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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서른 번째 생일에
아들의 서른 번째 생일에
  • 의사신문
  • 승인 2007.05.0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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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이 아닌 시아버님께서 포인세티아 화분을 들고 병실에 들어오시면서 “아가, 정말 축하한다”하시던 시아버님의 그 따뜻한 말씀이 아직도 내 귓전에 맴돌고 있다.

지나간 3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뇌리 속에 주∼욱 펼쳐지고 내가 살아온 과거가 지금의 복잡한 내 머릿속에 반추되어보니 지나온 그때의 생활들이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이었던 30년이라는 세월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엄마와 의사 역활 병행

지금은 젊은 엄마들이 많이 직장생활을 하지만 첫애 기른 시절에는 직장 다니는 엄마가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애가 어렸을 때 엄마가 외출복을 입고 있으면 외출을 하나해서 불안해하는 것 같아 집에서는 홈웨어 차림으로 있다가 후다닥 출근하곤 했다. 또 문방구에 가서 큰애가 물건 살 때 돌아서서 가는데 애가 엄마 가는 것 보고 울면, 출근하면서 눈물 흘리고….

그런 날 출근해서 병원에 가면 선배들이 먼저 내 모습을 알아보고 위로해 주시고 하는 적이 많았었다. 우리 애는 아픈데도 돌봐 주지 못하고 입원한 애기들 당직할 때, 수련의 과정을 그만두려고 할 때 남편의 많은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곤 했었다.

지금도 지나온 날의 일상들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부모님께 넘치도록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우리 애는 엄마의 충분한 보살핌을 못 받아서 이다음 사춘기 때 잘못 성장이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들 때마다 의사 생활자체를 접으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우리 둘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괜찮을 거라고 며칠을 토론 또 토론하면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었다.

내가 여의사로서 살아가는데 양쪽 어머님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살림 육아를 해왔다.

시어머님께서는 생활의 지혜와 진심어린 마음으로 한결같이 사랑해 주셨고 또한 늘 옆에서 의사생활을 지켜 보신분이라 늘 너그러운 마음으로 며느리로서 부족한 점을 이해하시고 따뜻한 가슴으로 나의 부족한 모든 면을 품어주신 분이었다. 며느리를 먼저 사랑해주신 분이셨다.

또한 여의사들의 친정어머님들은 튼튼하셔야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요즘사람들이 여의사들의 겉모습만보고 슈퍼우먼이라고 말들 하지만 정말 슈퍼우먼은 여의사들의 친정어머님이시다.

당신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바라며 딸들을 남보다 2년이 긴 교육기간을 시켜 가며 평생 A/S정도가 아닌 적극적인 후원자로 24시간 긴급 상태로 항시 대기 하고 계시는 분들이면서 그러면서도 항시 기뻐하시고 보람 있어 하셨는데….

지나간 세월을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여의사다. 대학에 들어갈 때도 내가 합격해서 그 누가 불합격했을테고 내가 길러준 것이 아니고 그 아이들로 인해 내가 정신적으로 더 많은 것을 깨닫고 감사함과 겸손함을 또한 남에 대한 이해가 커지는 것을 느낀다.

아들 생일에 며느리가 태중에 있는 손주의 모습을 초음파 영상을 CD에 담아 보여주는데 임신의 실감을 확실히 느끼며 또 다른 세대가 이어지는데 그날 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두 할머님(시어머님, 친정어머님)들께서 우리 애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주시며 올바른 할머니상을 심어 주셨는데 나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해보면서 마음속에 한번 다짐해본다.

삶의 후원자 어머니께 감사

일전에 문태준 전 의협회장님께서 `좋은 환자 좋은 의사'라는 제목으로 쓰셔서 직접 주신 책의 말미에 있는 좋은 시가 있어 소개한다.

병자의 기도 “큰일을 하고자 힘을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더니 신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약함을 주셨다.

더욱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건강을 주시기를 바랬으나 더욱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병약한 몸을 주셨다.

행복하기 위해서 부를 얻기를 바랬으나 현명할 수 있도록 가난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권력을 가지길 바랬으나 하나님 앞에 엎드리도록 약함을 주셨다.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원했으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도록 생명을 주셨다.

귀한 것은 하나도 주시지 않았으나 기도하는 것은 모두 전달되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못한 나였으나 마음속에서 충분히 표시 못했던 기도도 모두 들어주셨다.

나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풍요롭게 축복받았다고 믿는다.


 

 


조승복 <용산구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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