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센구미 '콘도오 이사미'가 찾아오다 <16>
신센구미 '콘도오 이사미'가 찾아오다 <16>
  • 의사신문
  • 승인 2007.07.0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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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의사 무리와 융화한다면 반드시 다소의 좋은 대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가까이에 코바시 타스케(小橋多助)라고 불리는 유자(儒者)가 있었다. 평상시 관의(官醫)와 교제하였고 또 한방의 의학관에 나가서 크게 신용이 있다고 들었다. 따라서 비사후폐(卑辭厚弊)(말을 겸손히 하고 예물을 돈독히 함)하고, 나의 아이를 입문케 하여 이것이 감심(甘心 : 기꺼이 원함)을 얻어 계획하는 바가 있도록 하였다.

양의와 한의 융화 시도

또 나루시마 즈쇼즈(成島 圖書頭:중무성에 속하며 서적·경전이나 지필묵 등을 관장하고 국사편찬을 담당)는 우인(友人)이므로 여기에서 한방의와 친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나루시마는 꽤 만족하여 서서히 설파(說破)하려 했다. 따라서 우선 나루시마는 의학관주(醫學館主) 타키 야스요시(多紀安良)에게 설명하길, 마츠모토가 말하길 근래 난방의술이 마침내 열려 이미 양의학교(洋醫學校)가 있고, 본인은 불초(不肖)함에도 여기의 재(宰)이다, 생각하건대 지금 한의학교와 합하여 생도로 하여금 두가지 설(說)을 듣게 하고, 한·난을 절충하여 각자가 그 믿는 바를 배우게 하여 양류(兩流=양의와 한의)가 서로 자기 고집만 주장하지 말고 교류를 깊게 한다면, 이 길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양의학교는 본래 종두소(種痘所)이기에 이것을 폐지하더라도 종두를 적극적으로 하기만 하면 괜찮다. 고로 우선 나부터 무릎을 꿇어 한의학교와 합할 것이다. 당신들은 적절히 이것을 매개하여 계획하라고 하였다.  

타키 야스요시가 이것을 듣고 크게 기뻐 코바시 타스케(小橋多助)를 동반하고 이것을 한방가(漢方家)의 고로(故老: 옛 일을 아는 노인)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승낙할 것 같은데도 결단이 없어서 세월만 허송하였다. 종종 이것을 재촉하였더니 전연 뜻하지 않게 노배(老輩)의 분노를 사게 되어 이것이 마침내 실행되지 않고 도로(徒勞)로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소년자제는 이전보다 좀더 양방(洋方)에 마음을 기울이는 것 같아 반목(反目)의 정도가 약해졌다.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년) 7월에 쿄오토오에서 쵸오슈우 번(長州 藩)이 사병을 이끌고 와서 금궐(禁闕=皇居)을 압박하고 주상(主上)을 요구하여 스오우(周防; 현재의 야마쿠치현의 동남부의 절반에 해당함으로 천행(遷幸:천황이 몽진함)하여 받들려고 하였다. 공경(公卿: 정3품, 종3품 이상의 벼슬) 가운데도 또 이것을 익찬(翼贊)하는 자가 있어서 마침내 합문의 변(蛤門의 變: 겐지원년 쵸오슈우 번이 쿄오토오로 출병하여, 아이즈· 사츠마 등의 번병들과 하마구리(蛤御門)부근에서 싸워 패배한 사건)이 있었다.

  금중(禁中=궁궐 내) 때문에 극히 소요스러웠지만, 요시노부 공과 아이즈 중장(會津中將)은 크게 진력하여서 사츠슈우 병(薩州兵), 신센구미(新選組: 몬쿠3年1863)에도바쿠후가 무술에 뛰어난 무사들로 편제한 낭인 무사 무리들.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지배하에 시내 치안과 존왕양이파의 낭인 무사 등을 진압), 기타 제번의 병력으로 방전(防戰)하여 쵸병(長兵: 쵸슈우 번(長州 藩) 사병)은 마침내 패주하여 야마자키(山崎) 텐노산(天王山)에 주둔하였는데, 거사를 이루지 못함을 알고서 자살하는 자가 있었다. 또 달아나서 귀향하는 자도 있어서 반란은 곧 평정되었다. 이것은 세상이 아는 바이다.  

