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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대한 묘한 집착에 대해서
차에 대한 묘한 집착에 대해서
  • 의사신문
  • 승인 2007.06.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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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사람의 교감

차라는 것은 요물과 같다. 때로는 아무 이유없이 사람을 홀린다. 한 때 필자의 드림카로 피아트 크로마와 같은 회사의 란치아 테마가 있었다. 둘의 성격은 같은 바디 디자인의 차라는 점 그리고 바디의 설계를 공유하는 사브9000이 있었다. 디자인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의 필자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으나 당시에는 차를 구입하는 것이 무리였다. 제일 싼 차가 4000만원 대였고 당시엔 충분히 비쌌다. 셋 모두 실루엣만 보면 비슷했다.

그 중에서 피아트 크로마 터보는 특이한 감성의 차로 기억한다. 제원상 150마력이었으나 실제로는 너무 잘 달리기 때문에 제원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예전의 시승기를 보니 자동차 잡지의 기자가 `바람난 과부' 같다라는 표현을 했다. 차는 그만큼 미친 듯이 잘 달렸다고 한다. 이 말에는 감성이 포함되어 있다. 달리는 목적은 즐거움을 위해서다. 주행의 감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떤 차는 선루프를 열고 굽은 시골길을 60킬로로 달리면 마력과 같은 감성을 주기도 한다. 이럴 때는 출력이니 토크니 무게중심이니 하는 말이 필요가 없다. 차와 사람은 교감률 100%인 것이다. 차를 즐기는 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즐거움(fun)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이고 드림카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좋은 감정으로 남는 차들, 마니아들이 악착같이 살리기 위해 애쓰는 차들 중에는 의외로 평범한 차들이 많이 있다. 구형 벤츠인 w124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며 e30이라는 오래된 BMW 3시리즈의 차들이 사랑을 받기도 한다. 포르쉐는 모델별로 마니아 계층이 있어 오래된 차들도 완벽에 가까운 관리 상태를 보일 때도 있다. 이들은 좌우지간 주인을 홀리는데 성공한 차들이다. 애완견들이 특이한 감성으로 주인을 홀리듯이 차들도 이상한 방법으로 주인을 홀린다. 도로와 바람의 소리가 엔진 사운드와 함께 차의 모든 것을 통하여 교감한다. 소리도 적당히 나며 도로의 마찰음과 진동을 몸으로 느끼고 때로는 작은 타이어로 도로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기도 해야 하지만 요즘의 차들은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좋아져서 탈이다.

대형차가 아닌데도 17인치도 모자라 아예 18인치 폭의 타이어가 붙어있는 차가 많아졌다.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차는 둔탁하게 교감될 때가 많다. 하부의 서스펜션도 너무 잘 만들어진 것인지 차는 둔탁하게 느껴진다. 고속도로에서는 좋으나 가끔 도로주행의 감성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포츠 주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도로와의 교감마저 차단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반도로에서 차를 미끄러뜨릴 기회도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너무 튀는 요소는 빼야 하나 보다.

그래서 예전의 푸조 206rc의 시승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짜릿한 느낌의 차라고 적는 것을 보고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205 GTI나 그 앞의 306 GTI에 비해서는 훨씬 덜 하드코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차를 보고 강렬하다고 평했다. 마티스보다 조금 큰 차가 177마력을 내는 것이므로 이런 차를 하드코어로 만들면 무섭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군다나 수동이다. 그래서 푸조는 차는 잘 나가되 너무 무섭지 않게 착하게 만들었다.

출력이나 거칠음을 떠나 도로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 전의 306에도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관적인 느낌, 달리는 즐거움은 사람들을 홀리는 힘이기도 하다. 주인들이 갖는 기묘한 집착은 사실 그 차의 가치를 말없이 대변하기도 하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경제성이랑 상관이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필자의 친구 중에 크로마 부속을 사겠다고 여름에 이태리를 갔던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 친구는 모두 휴가를 떠난 로마에서 일본 관광객과 문닫은 가게들만 구경하고 왔지만 마니아라는 것은 묘한 측면이 있다. 비행기 값으로도 이미 차의 가격을 넘어버린 셈이다. 주인은 차를 “같이 늙어 가는 미친 말”이라고 평했다. 1990년식 크로마를 몰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더 좋은 차들도 더 있지만 필자에게 점심을 사준다며 크로마에 태우고 대구 시내를 가로질러 가던 기억이 있다. 18년된 차를 타면서 그 감성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지 않을 수 없었다. 차는 이미 주인을 홀려놓은 것이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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