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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강보험 30주년, 미래의 새 장을 열자 - 진료비 지불제도
한국 건강보험 30주년, 미래의 새 장을 열자 - 진료비 지불제도
  • 의사신문
  • 승인 2007.05.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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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항목간 상대가치 조정, 장기적 연구 정착

건강보험이 도입된 후 30년 동안 국민들의 의료 이용이 손쉬워진 것만큼이나 진료비 지불제도의 변화는 의사와 의료기관에 엄청난 당혹감과 어려움을 가중시켜 왔다. 건강보험이 시작되기 전 의사들은 환자 진료를 마친 뒤, 시술한 진료행위의 난이도와 환자의 경제 형편을 고려하여 스스로 수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보험이 도입되면서 진료행위와 사용된 재료들이 항목별로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수가가 결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수가 수준은 의료계의 기대 수준은 물론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의사들은 진료하는 환자들을 늘려 한계 비용을 낮추어 수지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면서 적정 진료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많은 환자를 진료해 왔다. 또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진료행위와 검사, 방사선 사용이 증가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의료 자본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문제점이 누적돼 왔다. 한편 의료기관 운영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던 약가 마진은 의료계의 고질적 비리로 지적되면서 의약분업 전면 실시의 빌미가 되었다.

■진료비 지불제도의 분류

△지불대상에 따른 분류 = 진료비를 누구에게 지불할 것인가에 따른 분류로 의사에 대한 보상, 병원에 대한 보상, 그리고 둘을 통합한 동시보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병원이 개방형으로 운영되는 경우 의사 진료비와 병원 진료비가 구분되어 있어 이런 나라에서 입원하면 의사 진료비와 병원진료비 청구서를 각각 받게 된다. 이렇게 분리될 경우에 의사 인건비를 제외한 모든 다른 인건비는 병원 진료비에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폐쇄형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동시보상을 하고 유럽의 경우는 의료제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의원과 병원에 따라 지불체계의 차이가 있다.

△지불단위에 따른 분류 = `진료비 보상의 단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 분류이다. 우리나라처럼 개별행위를 단위로 보상하는 행위별수가제(fee-for-service)가 가장 익숙한 방법이다. 그러나 DRG처럼 질병명군이나 또는 외래 방문당 포괄수가를 적용하는 단위(bundle of service)가 최근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영국의 개원의에 대한 인두제(capitation)나 독일의 총액계약제, 미국의 관리의료(managed care, HMO)하에서의 총액예산제등은 지불단위를 보다 포괄하여 진료대상 인구나 의료기관의 일정기간 동안의 보상 총액을 단위로 한다.

△수가 결정 주체와 시기 = 전향적 수가 결정(prospective rate setting)은 진료행위가 일어나기 전 의료공급자가 아니라 정부나 보험자와 같은 제3자에 의해 수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의사의 자율권을 크게 훼손하지만 사회보험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모두 전향적으로 수가를 결정한다. 이와는 반대로 보험이 도입되기 이전처럼 진료 후에 의사가 진료비를 결정했던 것을 후향적 수가 결정(retrospective rate setting)이라고 한다.

■의료수가의 구성요소

의료수가는 개념적으로는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요소는 앞 절에서 논의한 지불 단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각각의 의료행위, 또는 서비스 묶음 등이 지불 단위가 된다. 지불 단위의 지나친 세분화는 수가의 책정과 지불 등 운영 측면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반면, 너무 단위를 광범위할 경우 수가의 합리성을 저해하게 된다.

둘째, 지불단위가 결정되면 각 분류 항목별 상대 가치(relative value scale, RVS)를 정하게 된다. 상대가치는 각 항목간 자원소모의 상대적 값을 뜻하게 된다. 상대가치가 높으면 결과적으로 놓은 보상을 받아 공급을 유인하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는 공급이 위축되어 의료의 왜곡을 유발 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항목 간 상대가치의 균형성은 가장 핵심적인 전제가 된다.

