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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원과 스님
동네의원과 스님
  • 의사신문
  • 승인 2007.05.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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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영학의 고전이라는 `The Goal'을 읽었다. 무엇보다 물리학자가 경영컨설팅가로 변신한 과정이 필자의 흥미를 유발했다. 물리학의 원칙을 생산라인 적체에 적용해 재고관리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과정을 보면 상식과 지혜가 모든 문제해결의 요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그렇다면, 시장의 원리는 자연의 법칙과 일치할까? 경영의 법칙에 과학과 의학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세상과 우주가 스스로를 복제하는 홀로그램이라면, 거대한 현실적 문제도 작은 사회의 모습의 확대판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아서 생각을 확대해 보자면, 인간의 사랑과 인자함이란 어디에 속하는 법칙일까?

도덕경에 `자연은 인자하지 않다'는 구절을 읽던 순간에 느꼈던 두려움과 놀라움처럼 세상이나 현실은 관대하거나 인자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도덕 심리 발달 과정과 수준을 몇 단계로 분류한 것을 보면 세상 법을 지키는 단계보다 더 높은 단계를 하늘 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누었다. 그렇다면 시장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자연법은 하늘법과 같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개원의로서 나는 어느 지점에 서있는가 생각해본다. 세상법인 행정적 규제를 받는 의사, 그런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영자 그리고 천박한 현실에서도 내가 꿈꾸고 만들고 싶은 진료, 빨리 변하는 의료기술과 현실과 몽상 사이에서 흔들리고 고민하는 의사가 필자의 자화상이겠지.

몽상이 특기인 필자에게 경영이란 무척이나 어려운 현실이지만, 꿈을 현실화하려는 과정 중에 하는 고민이나 사고의 과정들이 도전처럼 여겨져 지적인 즐거움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의사의 삶이라면, 이런 삶의 과정이 인간적 성숙으로 숙성되어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또한 해볼 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진 것이 없어도 줄 수 있는 것은 부드러운 말 한마디와 상냥한 미소라는데, 필자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저는 동네 구멍가게 주인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가끔은 오는 손님 거부하지 않고, 가는 손님 잡지 않는 작은 절간의 주인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지치거나 힘들 때면 홀연히 찾았던 산사와 성당의 예배당처럼. 진료실의 그 자리를 웃으며 지키는 내가 환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객원기자〉


 

 

 


정인주 <영등포구의사회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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