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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투명, 정직, 의사의 소명이자 힘" <3> - 지제근 선생
"신뢰, 투명, 정직, 의사의 소명이자 힘" <3> - 지제근 선생
  • 권미혜 기자
  • 승인 2007.04.1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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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터치의 유화는 아니다. 마치 수묵화처럼 배경에 스며들어 진한 감동을 주는 그런 인품의 소유자다. 사상과 철학은 권위를 털어버린 듯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롭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의학용어의 한글화·표준화·통일화의 대장정을 이끈 학문적 열정과 카리스마가 있다.

봄꽃의 몽환적 정취가 만개한 토요일 오후. 논현동 사거리 신사동 고개 너머에 위치한 전망 좋은 선생의 사무실을 찾았다. `지·제·근' 한국 의과학 발전에 한 획을 그은 선생은 늘 변함없는, 단정한 선비의 풍모로 인터뷰어를 맞아주셨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의학용어집', `의학용어 큰 사전' 등이 수줍은 새색씨처럼 살짝 고개를 든다. 흰색 벽에 걸린 `월중 행사 계획표'도 빼곡하다. 대한민국 의학용어 정립에 새 이정표를 세운 평생의 업적을 웅변하듯 탁자위에 놓여진 선생의 손 때 묻은 `의학용어집'이 퍽 친근하다. 대학 재직 당시, 평생 벗하며, 선생의 학문적 성장과 궤를 함께 한 `표본 판독용 현미경'도 선생 곁을 다정히 지키고 있었다.

선생과 본지 편집인과의 3시간여에 걸친 대담은 잔잔한 강이 흐르듯, 때론 거세다 곧 여리게 변하는 `포르테'의 흐름을 탔다. 대담에 나선 신원형 편집인과는 지난 해 의협 회장 선거 당시 중앙선관위에서 위원장과 위원의 사이로 만나 각별한 인과 연을 쌓아왔다.

  #한국 의학계의 든든한 방패막

그윽한 커피 향을 타고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다. `일흔'이라니? 단아한 모습에서 도무지 `고희'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은퇴후에도 선생은 여전히 학문과 사유의 무게가 실린 논리적 비장함으로 이 시대의 의학계를 냉철하게 응시하고 있다. 쉬운 우리말 의학용어 정착과 전문용어 표준화에 바쳐온 그의 삶은 우리의 의학사에서 또다른 진정성을 추구하는 무게가 실려있다. 팔을 뻗으면 바로 잡히는 근거리에 놓여진 의학용어집, 우리글 바로쓰기,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통계청)등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래서 선생은 한국 의학계에서 든든한 방패막이자 참호와도 같은 인물로 정의된다.

-대한민국 의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선생님을 뵙게 돼 무척 기쁘고 반갑습니다. 올해 고희를 맞으셨다고 하지만, 여전히 젊고 열정적이신데 특별한 건강관리 비결이 있으신지요?

“병리학 공부를 위해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 연구실을 찾곤 했어요. 당시 학생이던 김철호·김영환·신희영교수등이 벌써 50대의 중견교수가 되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사실 주변에서 “젊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해요. 내가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또래가 빨리 늙은 것이 아닌 가 생각합니다.(웃음) 보통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스케쥴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나에게 주어진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랄까요. 정년퇴임후에도 `의학용어사전' 편찬작업, 과학기술용어 작업등으로 바쁘게 움직였어요. 교육·연구등에 대한 부담 없이 도리어 퇴임후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실 선생의 건강 비결은 소식(小食)과 규칙적인 생활습관, 욕심없는 마음에 있다. 아침 6시에 기상, 빵 한 조각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지난 30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으로 건강을 챙겨왔다. 인기리에 방영된 메디칼 드라마에 화제가 기울자 “부인 이미나 선생(제일병원 소아과 은퇴)과 선호하는 드라마도 함께 보며 공감대를 나누고 있다고”도 했다.)