이 일이 있고 3개월 정도 지나서 신센구미(新選組)의 장인 콘도오 이사미(近藤勇: 시위관 도장주이며 후의 신선조 국장. 16세때 에도에서 도장을 열고 있는 곤도우 슈우스케에게서 “천연이심류를 상속하게 하고 싶다”는 강한 요청이 들어와 곤도우 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후 이사미가 상속한 시위관에서는 히지가타 토시조를 비롯, 오키타 소오시, 이노우에 겐자부로 등의 천연이심류 문하의 사람을 기르고, 식객 중에서도 나카구라 신파치, 토우도 헤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야마나미 케이스케 등의 신선조 간부를 키웠다. 도바 후시미 전쟁에서 전쟁 전에 암살 당한 전 참모 이토오 파의 잔당에 습격당하고 그 총탄 앞에 쓰러진다. 에도로 돌아와 상처를 회복한 이사미는 ‘갑주진무대’를 결성, 코후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에도를 출발하지만, 시기를 타지 못한 탓에 관군에게 참패, 사실상의 신선조는 붕괴해 버린다. 그후에도 재기를 꾀하지만 실패, 교섭을 요구해 관군에게 항복하지만 그 자리에서 포박되고 후일 그 신원이 밝혀져 만35세에 참수 당한다)는 일이 있어 에도로 와서 명함을 통하여 나에게 면회를 부탁했다.

콘도오 이사미에게 깨달음을 주다

가족들은 그를 로닌(浪人)이라고 하여 적지 않게 두려워하였다.(이 무렵 로닌들은 제가를 핍박하여 금, 은을 빼앗고 또 양설(洋說)을 강의하며 외국인과 무역하는 자의 집에 가서 폭언을 내뱉으며 위협하고 심지어 그 부탁에 응하지 않으면 참살 하기도 하였다. 고로 우리집 사람들이 무서워했던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말하길, 어찌 두려워하느냐? 세상 사람이 대개 콘도오 이사미를 폭역(暴逆)의 사람처럼 이야기하지만 내가 그 소행을 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 대개는 도리(道理)에 들어맞았다. 하타시타(旗下) 유사(有司)들은 겁이 많고 게으름이 없지 않다. 적어도 그 몸을 바쳐서 국가를 위해서 진력하려는 자는 염치도덕(廉恥道德)의 마음이 없겠는가라고 말하고, 응접실로 맞이하여 면회하여 그 내의(來意)를 물었다.

  이사미가 말하길, 나는 당신의 뇌명(雷名)을 들은 지 오래되었고 따라서 지금 방문하여 약간 소사(所思)를 피력하고 가르침을 부탁하려고 한다, 원컨대 당신은 이것을 허락해 달라. 생각하건대 국내의 어수선함은 물론 걱정해야 하지만, 현재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은 외국과 관련된 일이다. 당신은 일찍이 난인(蘭人)과 교제하여 외국 사정에 정통하고 목하 오로지 양학으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실로 그러한가.  

내가 대답하길, 그렇다. 근래 로닌이라 불리는 자가 함부로 외국인을 죽인다. 왜 그렇게 사려가 얕고 졸렬한가, 양인의 성품은 이(利)를 가지고 좌우할 만하고, 우리 일본의 풍조에 비하면 한 패거리가 되기 쉽다, 그렇지만 그들에 의해 모욕되지 않는 것이 있다. 손자(孫子)가 말하길 용병은 적을 알고 나를 아는데 있다고 하였다. 지금 서양 제국은 서로 타국의 영토를 빼앗음을 일삼고 오로지 병사를 훈련하여 무를 강구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따라서 천문, 지리, 화학과 같은 것의 수준이 정구(精究)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고, 특히 군함의 견강(堅剛)함, 대포의 원거리 발사 능력, 또 그 운용에 있어서 가볍고 편리하고, 언제나 그 제작을 개량하므로 그들에게 뒤처질 것을 두려워했다.

김강현 역<국립의료원 신경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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