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59 (금)
생명윤리법 개정, 멀고도 험한 여정
생명윤리법 개정, 멀고도 험한 여정
  • 유경민 기자
  • 승인 2007.05.18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너무 규제를 강화했다"-"규제와 제한을 더 해야 한다" 팽팽히 맞서

황우석 사태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정부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오는 8월 국회 상정을 앞두고 또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지난 16일 열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과‘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는 법 개정에 있어서 여전히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생명공학 분야를 이끌어 나가는 연구자의 입장과 이를 제한하는 윤리적인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안은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양 쪽 모두의 불만만 가중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이날 공청회 참석자들은 개정된 법률안이 오히려 못하다는 평가를 내리며 개선점을 지적했다.

더욱이 투명성을 확보해서 건전한 연구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목적인 것을 망각하고 특정 부류간, 또 특정 부처간 논쟁으로 치달아가는 현상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날 공청회 역시 이런 맥락에서 연구자들은 "너무 규제를 강화했다"고, 윤리론자들은 "규제와 제한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신익 교수(인제대 의대)는 "생명윤리법이 국민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으나 그 수단을 생명과학기술의 개발과 이용으로 한정함으로써 사실은 생명과학기술의 산업화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같다"며 "생명에 관한 경외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법이 생명윤리법이기 보다 생명과학기술법"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김종원 교수(성균관대 의대)는 "생명윤리법에서 유전자검사 관련 법 조항들의 취지는 개인의 비밀 보호와 유전자검사의 남용방지라고 할 수 있다"며 "현행법 및 정부 개정안을 보면 유전자검사의 금지와 제한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허용하는 유전자검사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 부분에 대한 개정안을 제시했다.

또한 기존 법체계를 고려할 때 유전자검사는 의료기관에서만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현재 의료기관에서 의뢰해 비의료기관에서 수행하도록 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병주 교수(서울대 의대)는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하고자 하는 대학병원들은 이미 규정에 따라 기관 내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를 설치해 운영해 오고 있는데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면서 이런 현실을 파악치 못해 별개의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함으로써 해당 기관에 업무상 혼란과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국제적으로도 1980년대 이후 연구윤리의 수준을 높이고 표준화하기 위해 미국 유럽연합 및 일본 등 선진국들이 주축이 돼 국제조화회의를 만들어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임상연구지침서(GCP)들을 작성, 배부하고 있는 것을 설명.

“우리나라도 이미 기관 내 연구윤리위원회가 구성돼 잘 운영되고 있는 기관이라면 유전 연구의 특성을 감안해 위원회의 특성을 보완하게 함으로써 기존 위원회를 개선하는 것이, 여러 개의 위원회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개정안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유전자 검사에 대한 동의’안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여러 패널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 조항은 ‘의료기관 등에서 질병의 진단 예측 또는 치료 과정에서 채취․획득된 검체 등을 유전자 검사에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검사대상자 등으로부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

실제 국내에서 수행되고 있는 임상연구의 60~70%가 후향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검사를 받았던 환자들을 수년 내지 십수년 후에 파악해야 할 경우 그동안 돌아가신 환자들도 있고 더 이상 병원 방문을 하지 않아 소재 파악이 안되는 분들도 많이 발생, 해당 환자들을 찾아 동의를 받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강요는 사실상 의학연구를 수행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라는 것.

오일환 교수(가톨릭대 의대)는 “검체 기증자의 입장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동의서에 서명하고 차후에 발생하는 추가적 연구들에 대해 그때마다 별도의 연구 목적에 따로 동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배아․줄기세포에 관련된 토론에서 한재각 위원(민주노동당)은 “마치 지금의 우리는 황우석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던 상황에서 토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말문을 연 뒤 “보건복지부는 '체세포핵이식 배아복제연구 허용 여부'는 본 법개정안의 사항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강조했는데 이는 사실상 이번 법률 개정안의 가장 중요한 사항에 대해 공청회에서의 쟁점화를 회피하려는 태도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정부의 이번 법률 개정 움직임은 지난 황우석 사태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황우석 사태로 야기된 여러 쟁점 중에 하나가 바로 '체세포핵이식 배아복제 연구'를 계속 허용하느냐 여부였다”고 지적, “시민사회단체 및 종교단체들은 이미 2000년부터 시작된 생명윤리법 제정 과정부터 지금까지 체세포핵이식 배아복제 연구 금지를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인데도 황우석 사태 이후에 내놓은 법 개정안에서 배아복제연구 허용 여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여전히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시행령에서 그 허용범위만을 정하려는 보건복지부의 접근은 '귀머거리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성토했다.

이에 앞서 조재진 교수(서울대 치과대)는 “법 개정안이 이미 배아를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뤄지고 있으므로 조심스럽지만 연구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권장되고 있는 분야인데 일일이 법조문에 넣는 것은 현실적으로 창조적 연구행위를 근거없는 윤리적 잣대로 재는 것”이라고 연구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더욱이 황우석 사태로 인해 연구 위험성이 과장돼 있다고 표현, 이번 개정안이 연구에 있어 많은 행정적 부담을 지우고 있으므로 보고체계를 단순화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개정안’과 관련 김기철 원장(함춘여성의원)은 이 법 제정 이후 생식 세포 기증자가 현저히 줄어 불임부부에게 절망을 줄까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냈다.

‘난자의 채취와 기증’안에서 20세 이상의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이렇게 되면 자연히 기증자의 나이가 많아질 것이고 불임부부의 임신 확률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잔여 난자의 연구 허용’에 대해 유경희 대표(한국여성민우회)는 연구를 위한 난자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 자신의 불임 시술 혹은 타인의 불임 시술을 위해 난자를 채취한 후 그 중 일부는 불임 시술용으로, 일부는 연구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타인의 불임 시술을 위한 기증 면목으로 난자 기증자를 모집하고 채취된 난자의 일부를 연구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를 위해 난자 기증을 허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토의에 앞서 ‘생명윤리법’제정에 있어 정작 생명에 관한 논의가 빠져 있다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현재 생명윤리상의 혼란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고양하고 생명윤리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법률적 목적에 부합하도록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낙태, 자살, 안락사 문제, 어린이 학대 등의 문제도 논의돼야 한다”는 것을 몇 몇 패널들은 간과하지 않고 지적했다.

유경민 기자 joyyoo@doctorstim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