셋째, 상대가치를 화폐로 바꾸어 주는 환산지수(conversion factor, CF)의 산출이다. 점수 당 단가라고 불릴 수도 있다. 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총비용을 같은 기간 동안 행한 모든 의료 행위의 상대가치 총합으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 경제학적으로 환산지수는 현재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의 한계비용을 보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정책적 조정요소(modifier)이다. 예를 들어 지역별 차이를 보정할 수도 있고 의료기관의 차이를 보정할 수도 있다.

■의료비 지불 제도의 변천

△건강보험 도입이전 = 건강보험이 도입되기 이전까지는 진료가 이루어진 후에 의사에 의해 후향적으로 수가가 정해졌고 소위 관행수가라고 불리는 시장가격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의원급에서는 방문 당 포괄수가 형태에 가까웠고 검사 등 진료 행위가 다양한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진료행위 별로 자체 수가를 갖고 있었다. 이때는 의료기관의 자율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수가에 대한 논란은 없었다.

△1977년∼2000년 (상대가치 도입이전) = 보험이 도입되면서 처음으로 정부에 의해 보험수가가 정해져 전향적 수가 책정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일본 보험의 `을'표를 기초로 하여 수가 항목 분류가 이루어졌고 그 당시 관행수가와 의료기관의 경영실태 등을 반영하여 수가가 결정되었다. 초기에는 상대가치 (점수표)와 점수당 10원의 환산지수가 구분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 환산지수는 10원으로 고정한 채 상대가치만을 개정하는 등 통합되어 운영했기 때문에 1981년 6월 이후부터는 상대가치와 환산지수를 구분하지 않고 행위별 수가를 고시하는 방법으로 변경되었다. 결국 의료 기술 발전에 의해 변하게 되는 상대가치와 경제 인플레를 반영하는 환산지수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 않게 되었다.

△2001년 이후 = 그 동안 보험 수가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면서 의료계, 학계, 정부 모두가 수가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연구와 협의를 거쳐 2001년 1월부터 자원기준 상대가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 수가 체계가 도입되었다. 2000년 의료사태를 겪으면서 혼란 중에 도입됨에 따라 수가 항목간의 상대가치의 균형성이 개선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수가 책정의 4가지 요소를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수가 책정의 합리적 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환산지수는 건강보험공단과 의약계를 대표하는 자간에 계약에 의해 결정하게 되었으나 아직까지 한 번도 합의에 성공한 적이 없다. 결국 건강보험 정책심의 위원회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남겼다.

■문제점과 개선 방향

△상대가치의 합리적 조정 = 아직까지도 수가항목간 상대가치가 합리적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가장 큰 이유는 전문가별 이해가 갈려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의사협회 내에 각 학회를 대표하는 여러 위원들로 상대가치 개정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으나 합의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연구에 위임하는 것이 합리성을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의원과 병원별로 수가체계의 차별화 = 의원과 병원 특히 대형병원들은 환자구성, 사용되는 자원의 종류와 양에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갑'표와 `을'표가 있듯이 의사의 진료가 중심이 되는 의원과 자본투입이 큰 병원 간에 각각의 특성이 맞는 수가 체계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 경제지수의 개발 = 매년 환산지수를 조정할 때 의료비용의 구조와 유사한 항목별 거시경제지표를 복합해서 건강보험 경제지수를 개발하여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가조정의 예측성과 합리성 그리고 산출의 용이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의 장기적 연구 정착 = 지금까지 수가조정을 하기 위한 연구들은 작은 표본을 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매번 대상 의료기관이 바뀌어 좋은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연구결과의 신뢰도와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표본병원을 충분히 선정하여 장기적으로 추적조사연구가 필요하다.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표본 병원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맺는 글

전 국민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수가 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합리적인 수가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보험자 그리고 의료기관 모두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보험자는 보험재정 안정을 통해 국민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워 의료기관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험수가가 합리성을 잃게 되면 오히려 공급자 행태의 파행을 유도하고 결국 의료의 왜곡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역행하게 된다.

의료인, 의료기관들도 자신들의 요구를 충분히 근거를 제시하면서 정부와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의사들이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친다고 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다. 의료기관 운영 실태가 어떤지, 보험수가는 원가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는지를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설득해야 한다. 정치적 힘을 이용한 어느 한 편의 일방적 지배는 국민의료의 미래를 어렵게 할 뿐이다.







김한중 <연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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