서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그녀를 치료함에 있어서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여드름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임을 뜻했다.

이자벨의 여드름은 아픔을 동반하는 심각한 화농성으로 이마, 뺨, 턱 등에 전체적으로 분포돼 있었다.

첫날 여드름용 세안비누와 물약 사용을 권하고, 피지 조절제를 두 알씩 보름치 처방했다.

그러나 비행스케줄로 들쭉날쭉한 생활을 하는 이자벨은 처방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증상이 심해지자 나에게 화를 냈다. 오랜 상담 끝에 일주일정도 휴가를 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권유했고 이자벨도 이에 동의했다.

휴가를 계기로 치료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자벨은 피지 조절제를 열심히 먹으면서 편히 쉬었다. 그러자 더 이상의 여드름 진전은 없었다.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피부 개선과 더불어 이자벨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자로 바뀌어갔다.

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객원기자〉

정혜신 <강남구의사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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