 -사실 `지제근 선생님' 하면 `의학용어집'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의학전문용어 표준화의 대장정을 이끌어 가는 그간의 배경과 사업 내용, 향후 일정에 대해 알려주신다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작업입니다. 전문용어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의학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인들과 함께 쓰고 있는 의학용어 중에는 비슷하지만, 그 뜻이 서로 다른 것이 있지요. 이미 폐어가 되어버린 일본식 한자 용어가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 분석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고 쓰는 의학용어 중에서 혼동하여 쓰고 있거나 잘못 쓰기 쉬운 용어들과, 여러 학문 분야에서 같이 쓰는 용어 중에서 의학과 관련이 있는 용어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후 일본식 용어를 써왔으며, 크게 불합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듬어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다 해부학회에서 해부학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면서 의학용어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견갑골을 어깨뼈로, 쇄골을 빗장뼈, 요골을 노뼈등으로 바꾸었지요. 그중에는 `무릎관절'처럼 아주 잘된 것도 있지만, 복강을 `배안'으로, 비강을 `코안'으로 바꾼 가히 혁명적 발상도 있었습니다. 해부학회 내부에서도 한글화 작업에 대한 일부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해부학 용어집이 통일되면서 일부는 쓰고, 일부는 폐기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의학용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4판까지 발행했지만, 그 이후로 각 학회와 마찰및 난항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서서 이를 조정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의협 용어위원회와 해당 학회간 이견과 저항이 잦았습니다.

신 이사님, 아세요? (이 과정에서 선생은 `의학용어집'을 편 뒤 해당 용어를 지목했다) 보세요, 해부학회에서 관상동맥을 심장동맥으로 명칭을 바꾸었어요. 이 점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2, 3년이 지나도 전혀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갑상선을 갑상샘으로, 전립선을 전립샘으로 바꾼 것도 갑상선학회와 전립선학회에서 즉각 반발 했습니다. 결장을 `잘록창자'로 바꾼 것은 퍽 생소하지요. 의사국가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도 퍽 어려운 일이지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는 바꾸지 않고 있는데, 통계청과 복지부간 싸움이 벌어진 셈입니다. 복지부 용어 자문위원회와 통계청 용어 자문위원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다양한 의견을 취합, 합리적인 안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의학용어의 산파역

-개원의 입장에서 보면 진단서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영향이 없는 편입니다. 간혹 질병 코드를 찾는데 활용하고는 있지요. 의학용어에 대한 몰이해는 결국 한글세대와 한자세대간 문화적 충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의학용어집을 펴놓은 채 한 동안 오탁돌기, 부리돌기, 견봉, 좌골, 요추, 척골, 좌뼈등 의학용어에 대한 `현란한' 대화가 이어졌다.) 환자들은 간혹 하지 비골을 촛대뼈로 부르는 경우가 있더군요.(색다른 용어였나. 이를 듣자마자 선생은 바로 메모지를 찾아 기록했다)

“제4집에서 가장 좋은 것은 `polyp'을 그냥 번역없이 `폴립'으로 용어화한 점입니다. 오는 2008년 9월 의학용어집 5집 발간을 앞두고 현재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의협 100주년에 맞춰 4집 용어를 순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설명용어와 실용용어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개정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이지요?

“물론입니다. 과학용어집도 같은 맥으로 가게 됩니다. 콜라젠, 아교질, 글루코겐, 글루코젠등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의학용어를 의학계는 물론, 다른 과학기술계에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각 학회의 입장이 정리되고, 세대간의 입장도 정리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중일 삼국은 서양 용어들을 동양화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일본 용어와 중국 용어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우리나라 4집 용어는 중국과 일본에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한자를 안 쓴다고 해결될 일이냐”는 입장도 있어요. (책을 펴면서) 4집에서 한자를 없앤 것이 이 얼마나 큰 혁명입니까. 어쨌든 앞으로 후속세대를 위해서도 한자 문제는 절대 고려해야 할 이슈입니다. 우리나라 의학용어가 잘 다듬어 지기를 바라는 맘입니다. 공통의 이익을 위해 각 학회와 의협간 유기적인 협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한의학회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의학교육 및 정책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그간의 업적을 회고해 주신다면?

