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위한 레지스탕스
잠을 위한 레지스탕스
  • 의사신문
  • 승인 2007.05.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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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을 자는 방법은 완전히 전쟁과 같다.

의대를 들어간 스무 살 이후로, 나는 마음놓고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계속되는 시험, 공부, 연구, 세미나 참가와 리포트 작성, 지금은 야간 진료와 엄마 노릇, 거기에 가끔씩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인터뷰와 방송 일까지 첩첩이 쌓여있으니, 충분한 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잠옷 입고 침대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자는 잠은 하루 네 시간을 넘지 못한다. 나머지는 차 이동 중에 5분, 10분씩 깜빡 조는 것, 진료 시간 중간 중간에 도둑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억울한 것은 수면 부족 때문에 영향을 받는 나의 피부다. 잠을 좀 충분히 잘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피부일텐데…. 심지어 피부가 좋다는 칭찬을 받을 때에도 사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아쉬움에 괜히 억울해진다.

잠과 좋은 음식, 좋은 화장품, 마사지 등을 쭉 놓고 피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우선 순위대로 뽑아본다면, 그 첫째는 단연 잠이다. 먹는 것도 바르는 것도 피부에는 다 2차적인 영향밖에는 주지 못한다. 그런데 잠은 다르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나의 잠을 위한 레지스탕스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잠을 자는 시간이 되면 다른 식구들에게는 비상이 걸린다.

나의 정기휴일인 목요일은 내가 낮에 집에서 2시간의 늦잠을 자는 날이다. 그런 날은 남편은 까치발을 하고 집안을 걸어다닌다. 밖에 나갈 때에도 문소리도 나지 않게 살그머니 문을 잠그고 나간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의 커튼을 이중 삼중으로 다 닫아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화를 낸다. 내가 잠을 자는 그 시간만이라도 별이 쏟아지는 새까만 밤이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어릴 때는 잠자고 놀고 먹는 것이 모두 공짜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스스로 챙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잘 되지 않는다. 잘 먹는 것도 힘들고, 잘 자는 것도 힘들고, 그리고 잘 싸는 것(!)도 힘들다. 공부를 잘 하는 것, 일을 잘 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만이 노력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생활 전체가 노력의 대상인 것이다. 〈객원기자〉 
 


 

 
정혜신 <강남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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