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병든 의협이 가는 길
늙고 병든 의협이 가는 길
  • 의사신문
  • 승인 2007.05.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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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시간이 나는 휴일에 골프장을 찾는다.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하면서 잔디밭에 아주 키 작은 민들레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해 했다. 왜 이렇게 땅에 붙어 있을까? 하고.

그런데 골프장의 잔디밭에 난 민들레는 그 키가 크기도 전에 잔디를 깍는 바람에 미처 꽃도 못 피워보고 그 머리가 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나는 이런 모습의 민들레를 볼때 요즘의 우리 의사들이 마치 민들레의 처지처럼 수많은 정부의 규제속에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 움츠리고 찌들고 기형적인 모습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것이 꼭 골프장의 민들레와 그 신세가 똑같아 골프장에서 키 작은 민들레를 볼 때 마다 말 못할 슬픔을 느낀다.

지난달 22일 의협 정기 대의원 총회는 오랫동안 의협의 대의원을 하고 또 예결 위원으로 의협과 회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예결산 내용을 밤을 새워 들여다보며 총회에 임했던 나에게는 커다란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 준 회의였다. 회의에 임하는 많은 대의원들이 뭔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우리 의사들의 생존을 위한 방안을 찾고, 또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슬기롭게 해결 해 나갈 생각은 없고 그저 말 꼬리나 잡아 되지 않는 이론에 의해 회의를 지연시키고 맥 빠지게 하는 행태가 계속 되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외부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규제 및 압박을 이겨 낼 수 없다. 또한 총회 후반에는 많은 대의원들이 이석하고 귀가 하는 바람에 정족수 미달로 예결산은 통과 시키지도 못하고 추후 서면 결의를 하여 처리한다는 말로 폐회를 하고 말았다. 참으로 한심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 후 5월 5일 어린이날에 열린 임시 대의원 총회도 원칙도 없고 상정 안건들이 커다란 문제도 없음에도 서로들 물고 늘어지는 추태를 보여 부끄러운 총회가 된 것을 보며 어두운 우리의 앞날을 염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한 대의원은 본인이 예결산 위원이며 이미 예결산위원회에서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고 통과 시킨 것에 다른 의견을 첨부하여 임총에 내면서 횡설수설하는 상식 이하의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를 보고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듯 회의를 진행하여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회의가 되어 점점 의협 전체가 미궁으로 빠져드는데 일조를 한 꼴이 되었다. 어린이날에 개최되어서 그런지 초등학교의 어린이회 만도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릇 어느 단체건 국가건 그 힘은 많은 회원수와 튼튼한 재정에서 나오고 회원이 많고 재정이 튼튼하면 그 힘은 더욱 강해지는 것은 누구도 다 아는 것이다.

요즘 의협은 회장의 사퇴와 후임 회장을 선출하여야 하는 문제로 복잡하다. 이런 어려운 상황의 난파선에 선장으로 일하겠다는 분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곰곰이 우리 의협을 생각해보자. 의협은 내년이면 100주년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100년 전통의 훌륭한 단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제 100살이나 살았으니 늙고 병들고 다 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의협의 회비 납부율이 50%대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차에 훌륭한 기사가 있고 목적지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어떠한 이유가 있던지 간에 의협도 회비를 내지 않으면 활동을 중지할 수 밖에 없다. 지난 대의원 총회 예결산위원회에서 보니 지난 회기에는 적자가 15억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부터 조금씩 저축해온 비축금 79억에서 곶감 빼먹듯이 빼쓰고 64억이 남아 있었다. 그 중 15억은 직원들의 퇴직충당금이라서 우리의 돈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49억원이 남게 된다. 금년부터 회비는 더 안 걷히고 보궐선거라는 과외돈도 들어가고 적자는 더나고 하다보면 한 20억쯤 다시 비축금에서 찾아 쓰고 이렇게 두 번만 하면 비축금도 거덜이 나게 된다. 이때 개원의협의회는 더 이상 의협에서 얻을 것도 없고 기댈 곳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고 하면서 회비에 비협조적이 될 수도 있고, 병협은 이미 오래전부터 독자적으로 잘해 나가고 있어 의협의 도움이 필요 없는 듯하다. 의학회 쪽도 의협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것 같아 비협조적이라면 결국은 의협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는 뻔하다. 난파선은 가라앉아 침몰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오래 살았으니 자연사 하는 것이 숙명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이제 이번 보궐선거에 뜻을 두고 계신 훌륭한 분들께서 이런 경우들을 한번이나 깊이 생각하시고 나서는 것인지, 뜻을 품으셨는지 궁금하다. 지금 이라도 후보로 나서는 분이나 이들 중에 한 분을 회장으로 뽑아야 되는 회원들께서는 수백번이라도 깊이 깊이 생각하여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다행히 이번에 직무대행을 맡으신 분이 마취과 전문의라서 심폐소생술에 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제발 의협을 재생시켜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주필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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