“저는 별로 한 것이 없어요. 분과학회 협의회에서 출발, 의협내에서 의학회가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고 이문호 선생님의 업적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전문의시험이었고, 이 것은 모두 의학회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전문의시험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시험제도 개선에 주력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의학, 특히 임상의학은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외국에서 인정을 크게 받지 못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학교수들의 논문을 해외 유수 저널에 발표하도록 유도하는등 `국내 논문의 국제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의학회가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의학분야가 우리나라 전체 과학 논문의 55%-60%가량을 점유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되어야 합니다. 영상의학과, 핵의학등 한국 의학의 국제적 진입으로 이제는 과학분야에서 결코 의학을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논문색인 `komsi'도 만들어 한국 임상의학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대한의학회가 발간하는 공식저널이 메들라인, SCI에 등재된 것은 보통 경사가 아닙니다. 고윤웅 교수에 이어 현재 김건상 교수가 의학회 회장직을 맡아 비전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학회 사단법인화, 의협을 서포트

-복지부가 강행하는 의료법 개정을 둘러싸고 의협과 병협이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 의학회의 사단법인화가 자칫 의협과의 이분(二分)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의학회의 사단법인화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단법인화 추진은 의협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서포트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의학회 산하 학회에서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법인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날로 개원환경이 열악해 지면서 대체의학, 노화방지, 신기술, 미용외과, 웰빙등 기술위주의 습득을 목적으로 한 관련 학회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한의학회 미등록학회가 고가의 수강료에 공인받지 않은 새로운 인증서까지 남발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에대해 회원들 사이에서는 `의협과 대한의학회 차원에서 이를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너무 심각하군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군소 학회 난립 소식은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학회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모든 연수교육 내용은 어떤 형태로든지 공익성에 대한 검증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우후죽순격 난립도 문제이지만, 인증서 발급은 더 큰 문제를 양산할 것이 분명합니다. 보완대체의학 관련 사안은 앞으로 물밀듯이 국내에 유입될텐데, 합법적인 제도적 장치가 시급합니다. 저 역시 보완대체의학 관련 한 학회의 고문을 맡아 우리나라에서 보완대체의학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검증작업을 나름대로 추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학회에서 돌연 봄, 가을 학술대회에서 인증서를 발급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 ”객관성이 없다“고 강력하게 만류한 적이 있습니다. 인증서 발급은 의사동료간의 `인정'이지, 절대로 수입이나 신분상승으로 직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대전제입니다. 과연 누가 컨트롤할 수 있을까요.

-의료계가 혼란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날로 황폐화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사태등을 겪으면서 권위와 질서의 붕괴에 대한 적잖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도덕적·윤리적 순결성이 요구되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당부말씀이 계시다면?

“장동익 회장 사태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지난 해 의협회장 선거에서 회원들이 장동익 회장을 선택했습니다. 일단 뽑았으면, 끝까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일부 직선제의 후유증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비리를 캐려고 나선다면 어느 기관 책임자라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본인도 민망스럽고, 많이 힘이 들 것입니다. 신 이사께서도 당시 선관위에서 같이 일했지만, 여러 사안들이 많이 노출되어서 후보를 검증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봅니다. 회원들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 회장에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당선후에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와서 흔드는 것은 참 실망스럽습니다.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부 젊은 회원들이 임총에 참석, 고성을 지르며 총회 분위기를 그르치는 것은 의료계의 생산적 토론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신뢰와 투명, 정직만이 의사가 살 길

“정부와 의협 상호간 신뢰회복이 시급합니다. 건보수가 상대가치 작업, 의사들의 수입 공개 등에 있어서도 신뢰성있는 근거를 제시, 정직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 의사가 정직하게 자신의 수익을 공개할 때 비로소 해결점이 보입니다. 이를 숨기면 절대 남들이 우리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신뢰와 투명, 정직만이 의사가 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정부의 의료법 개악에 맞서 총궐기대회, 회원 할복, 삭발, 1인 시위, 가두시위등 격렬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단체 및 의료계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충고 말씀이나 격려가 있으시다면?

“2000년 의료사태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당시 사태는 의약분업으로 촉발되었는데, 의권투쟁후 사회적 평가가 과연 긍정적이었나요. 일부 사회학자들은 `막대한 인력, 재원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국민간 간격만 더 벌어졌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우리들은 `의로운 투쟁'을 했는데, 국민들은 과연 정의롭고, 타당하게 받아줄까요. 의료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분석, 논의가 전제된 뒤 투쟁방향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료법 전면 개정을 놓고 국회 보건복지위서 격론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34년만에 개정되는 의료법인데, 설명의무, 투약, 간호진단, 유사의료등 대형 현안이 수두룩합니다. 또한 정부는 보장성 강화라는 미명하에 의료계의 목을 옥죄고 있습니다. (신 편집인은 이 대목에서 격분, “`의사'를 접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현안설명에 치중했다.)

