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에서 이러닝(e-Learning) 활용의 장애요인 <30>
의학교육에서 이러닝(e-Learning) 활용의 장애요인 <30>
  • 의사신문
  • 승인 2007.05.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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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보상체계에 대한 투자마인드 부족

이러닝이란 인터넷을 포함한 새로운 전자적 테크놀로지를 학습에 활용하는 것으로써 교육 콘텐츠의 인터넷 배포, 인터넷을 통한 토론 포럼, 온라인 개인지도, 게시판, 채팅, 온라인 시험, CD나 DVD와 같은 전자매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 들어 의학교육계에서 이러닝에 대한 논의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매년 봄가을 한국의학교육학회와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 대한의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의학교육합동학술대회에서도 이러닝을 다루는 연제가 늘어나고 있고(물론 유럽의학교육학회가 주관한 2004년도 AMEE 학술대회에 접수된 900여 편의 논문 중 20%가 이러닝에 관한 것이었던데 비하면 아직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대한의사협회는 2005년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사이버연수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금년도에는 전국의 20여개 의과대학이 참여하는 의과대학 이러닝 컨소시엄도 만들어졌다.

의학은 원래 컴퓨터나 인터넷과 친근하고 대부분의 병원이 전자의무기록 등을 위해 수준 높은 네트워크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러닝에의 접근이 다른 분야에 비해 쉬운 편이다. 또한 의학지식 내용의 대부분은 전 세계 공통이며 표준화되어 있으므로 외국의 좋은 사이트를 활용하여 공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지식 콘텐츠가 워낙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되므로 전통적인 책자 보다는 내용 갱신이 쉬운 인터넷 매체가 유리하다는 점도 의학과 이러닝의 궁합을 잘 설명해준다.

학습자 입장에서 보면 워낙 공부할 양이 많아 수시로 학습 자료에 접근해야 하는 의과대학생들, 여러 병원을 순환하지만 표준적인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전공의들, 개인병원 진료실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지식을 갱신해야 하는 개원의들에게는 소위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러닝은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학자 Davies에 의하면 의학 분야 이러닝의 장점은 △학생 개개인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의 혹은 개인화된 학습을 하게 하는 적응적(adaptive) 교육과정 △학습자에게 가장 적합한 시기와 장소에서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자기 학교의 교수나 자료만이 아니라 전국, 전 세계의 전문집단과 유수 교육기관의 교수나 자료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학습자들이 학습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서 전통적 문제바탕학습에서보다도 더 긴밀하고 의미 있는 협력학습이 가능하다는 점 △다른 매체에서는 불가능한 상호작용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점 △시뮬레이션 학습, 즉 안전한 환경에서 복잡한 현실세계의 시나리오와 절차를 연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등으로 요약된다.

#효율적인 콘텐츠의 부족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메디컬 이러닝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또한 전국의과대학의 이러닝 활용실태를 보면 논의만 무성하지 실제 활용되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충실하게 설계된 효과적인 이러닝 콘텐츠가 아직까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닝에서 콘텐츠의 설계(design)는 생명과 같다. 이러닝이 처음 붐을 이루던 5∼6년 전 셔블웨어(shovel ware)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삽질'하듯이 무조건 가득 퍼 담아놓은 콘텐츠 정도의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닝, 이러닝' 하고 여기저기서 외쳐대니까 그저 유행을 따르기 위해, 최소한의 콘텐츠 및 학습과정 설계원리도 적용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하이퍼텍스트(hypertext), 하이퍼미디어(hypermedia)라는 인터넷의 기본적인 속성도 도외시한 채, 교과서를 그대로 스캔해서 올려놓는다든지, 강의실의 강의 장면을 녹화하여 떡 상태(60분 강의를 보려면 60분을 꼬박 들여다보아야 하는, 즉 학습자가 원하는 강의 장면을 서치하고 그곳으로 이동하여 필요한 부분만 볼 수 있는 기능이 갖추어지지 않은)로 올려놓는 그런 류의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다. 당시에는 이런 콘텐츠를 지나치게 신랄하게 비꼬아 `e-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콘텐츠가 자꾸 등장하면 이러닝의 효과·효율성 자체에 대한 의문만 증폭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닝에 특화된 교수설계자 육성

둘째, 메디컬 이러닝을 잘 설계할 수 있는 교수설계자를 아직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러닝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러닝이라는 단어에서 의미 방점(傍點)은 `e'보다는 `learning'에 있다. 따라서 이러닝은 대학으로 치면 교수에 해당하는 내용전문가(subject matter expert)와 교수설계자(대개는 대학에서 `교육공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한 사람들)의 협업을 통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학 분야의 교육내용은 워낙 전문적이어서 아무리 유능한 교수설계자라도 의학 콘텐츠를 이해하고 잘 설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므로 메디컬 이러닝에 특화된 유능한 교수설계자를 의학계에서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이러닝의 장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셋째, 위의 첫째, 둘째 이유와도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지만, 설계와 개발에 대한 투자 마인드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기관이 이러닝을 위한 하드웨어 구입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으면서 콘텐츠 설계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벤츠 승용차에 짚 거적 시트를 깐 것과 같은 형국이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넷째, 하드웨어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 의학 분야의 이러닝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물론 하드웨어 부족은 위에 거론한 3개의 문제, 즉 소프트웨어 빈곤에 비하면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농촌에까지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어 있는 인터넷 강국이고 대부분의 의과대학과 병원이 대용량의 서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NIH 증후군도 문제가 된다. NIH란 `Not Invented Here'의 약자로 다른 대학이나 기관에서 개발된 좋은 콘텐츠가 있는데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좀 다르다'는 이유로 별 차이가 없는 콘텐츠를 다시 만들려고 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의과대학 이러닝 컨소시엄이 등장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다 확대된 형태의 NIH 증후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겠다.

여섯째, 이러닝 콘텐츠 개발에 대한 대학 차원의 평가와 보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이러닝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소 중의 하나이다. 제대로 된 이러닝 콘텐츠 하나를 만들려면 내용전문가의 막대한 노력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닝 콘텐츠 설계와 개발에 대한 마땅한 수준의 평가와 보상체계를 갖춘 의과대학은 없다.

일곱째, 이러닝을 기존의 전통적인 오프라인 교육과 잘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도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이러닝이든 오프라인 교육이든 목적은 효과적인 학습에 있다. 따라서 이러닝과 기존의 전통적 교육 즉, 대규모 강의, 면대면 소그룹학습, 임상실습 등을 서로 잘 엮어서 학습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혼합형 교육(blended learning)을 정착시키는 것이 메디컬 이러닝의 연착륙을 위한 최적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혼합형 교육은 이러닝에 대한 두려움이나 오해에서 오는 불신을 제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신좌섭 <서울의대 의학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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