“처음 듣는 내용들이 많군요. 임상진료지침은 가이드라인일 뿐, 법에 규정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요. 서로 믿지 못해서 나온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의사 전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우수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연간 3000명 이상 배출되는 의사인력을 활용, 우리나라 의료산업 발전을 견인해야 합니다. 현재 15%선에 불과한 BT분야에서의 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의사 인력을 양성, 국내 의료수준의 향상과 의료산업의 전사로 활용하는 것이 국가의 성장 동력입니다. 우리나라 의사 만큼 우수한 인력은 없습니다. 고무적인 일은 현재의 수준으로 국내 SCI논문이 증가한다면 10년이내에 우리나라는 세계적 리딩 그룹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선생은 우리나라 의학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전한 뒤 정부를 향해 “악법으로 기를 죽이지 말고, 믿고 놔두면 잘할 텐데…”라고 우회술로 대응했다.)

-평생 기억에 남는 큰 보람이 있으시다면?

“언어는 전문가집단의 소통의 시작입니다. 의학용어 개정작업은 1976년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전종휘 선생님의 권유로 참여, 30여년간 매달려 온 평생의 과제입니다. 평생을 의학용어집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 점이 큰 보람입니다. 산 용어가 되려면, 모든 사람이 함께 써주어야 합니다. 2003년에는 10년간 공을 들여 만든 `의학용어 큰 사전'을 발간했습니다. (선생은 바로 서고로 다가가 `의학용어 큰사전'을 꺼내드신 뒤 본사에 증정하셨다) 앞으로도 이 즐거운 행군을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2008년, 제5판 의학용어집 출간

노학자는 “의료에 관한 역사는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고 훈계한다. 언젠가는 의료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제대로 쓰자는 논리적 `옹호' 였던가. 국사편찬위가 있듯, 의료 역사를 정리하는 `의료·의학 편찬위원회'를 상설기구화해야 한다는 논지다. “자료가 쌓이면 언젠가는 의료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써야 한다”고 타이른다. 그 옹호는 결국 `30년'을 천착해 온 의학용어에 대한 노작(勞作)을 낳기에 이르렀다. 선생의 쉼없는 정진으로 `2008년'에는 제5판 의학용어집이 태어난다. 그를 설레게, 또 열광케 하는 `힘'은 바로 여기서 배태되는가 보다. `의학용어'를 보면, 선생이 밟아온 길이 보인다. 언어과학적 그물망에 그득 잡아 올린 퍼득거리는 은빛 `의학용어'가 있기에 한국 의학계는 오늘도 빛나는 미래로 달음박질쳐 가리라.

이날 마라톤 대담은 “저도 본과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전종휘 교수님을 도와 의학용어 번역에 참여했던 인연이 있다”는 신원형 편집인의 재치있고 유쾌한 화답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권미혜기자 trust@doctorstimes.com

지제근 선생은?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도미, 하버드의대 전임강사, 해부병리학 및 신경병리학 전문의로 일했다. 1985년 의협 의학용어제정실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평소 깊은 관심과 뜻을 두어왔던 의학용어의 한글화, 표준화, 통일화의 대장정을 이끌었다. 그 결실인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 제3집'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용어집'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에 따른 의학용어 큰 사전' `지제근 의학용어 사전'등을 편찬하였다.

대한의학회장, 대한병리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장,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의약학부장, 부원장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있다.

`Atlas of Human Embryo and Fetus', 'Diagnostic Ultrastructural Pathology' '신경병리학' 을 비롯한 많은 저서와 1200여편의 논문이 있다. 그 중 270여편이 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의과학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학술원상,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 유한의학상, 동신스미스클라인학술상등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초대 회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인제의대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신원형 편집인
가톨릭의대 졸업
현 강남 신원형 정형외과의원장
서울시의사회 공보이사
대한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수석 부회장
가톨릭의대총동창회 총무위원장
대한개원의협의회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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